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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영 부교육감은 곽노현 정책이 싫으면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말고 사퇴한 뒤 출마하라

곽노현 교육감이 수감되기가 무섭게 이대영 부교육감이 소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원래 별로 소신 없는 관료로 알려져 있었는데, 특정 진영이나 이념적으로 편향된 특정 교원단체의 지지가 필요한 모양이다. 그래서 곽노현 교육감의 정책을 모두 반대로 되돌리겠다고 한다. 물론 정확하지 않은 보도일수도 있다. 일부 언론사에서 일부러 부추기는 과장 보도를 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실제로 교육위원들의 항의전화를 받고, 일선 학교에 보내려던 공문을 취소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문을 보내려고 했다는 점, 그리고 학교의 혼란을 안정화 하겠다는 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이대영 부교육감은 곽노현 교육감의 정책이 학교를 혼란스럽게 했다고 평가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으며, 그것을 되돌릴 태세가 되어 있음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자신의 목표가 “학교현장 안정화”라고 말하고 있다. 누가 들으면 지금 학교 현장이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줄 알겠다.

그런데 이대영 부교육감이 혼란한 학교 현장을 안정화 하겠다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행위이며 스스로의 무지를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가당치도 않은 이유는 이대영 권한대행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기 때문이며, 무지를 드러내는 이유는 학교 현장이 혼란스럽다는 스스로의 편견 혹은 일부 이념적으로 편향된 교원단체의 정보에만 기반한 판단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영 부교육감에게 곽노현 표 정책을 건드리거나 되돌릴 권한이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는 민선교육감이 아니며, 다만 권한대행일 뿐이다. 서울 시민은 곽노현 개인에게 표를 던진 것이 아니었다. 곽노현이 구현하겠다고 했던 교육 정책과 비전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따라서 곽노현이 구현하려던 교육정책과 비전을 뒤집거나 되돌릴 권리를 가진 사람들은 서울 시민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권한대행의 모범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는 고건 총리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로 권한정지 되었을 때 고건 총리는 기존의 정책을 틀거나,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대신, 국정이 무리없이 운영되도록 잘…

곽노현을 아무리 핍박해도 교육혁신의 시대정신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곽노현 교육감의 선고공판이 내일이다. 저들은 이미 사퇴한 지 오래된 상대 후보를, 그래서 더 이상 매수할 후보직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선거도 끝나고, 이미 취임한지 반년도 더 지나서 매수했다는 대한민국 헌정사는 물론 세계 헌정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후 매수죄’라는 기상천외한 혐의로 처벌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사후 매수죄가 얼마나 형용모순인지, 그래서 법리상으로 얼마나 심각한 논쟁거리인지는 구태여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또 이렇게 논란거리인 법조항이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심리중이고, 또 그 기간도 꽤 지나서 조만간에 판결이 나올 상황인데도 굳이 먼저 선고를 하겠다고 나서는 대법원의 불합리한 조치에 대한 비판도 이미 충분히 여러 매체에서 많은 법률가들이 설파했으니 여기서 반복하지는 않겠다. 다만 내가 여기에서 하고자 하는 바는 만약 곽노현 교육감이 그 직을 상실할 경우를 기다리며 웃음을 감추고 있는 세력들에게 그들의 기대는 결코 충족되지 않을 것임을 찬찬히 일러두고자 하는 것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세력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과연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첫번째로 떠올릴 수 있는 집단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혹은 보수 후보의 승리를 원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 사건을 진보세력에 대한 도덕적 스캔들로 비화시키고, 그래서 서울 교육감 선거와 동시에 치루어질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만들고자 할 것이다. 

 두번째로 떠올릴 수 있는 집단은 교육계의 기득권자들인 보수 관료, 교총, 그리고 사학 재단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그 동안 눈엣 가시 같았던 곽노현 식의 교육개혁이 중단되고, 보수 교육감이 다시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지금까지 바뀌었던, 그리고 앞으로 바뀌어 갈 교육의 모습을 원래대로 되돌리고자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떠올릴 수 있는 집단은 교육운동계 혹은 전교조의 기득권자들이다. 이들은 그 동안 교육운동의 담론을 독점하면서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교육은 물론 교육과 무관한 영역에서까지 각…

교장만 되면 발뻗고 잘줄 알았더니

몇 해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일이다. 그 학교에 "돌아이"라는 꼬리표를 단 교장이 부임했다. 하도 사고를 많이 쳐서 교장될 가망이 없었는데, 명예퇴직 바람과 정년단축 덕분에 교장들이 많이 퇴임하여 자리가 난 것이다.

