7월, 2012의 게시물 표시

야권마저 촛불 희생자를 잊는다면, 누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나?

연거푸 촛불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다. 그 까닭은 그만큼 절박해서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주의와 진보를 외치는 정치인들에게 그 기본을 되새기라는 준엄한 요청이기도 하다. 너무 자주 이런 주제의 글을 올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이 문제에 대해 너무 반향이 없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1. 지금 야권의 대선 주자들은 모두 촛불시민의 수혜자다


2008년 촛불은 특히 서울지역 시민들에게는 엄청난 자부심의 원천이자 동시에 씻을수 없는 상처와 아픔으로 남아있다. 반대로 아무런 희망도 꿈도 갖지 못한채 왜소화되었던 야권과 진보진영에게는 기적과 같은 경험으로 남아있다. 2008년 촛불은 결국 진압되었다. 촛불에 참가했던 시민들은 이 정권의 무자비한 공권력의 완강함만을 경험하였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승리 선언"을 하는 운동권 지도부들의 무책임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의 열매는 컸다. 그리고 그 열매는 대부분 민주당이 챙겨갔다. 2008년 4월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정당이었다. 지금처럼 거대야당이라는 소리를 듣고, 유력 대선주자들을 배출하는 그런 정당이 아니었다. 정동영 후보의 참패와 이명박의 압승, 그리고 이어진 18대 대선의 압도적인 보수화에 질려서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그런 정당이었다.


그런데 그 높디 높던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촛불이 반토막 냈다. 2008년 5월~7월 동안 이어진 촛불과 그 촛불에 대한 폭력적인 반응은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이명박의 이미지를 고집스러운 수구 이데올로그로 탈바꿈 시켰다. 그리고 그때 반토막 난 지지율은 임기내내 회복되지 않았다. 2008 촛불이 아니었다면 이후 이어진 여러차례의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연승행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주가를 높이고 있는 야권 대선주자들은 모두 촛불에 빚진 셈이다. 그리고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2008 촛불 시민들의 마음속에는 깊은 한과 상처가 남아 있다. 이 한과 상처를 풀…

2008년 촛불 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정치인은 어디 있는가?

이미지
요즘 대선 준비들로 한창이다. 벌써부터 빅3, 빅4 등등 말들이 많다. 야권은 문재인, 김두관 박빙 상황에 안철수까지 가세한 상황이고, 여권은 박근혜가 계속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516이 쿠데타가 아니라는 박근혜는 그렇다 치자. 516이 쿠데타가 아니라는 역사 인식이라면 518은 무장공비 소탕일 것이고, 610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난동일테니. 아, 물론 자기 아버지 명을 재촉한 부마항쟁은 부산마산 공산 폭동이고.


하지만 민주주의를 지키고 되살리겠다는 야권 후보들이 의외로 침묵하고 있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건이 있다. 바로 2008년 5월~6월 사이에 있었던 촛불 시위에 대한 무차별 무력진압 진상 규명과 피해 배상이다.




2008년 6월 1일 아침, 마치 1980년 광주 518 기록 사진을 연상시키는 처참한 사진을 보았을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조약돌 하나 던지지 않고, 오직 물통과 촛불만 들고 있을 뿐인 시위대에게 SWAT를 투입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한 경찰들. 그리고 여기에 부화뇌동하여 그것도 권력이랍시고 알량한 힘을 과시하며 도취되었던 의경, 전경들. 그 와중에 무수히 피흘리고, 고막이 터지고 갖가지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던 무고한 시민들. 심지어 사망설, 실종설까지 유포될 정도로 잔혹했던 폭력 진압.
여학생을 군화발로 짓밟고, 치료를 돕기 위해 나와 있던 여성 의료대원을 방패로 찍어 일격 필살시키던 철없던 전의경. 그리고 이들을 부추기면서 폭력진압을 유도했던 경찰 간부들. 그때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건 빨리 정권을 바꿔서 저들을 재판대에 세우고 책임과 진상을 규명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게 2008년 이후 411직전까지 모든 선거에서 야권에게 전승을 안겨준 동력이었고, 아직도 서울에서는 여권이 맥을 못추는 동력이었다.
생각해 보라. 압도적인 표차이로 이명박이 당선되고 한나라당이 국회의 2/3를 차지하여 멘붕상태에 빠진 야당에게 돌파구를 열어준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바로 이 무고한 시민들이 흘린 피다. 그 피 덕에 이만큼이라도 세력을 일으킨 야…