이 교장은 부임하자마자 별별 또라이 짓으로 사람들을 아연케 했다. 교무실에서 아침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킨다거나, "여자들은 군대에 안 갔다와서 애국심이 없다"고 대놓고 말한다거나, 유스호스텔에 하도 많은 뇌물을 요구해서 도리어 그 쪽에서 계약을 거부해 수련회가 무산되게 만든다거나.... 심지어 학교 돈 교묘히 떼어먹을때 공범자가 되기 마련인 행정실장 조차 "해도해도 너무하시는 거 아니냐"면서 분노하기까지.

이렇게 또라이 짓을 하니 당연히 교사들의 저항도 엄청났다. 사사건건 마이크잡고 일어서는 교사들이 속출했고, 당시 막 합법화 되었던 전교조에 가입하는 교사들도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오죽하면 전교조 분회장을 경선으로 뽑았을까?

물론 이런 또라이 교장에게도 비비는 딸랑이 교사들은 있었다. 게중에는 '나름 지적'인 사람도 있었고, 그 교장과 비슷한 수준인 또라이도 있었다. 나름 지적인 사람은 연구부장이 되었는데, 그가 교장에게 딸랑이가 된 이유는 결국 점수가 필요해서였다. 그에게는 또라이든 훌륭한 인격자이든 질적 차이가 없었다. 단지 교장이면 되었다. 그런데 그 나름 지적인 사람은 결국 딸랑이 노릇을 포기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가 아니다. 워낙 교장이 또라이로 찍혀있다보니 학교가 점수되는 프로젝트를 받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왕수'를 받더라도 가산점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법. 결국 그는 장학사가 되는 쪽으로 승진코스를 변경했다. 교장은 장학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추천서'를 써주지 않음으로써 복수했지만, 서울사대 출신의 연구부장은 유유히 교육청에 있는 장학관에게 추천서를 받아서 제출했다. 그는 하버마스의 용어를 빌리자면 인지적 합리성만 편…

미국의 교장

미국 좋아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다. 미국 좋아하는 사람들, 아니 미국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사코 미국을 안 따라하는 것이 있다. 바로 교장제도, 교사 승진제도, 학교 행정제도다.

우선 미국 교장제도의 특징은 "교장선생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교장은 교장이고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우리말의 교장선생님에 해당되는 말은 head teacher로 이는 일부 명문 사립학교에서 시행되는 제도인데, 대부분의 공립학교는 이에 해당되지 않으며 principal을 두고 있다.

head teacher는 교육자의 대표로서 교장 개념이다. 명문 사립학교에서는 교사들 중에서 자원을 받아 면접과 기타 심사를 거쳐 이사회에서 위임한 심사위원들이 교장을 선출한다. 이 교장선생님은 교사보다 훨씬 바빠사 학교의 대소사는 물론 각종 상담과 지도업무까지 감당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처벌하고 상담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건 다 교장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교장선생님들은 전교생의 이름과 특성을 다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하는 일로 봐서는 우리나라 교장보다는 차라리 학생주임 더하기 상담부장에 가깝다.

principal은 행정직의 개념으로 사실은 교장이라는 번역어도 적당하지 않다. 어쨌든 이 교장이 하는 일은 오히려 우리나라 학교의 행정실장에 가깝다. 교장1인과 교감 1~2인, 그리고 비서(우리나라 행정실장)와 행정직원 2인 정도가 그야말로 수업을 제외한 학교의 모든 사무를 다 담당한다. 이른바 장학업무도 담당하는데, 이는 애로사항을 듣고 조치를 취하기 위함이지, 교사에게 지시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즉, 미국의 교장은 교사의 상관이 아니다. 단지 교감과 행정직원의 상관이다. 교사들은 수업과, 수업을 위한 연구 외에는 아무런 책무가 없다. 학교의 각종 소소한 관리 업무는 교장의 책무다. 즉, 그런 일들을 감독하는게 아니라 "직접 하는 것"이 교장의 책무이며, 혼자하기 힘들면 교감과 같이 하는 것이다. 공문서 트집잡아서 수업하느라 …

사교육 문제보다 먼저 쓰레기 같은 교장, 교감 부터 해결해야 한다.

광주의 모 초등학교에서 교장의 폭언과 횡포를 견디다 못한 교사들이 집단으로 반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연줄, 연줄로 꽉 짜여지고 군기와 서열을 중요시하는 광주지역의 특성상 정말 어지간했다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어찌어찌 하여 서울에 올라온 그 지역 출신 교장, 교감들이 교사들에게 무리하게 마구 권력을 휘두르려다 저항과 냉소에 부딪치며 그들은 그들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상처받는 안타까운 현실이 또 눈에 밟힌다.

서울지역에는 교육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아무 업적, 하다못해 형식적인 업적조차 없이 교감 승진한 농어촌 출신 교사들이 있다. 이들은 각종 꼼수를 총동원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동원하는 꼼수란 주로 농어촌 벽지 근부 가산점을 챙겨서 승진점수를 따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점수가 충분히 쌓이면 서울로 전보 내신을 내서 어떻게든 서울로 올라오는 것이다. 요즘은 경기도로 집중 이주해 온다고도 한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지역 학교의 교감이 될 수 있다. 서울 토박이 교사들이야 농어촌 벽지 점수 따위가 있을 턱이 없으니 소위 승진점수에서 밀리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남들이 근무 기피하는 농어촌 지역에서 봉사했으니 그 정도 댓가는 받아야 하는게 아니냐고... 남들이 기피? 지나가던 이메가가 웃을 일이다. 지방 학교에서는 농어촌 벽지 근무를 서로 못해서 난리다. 그래서 농어촌 벽지 근무를 위해  시도 장학사에게 연줄이라도 닿아 보려고 술판을 벌리기 일쑤다. 그렇게 농어촌 벽지 근무를 하게 되면, 그래도 농어촌 교사 유인책은 된다고?

천만에... 그런 그들이 농어촌 벽지 학교에서 제대로 근무를 할 턱이 없다. 여전히 집은 도시에 두고 승용차로 출퇴근만 한다. 친절하게도 도교육청에서는 기름값까지 보조해준다. 그렇게 벽지학교, 농어촌 진흥 학교 따위만 이리 저리 골라다니면, 그런 학교에서 수업이야 어떻게 하든간에 근무하는 개월수만큼 승진 가산점이 착착 붙는다. 그러니 지방에서 교사가 승진하려면 연줄과 선후배간의 위계는 필수다. 조금이라도…

인적 쇄신 없이 진보의 승리는 절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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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선판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는 진보의 자리가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당시 권영길 후보의 자리 말입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본질적으로 자본의 정당임을 드러내고, 진보의 참신함과 선명성을 드러낼 그런 후보 말입니다. 당시 노회찬 의원의 일갈처럼 "한나라당은 원조 부정부패당, 민주당은 신장개업 부정부패당", "불판을 갈아라" 등의 말이 먹히는 그런 진보후보 말입니다.

지금 그 자리의 공백을 안철수 후보가 차지했습니다. 이미 2007년 대선때 그런 참신함과 진취적인 후보의 자리를 "코리아 연방제"를 들고 나온 권영길 후보가  "사람을 살리는 경제"를 들고 나온 문국현 후보에게 진취적인 후보의 이미지에서 밀려나기 시작할때 예견된 일이지만, 이제는 밀려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무릇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박근혜를 이기는 쪽이 진보가 아니라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는 쪽"이 진보입니다. 문재인이나 안철수는 진보쪽으로 견인해내기 쉬운 후보이지 진보후보는 아닌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진보가 더 이상 진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많습니다.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SNS를 서핑하다 보면, 다양한 팟캐스트들을 섭렵하다 보면, 혹은 2008년 촛불때의 그 분출하는 에너지와 담론들, 당시 진보신당 게시판의 그 유쾌발랄하던 토론과 아이디어들을 보면 이건 거짓말입니다. 진보는 진보했으며, 지금도 진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을 정확히 해야 합니다. "진보가 진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보하지 않은 자들이 번번히 진보후보로 추대되었기 때문" 이라고 말입니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건 소위 진보라는 사람들이 모인 진보운동 단체들이 한결같이 봉건적인 문화에 쩔어있기 때문입니다. 아래 사진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