교총회장은 교육혼란이 걱정되면 대법원에 간섭하지 말고 교과부, 검찰 앞에서 1인시위라도 하라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이 양성태 대법원장을 만났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교총은 소위 보수적인 교원단체다. 교원단체라고 말을 하기는 하나 교사는 물론 교장, 교감, 장학사, 장학관, 대학교수까지 두루두루 회원으로 가입해 있어서 도대체 그들이 지키려는 교육이 어떤 교육인지 알기 어렵다.

주로 초중등교육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는 하나 정작 초중등교사의 목소리가 교총에 반영되는 경우는 드물다. 회장도 주로 교수들이며, 정책실장이나 대변인 등도 교사가 아니다. 따라서 한국교총은 회원수에 비해 교육계를 대변하는 커버리지가 그리 큰 단체가 아니다. 사실은 일종의 이익집단이라 봐야 한다. 


그런 교총회장이 안그래도 대법관 청문회 때문에 1000건이 넘는 재판이 밀려서 정신없이 바쁠 대법원장을 찾아갔다. 실례도 이만저만 실례가 아니다. 게다가 찾아간 사유도 황당하다. "교육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니 곽노현 사건의 선고를 서둘러 달라"라고 건의하러 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사법부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법관이 법과 양심에 의해서만 판결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도 법관에 대한 로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특정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개인이 특정한 편향된 목적을 가지고 재판에 영향을 끼치고자 한다면 이는 엄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자를 처벌하기는 커녕 대법원장이 만나주었다는 사실은 도대체 이 나라가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하는지를 걱정하게 만드는 한심스러운 일이다. 만약 선고공판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법관을 사적으로 만날것이 아니라 그럴 이유를 공식적인 의견서로 작성하여 법원이 접수시키면 될 일이다. 그런데 그걸 대법원장을 직접 만나서 전달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대법원장을 만났다고 자랑질까지 해대는 작태는 이 나라가 자기들 몇몇 소수의 것이라고 자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

곽노현 선고일 다가오는듯 하자 배신의 이빨 드러내는 교육관료들

6월부터 서울시 교육청은 롤러 코스터 같은 분위기였다. 6월 초에는 관료들이 교육감의 명을 교묘히 물타는 경우가 많았다. 이 당시 이들에게 곽노현 6월 22일 낙마설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7월 10일자로 대법관 4명이 퇴임할 것이기 때문에 6월 4주 목요일인 6월 22일에 선고가 나고, 그럼 곽노현 교육감은 물러날 것이니 말 들어서 뭐하리 하는 그런 태도다.

물론 관료들 중에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스스로 동의한 교육혁신의 상을 위해 묵묵히 자기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도리어 6월 22일 이전에 혁신사업을 최대한 추진시켜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초조하다 못해 자뭇 비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 관료들은 6월 22일 설이 나오는듯 하자 즉각 태도가 바뀌면서 노골적으로 비협조적 변신을 꾀했다.

이들이 묵묵히 자기일을 하는지 기회주의적으로 배신의 틈을 노리는지는 교육청 파견교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관료들은 이들을 단지 파견교사로 보지 않는다. 이들을 전교조의 일부로 보며, 곽노현 교육감의 별동대로 본다. 따라서 교육감의 눈치를 보아야 할 상황에서는 파견교사의 눈치도 보며, 교육감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파견교사도 무시하며 심지어 모욕을 가하기도 한다.

이번에 학교폭력 토론연극으로 전국적인 히트를 친 부서의 관료들이 딱 그런 태도를 취했다.  교육감이 석방된 직후 이 사업이 추진될때는 매우 적극적이고 협조적이었다. 물론 이 사업의 실질적인 내용을 담당한 파견교사인 K교사에게도 매우 협조적이며 적어도 겉으로는 존중하는 제스쳐를 취했다.그러다가 4월 18일 항소심 판결에서 엉뚱한 판결이 나오자 갑자기 안면 몰수 지지부진으로 바뀌었다. 담당 장학사는 한국 교육연극계 최고 권위자중 한 사람인 K교사를 마치 아랫사람 부리듯 하려 들었고, 학교폭력 토론연극 프로젝트는 준비하던 극단들이 지쳐 쓰러지기 직전까지 질질 시간만 끌었다.

그래도 이걸 억지로 억지로 추진하여 여러 언론들이 관심을 가지게 하고  학교폭력 대책은 바로 교육연극이다라는 대세를…

인권관련 조례만 나오면 결사 저지하는 교육과학기술부는 인권탄압부인가?

7월 11일 곽노현 서울교육감의 심야의 폭풍 트윗은 교육을 극우적인 이념과 일부 특권층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만 여기는 이 정권과, 이 정권이 임명한 교과부장관의 오만한 망동에 대한 나비의 울부짖음이었다.

우선 곽교육감의 폭풍트윗들을 한 번 읽어 보자.

"학생인권옹호관처우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하기 무섭게 교과부가 저더러 재의요구를 하라고 하네요. 100% 재의결이 확실하지만 학생인권옹호관 임명을 최대한 늦춰보자는 거지요. 아님 말고 식의 꽃놀이패를 즐기는 듯한 못된 심보, 어찌할까요?""시대의 요구를 꼼수로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치명적 착각이다. 인권의 행진을 명령으로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과대망상이다. 착각과 망상은 뻘짓을 부른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소하더니 이제 학생인권옹호관도 안된단다. 정신 차려라.""안타깝다. 애처롭다. 금년도 인권훼방꾼의 불명예는 따논 당상이다. 도대체 뭘 위해 누굴 위해 학생인권옹호관을 저주하고 가로막나? 스스로 뭘 하는지 개념이 없다. 시대정신과 싸우다 맛이 갔다. 교육은 간데없고 정치만 나뒹군다. 통재!" "학생인권조례를 시비 걸고 학생인권옹호관을 가로막는 게 유엔아동인권조약 비준국의 교과부장관이 할 일인가요? 아이들에게 엎드려뻗쳐 시켜야 국격이 올라간다고 정녕 믿는 건가요? 시대착오적 해외토픽감 조치에 고개를 들 수 없네요." "교육기본법상 공교육당국과 학교는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옹호관을 두는 건 설령 학생인권조례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문제 삼을 수 없지요. 학생인권옹호관을 시비 걸면 법위반입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듯이 학생인권조례의 발목을 잡고 비틀어도 학생인권시대는 옵니다. 아니, 이미 와있습니다. 아이들의 열망속에, 어른들의 각성속에, 시의회의 조례속에 이미 용솟음칩니다. 교과부가 용을 써도 못 막습니다."
이 트윗들에 계속 반복되는 단어들이…

곽노현이 한국교육을 폄하했다는 동아일보의 학습부진

이미지
오랜만에 곽노현 교육감이 동아일보 1면을 장식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곽 대한민국 교육을 폄하하다"(동아일보 기사 )라는 내용의 흑색기사다. 문장어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거의 사춘기 감상문같은 문장으로 씌여진 이 기사를 신문기사다운 문장으로 재구성하면 이렇다.

7월 12일 오전 10시 서울시교육청 9층 회의실에서 열린 로스 터너(호주국립연구원 출신 피사 출제 전문가)에서 곽노현 교육감은 다음과 같이 한국 교육을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 “PISA 1등을 진심으로 환영할 수 없는 이유를 오바마는 몰라도 우리는 알고 있다. 많은 분이 성적이 높은 한국의 비결을 궁금해하지만 그 8할은 강요된 누적학습, 사교육비로 뒷받침된 학습시간의 결과라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대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김동석 대변인은 “사교육의 영향이 없을 수 없겠지만 국민들의 뜨거운 교육열과 현장 교사들의 노력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해 이뤄낸 성과를 너무 폄하했다”고 지적했다. 박경미 교수 역시 “PISA는 실생활에 적용하는 문제를 출제하므로 다른 시험과 달리 학원교육이나 선행학습과는 비교적 무관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세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라고 설명했다.같은 자리에 나온 기자들이 "OECD새로운 교육방향은 협동(오마이뉴스 기사)", "한국 피사 상위권에 안주해서는 안되(연합뉴스 기사)"라는 내용의 기사를 쓴 걸 보면 동아일보 기자는 시각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시간이나 진행된 강연 내용은 하나도 기억 못하고 오직 곽노현 교육감 깔 거리만 찾고, 그걸 또 1면에 때리는 것을 보니 말이다.


자, 그럼 이 기사가 어째서 엉터리인지 한번 살펴 보자. 우선 피사 1등을 진심으로 환영할 수 없다는 류의 발언은 곽노현 교육감이 처음이 아니다. 그건 2003년 이후 계속 되어온 발언이다. PISA는 점수와 순위만 발표하지 않는다. 한번 나올때마다 300쪽 짜리 보고서 대여섯권 분량의 보고서가 나온다. 그런데 기자들…

곽노현이 물러나면 교육혁신은 교육혼란이 된다는 헛소리

어제 곽노현 교육감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교육감은 학교폭력을 다룬 연극 '니들 부모의 얼굴이 보고싶다'를 관람하고, 공연이 끝난 뒤 윤호진 교수(영웅, 명성황후 감독), 손숙 전 장관 등과 환담하고 관객들과 대화했다. 이때 취임 2주년 기자회견때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아마 기자들의 생각은 대법원 판결과 함께 직을 상실할 것인데, 앞일을 물어봐서 뭐하겠느냐 정도였을 것이다. 심지어 조중동과 보수언론들은 직을 상실하고 나면 곽노현표 교육개혁은 고스란히 정리해야 할 폐품이 되니, 결국 일을 벌리면 오히려 혼란만 준비하는 것이라고 거품을 물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노현 교육감은 임기가 2년이 남았건 두달이 남았건, 교육개혁의 씨앗을 심는 일을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대해 여전히 은인자중하라는 요구들이 심지어는 진보진영에서조차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것을 망각한 처사다.

교육의 작은 개혁 하나하나의 결실은 최소한 한세대, 보통은 두세대는 지나야 그 결과를 볼수 있다. 그러니 그 긴 시간을 염두에 둔다면 임기가 두달이 남았건 2년이 남았건 어차피 자기가 뿌린 씨앗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케르센슈타이너, 에르끼 아호 같은 전설적인 교육개혁가들은 교육정책을 관장하는 위치에 10년 이상 있었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개혁을 펼칠수 있었다. 2년과 2개월을 비교하는 것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그러니 잔여임기 같은 생각 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게 유일하게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더구나 모든 진보교육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존 듀이 사상의 핵심도 바로 "현재를 위한 과거, 현재를 저당잡지 않는 미래"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지금을 즐기라(카르페 디엠)'고 말한 것은 결코 쾌락주의나 향락주의적 의미가 아니다. 훗날을 대비해 지금을 …

진보교육감 취임 2주년을 기념하며 드리는 말씀

미디어 오늘에도 기고한 글인데, 여기에도 남겨 둡니다.

 혁신을 넘어 진보를 향하라
어느덧  6개  시도에서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탄생한지 2년이 지났다. 경기도는 벌써 3년이다. 이들 진보교육감들  덕분에 교육 혁신이라는 말은 아주 친근한 용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 6개 시도의 교육이 꽤 활발하게 바뀌기도 했다. 얼른 눈으로 보아도 다른 지역보다 이들 지역의 학교가 더 다채롭고 활기 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이제는 새롭게 바꾼다는 혁신을 넘어 교육의 새로운 의미를 세우고, 교육이 학생과 나아가 사회의 전반적인 가능성과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특히 무엇보다도 먼저 교육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가 됐다. 즉 혁신을 넘어 진보로 향해야 한다.

이들은 스스로 선언했듯이 진보교육감이지 혁신교육감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혁신과 진보의 연결 지점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다만 새롭다는 것이 곧 진보는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다양화와 학부모 선택권 강화라는 방향성을 내건 경우가 더욱 그렇다. 획일성을 넘어 다양성으로라는 구호는 진보는 커녕 혁신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건 이주호 교과부장관이 늘 외치던 고교 평준화 해체와 고교 다양화와 사실상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선택권 강화는 누가 입시에 실적을 더 잘 올리는 교사이며 어느 학교가 입시 실적이 더 좋은가를 놓고 선택하게 만들고자 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과 강하게 공명한다. 

다양성과 선택의 원리는 철저히 시장주의적인 원리다. 이는 기본적으로 교사들은 그냥 두면 정체되어버리기 때문에 자극이 필요하다는 불신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각 학교에게 자율권의 미명하에 경쟁을 붙이자는 것이다. 학교의 자율성은 현 상황에서는 교사의 자율성이 아니라 교장의 자율성이며, 교장은 학부모들 중 유력한 학부모들의 요구에 굴복하게 되어 있다. 그 요구는 결국 입시교육 강화일 것이다. 따라서 다양성은 입시에 유리하기 위한 꼼수의 다양성이 되며, 학부모 선택권은 학교와 교사들이 이 …

교육운동사를 돌아보며

우연히 교육운동사 기록물을 열람했습니다. 매우 소중한 기억들이고 귀중한 발걸음 들이었습니다. 제가 매우 가까이 지내는 한 선배가 있는데, 그 기록의 순간 순간마다 이름이 나오더군요. 82년부터 28년간 교직생활을 했는데 그 중 두번에 걸쳐 8년이 해직기간이라 나하고 호봉이 같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해직의 고초를 겪으면서도 트라우마가 쌓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트라우마가 없으니 보상심리도 없고, 보상심리가 없으니 과거에 매달리지 않으며, 과거에 매달리지 않으니 발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갑니다.

그래서 "선배들, 당신들의 고초는 알고 있으나, 이제 당신들의 운동은 낡았다."라는 말을 들어도 그 선배들과 자신을 같은 범주로 넣지 않으며, 따라서 성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앞장서서 "이제 89년 세대의 운동관과 세계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맞장구를 칩니다. 내 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고맙게도 많이 있습니다. 교육운동사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분들이 오히려 더 그렇습니다.
전교조의 1500 동지회... 귀중한 고통을 겪은 분들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댓가로 한때 10만에 육박했던 거대 조직의 의사결정을 사실상 독점했던 보상을 받으셨습니다. 합법화 이후에는 더더욱 그것은 현실적인 보상입니다. 하지만 지난 2003년~ 2006년 사이 의제를 선점당하고 반대투쟁으로만 일관했던 모습은 이미 그 분들의 운동론이 시대에 뒤떨어져서 더 이상 교육운동을 선도할 수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그 와중에 전교조 지도부와 조합원들은 완전히 딴 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 분들은 다른 조합대중들의 또 미가입 교사들의 마음을 얻으려 한 대신 자신들이 공유한 기억 공동체 속으로 달려갔습니다.
2007년 이후에는 그나마 반대투쟁도 안했습니다. 반대투쟁으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지만 그것을 문제제기하는 것은 오히려 선도적으로 의제를 던지고 교육개혁을 주도하라는 요구이지 반대투쟁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인장이 쓴 책…

교원노조의 새 비젼: 산별노조에서 전문직 조합으로

이거, 오래 전에 번역했던 글인데, 요즘 갑자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교조가 이렇게 무력해진 것은, 이미 변화된 상황에 맞는 옷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8년전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어났던 논쟁을 소개합니다. 참고로 캐나다는 전문직조합으로 변신했고, 미국은 여전히 교원노조의 틀을 유지했지만, 그 결과 미국이 훨씬 더 비참해 졌습니다.
교원노조의 새 비전이 필요하다

밥 피터슨 Bob Peterson (2004년 Rethinking School 통권 11권 4호에 수록)          저의 번역이 의심스러우신 분들은 인터넷에 해당 아티클이 공개되어 있으니 참고하십시오
NEA위원장 밥 체이스의 정책기조 연설이 끝나자 NEA의 가장 큰 지부인 위스콘신 교원노조 위원장과 집행위원장들이 일제히 체이스를 비난하고 그의 소견을 “섬뜩하다”라고 표현했다.
체이스는 이미 2월 5일에도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새로운 NEA: 새로운 시대를 위한 교원노조 개편”이라는 주제로 연설한 바가있다. 체이스는 NEA는 전통적인 노-사 대립론을 극복하고 공교육에 대한 공동체와 학부모의 관심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학교를 개혁하기 위해 학교재단, 교육청 등과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체이스의 주장중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교원노조가 교사의 질, 그리고 학교의 학습 환경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체이스의 말을 들어보자. “무엇보다도 우리는 초점을 넓혀야 한다. 우리는 조합원들의 임금, 혜택, 근로조건, 안전 뿐 아니라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에 대해서도 그 만큼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리씽킹 스쿨 11권 3호)
부정적인 반응들
위스콘신 교원노조 간부들의 반응은 그나마 부드러운 편이었다. 2월 20일 밀워키 교원노조의 매디슨, 래신, 그린베이 지부장들과 집행위원장들은 연대하여 체이스에게 그의 연설을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들은 체이스가 노사간의 협동을 고무하고 노조가 조합원 자질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공교육을 파괴하려는 집단의 손에 놀아나고…

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12. 교사가 되면 조심할 것들 1

젊은 벗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못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제가 교단을 떠나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 해직된것은 아니고요, 작년에는 연구 휴식년이었고, 올해는 교육연구정보원에서 근무합니다. 장학사 뭐 이런거 된거는 아니니까 금명간에 학교로 돌아가겠죠. 하지만 2년째 수업을 안하고 있으니 뭔가 허전하고, 교실이 무척 그립습니다.

교사가 되면 조심해야 할 것들 - 귀신들


지금까지 교사라는 직업의 좋은 점을 이야기 했으니 이제부터는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좀 말해볼까 합니다. 물론 교사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더 많은 직업입니다.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공립학교 교사라는 직업은 단점은 거의 없고 장점은 무수히 많은 그런 직업에 속합니다. 번듯한 정규직 일자리가 10%나 될까말까한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교사가 되고자 멀쩡히 다니던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고시낭인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교사직이 이렇게 선망의 대상인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교무실의 풍경을 그려봅시다. 모두가 선망하는 그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아주 즐겁고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졸업앨범이나 이런것들을 펼쳐보면 선생님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딱딱하며 즐거움과 행복은 참으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가 신규교사였던 시절 정말 놀랐던 것은 선배교사들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불만이 너무 많아서 입만 열면 불만이며, 매사에 신경질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학생들 앞에서 거의 웃지 않았으며 늘 뭔가에 쫓기고 있으며, 행복과는 늘 거리가 먼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지금도 학교를 방문해 보면 그런 모습이 크게 바뀐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짜증스럽고 불만스럽던 얼굴이 요즘은 지쳐있는 얼굴로 바뀌었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선생님들의 불만스러운 목소리와 모습, 그리고 저 힘없고 지친 모습에 관심을 가져보면 교사라는 직…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밝힌 곽노현 교육감의 교육관 몇 토막

얼마 전 김미화의 오후 두시 라디오 프로그램에 곽노현 교육감이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거기서 그의 교육관이 뚜렷하게 드러난 부분이 있어서 갈무리 해 둡니다. 그의 신상에 어떤 변화가 생기던 간에, 이런 교육은 이런 교육정책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꾸준히 견지할 수 있는 분이 아니면 진보교육이란 라벨을 붙일 수 없습니다.

(이하 인용)

김미화 : 요즘 아이들이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곽노현 교육감 : 기본적으로는 아이들한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어요. 우리 부모들이 그냥 부모들의 욕망이라고 할까. 물론 아이들을 위한 욕망이지만. ‘너희들만큼은 정규직으로 공무원으로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살아야한다. 그러려면 좋은 대학을 가야한다. 그러려면 자나 깨나 국영수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학교마치면 학원을 가야하고. 이렇게 12년을 보내면 네 미래가 창창해진다.’ 이런 생각으로 아이들은 몰아대시거든요. 더구나 엄친딸, 엄친아가 등장하잖아요. 애들은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경쟁을 강요받아요. 그럼 아이들은 숨통을 틀수가 없는 겁니다. 아이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공부, 공부, 공부 잔소리에 치이게 되고, 부모님과 관계가 틀어지고 입을 닫게 되요. 내 마음 갈 곳을 잃고 내 마음 둘 곳이 없잖아요. 이러면서 좌절, 분노가 남에게 향하면 폭력과 왕따가 되고 내부로 향하면 우울과 자살, 절망이 된단 말이에요. 우리 어른이 아이들의 필요를 보지 않고 어른들의 욕망을 주입시키고 있는 거죠. 아이들이 자율이나 자유를 느낄 수가 없는 거예요. 자발적으로 자기주도적으로 하는 것에서 오는 보람 같은 것과는 담을 쌓고 오직 교과서 속 국영수 공부에 매진하게 되는 거죠. 이것이 집안에 희망으로서 네가 할 일이라고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니...

김미화 : 그렇다면 지금 학교 교육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곽노현 교육감 : 기본적으로 ‘제가 원하는 학교 교육이 이겁니다’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맞다고 할 거예요. 다만 현실이 그렇지 않지 않느냐. 현실은 교육감 권…

교육연극은 학교폭력 예방에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이유는 모른다 ㅠ

곽노현표 교육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업으로 온 동네에 선전했던 학교폭력 예방 교육연극 프로그램이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연구원으로서 나의 본분은 미리 설정해둔 통제군과 처치군에 뿌렸던 설문지를 수합하여 통계처리 하는것.

사전사후검사가 포함되어 있어서 설문지 문항은 100개가 넘고, 이걸 200명 이상 코딩하자니 일주일간 어깨가 빠질뻔 했다. 막상 코딩에 걸리는 시간은 일주일이지만, 분석 시간은 두어시간 남짓. 오 컴퓨터의 위력이여.

그런데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원래 내가 생각했던 가설은 피해자에 대한 방어자 성향의 증가를 종속변인으로 하고, 교육연극 참여 여부를 독립변인으로 하고, 정서적 공감능력의 증감을 매개변인으로 하는 모델을 검정하는 것이었다. 즉 교육연극이 학생들의 정서적 공감능력을 향상시키고, 이렇게 향상된 공감능력으로 인해 피해자의 고통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피해자를 위한 방어자 성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피해자를 지키려는 학생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학교폭력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런데 왜 이상한 결과냐 하면 교육연극이 학생들의 정서적 공감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가설이 기각되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정서적 공감능력은 향상되기는 하였으나 교육연극 참여 여부와는 무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연극의 참여여부가 피해자에 대한 방어자 성향에는 거의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교육연극이 학교폭력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큰 가설은 검정되었지만, 그 세부적인 메카니즘에 대한 가설은 기각된 것이다.

효과가 확인되었으니 된거 아니냐 하겠지만, 이게 연구자 입장에서는 무척 난감한 상황이다. 효과가 있기는 있었으나, 당초 예상했던 메카니즘으로 설명이 되지 않고, 결과만 좋게 나왔으니 장님 문고리 잡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책 담당자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의 효과가 검정되었으니 입에 귀에 걸리겠지만, 학자의 입장에서는 왜 그런 효과가 나왔는지를 수립해둔 모델로 설명할 수가 없으니 낙담 천만이다.

아무래도 훨씬 더 맣은 배경변인을 수집했어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