곽노현 교육감 선고공판 뉴스보다 짜증나는 차기 하마평

곽노현 교육감의 상고심 선고공판 날짜가 나왔다. 또 추석 전날. 작년에도 추석 전날에 구속시키더니, 또 추석 민심용 이벤트를 하려나 보다. 물론 대법원에서 결단을 내려 뜻밖의 선고를 할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하되, 최악에 대비하라"는 아웅산 장군의 말 대로 일단 최악도 생각해 두기는 해야겠다.

그런데 곽교육감의 직상실 운운하는 뉴스보다 더 짜증나는 뉴스는 따로 있다. 교육감직 상실이야 이미 지난 4월17일 항소심 판결 이후 각오하고 있던 일이다. 그래서 곽교육감과 그를 위해 일하는 서울교육혁신 일꾼들은 언제 교육감을 잃게 될지 모르는 상황속에서 되도록 많은 개혁성과를 이루기 위해 피눈물나게 싸워왔다.

보수파 관료들이 6월 28일, 늦어도 7월 17일이에 선고공판과 함께 곽노현 교육감은 사라진다고 생각하며 사보타지 할때 어거지로 개혁을 밀고가던 입장에선, 그래도 9월 인사 및 2013년도 사업계획, 그리고 조직개편안까지 마무리 짓게 된것은 하늘이 도와주신것이라 생각하며 매우 감사히 여기고 있다. 나는 7월 초, 정말 선고공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을때, 초촐한 식사자리에서 곽교육감이 보여준 각오와 달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때 강경선 교수가 "저들은 결국 너를 집어 넣으려 할거야"라고 단언하자, 곽교육감은 "아니, 넉달 들어갔다 온걸로 부족해?"라고 반문했지만, 이미 어떤 결과든 다 걸머지고 가겠다는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곽교육감은 나에게 나이차는 10년 이상 나지만 더 이상 진보교육감이나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오랜 벗처럼 느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직을 상실하건, 남은 8개월을 복역하건, 아니면 나중에 다시 명예가 회복되건, 한 사람의 삶은 그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며, 그는 그 순간 모든 보상을 충분히 받고 그가 믿는 신의 품으로 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곽노현 교육감의 선고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상황에 따른 플랜 A와 플랜 B를 가동할 뿐, 흔들리거…

진짜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어볼까? (1)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를 반대했던 전교조 간부

얼마 전에 "블랙박스"라는 책을 열심히 선전하던 사람들을 만났다. 소위 당권파의 억울함을 선전하는 책이었는데, 나름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그 정도를 가지고 블랙박스라고 하기에는 매우 미흡했다. 그들이 엄청나게 많은 블랙박스를 갖고 있는 자들이었으니. 게다가 그들은 참여계도 부정을 저지른 주제에 우리만 뭐라한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참여계가 먼저 사퇴하면서 이석기, 김재연의 사퇴 뒤 자리를 승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실은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즉, 비례대표 경선 자체가 개판이었으니, "너나 가릴것 없이 경선으로 뽑힌 비례 대표들은 다 물러나자"가 팩트다. 서기호, 정진후, 박원석 등은 경선을 거치지 않은 후보들이니까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블랙박스를 조금씩 열어볼까 한다. 그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전혀 진보가 아닌데 진보 행세를 하면서 진보를 엉뚱한 종족주의로 오해받게 만들고 있어 그 병폐가 심각하기 때문에 이들을  적출하기 위해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 뺑소니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은 뺑소니를 해서라도 몰아내야 할 세력이다. 적어도 진보라는 이름은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 경험담 몇 개 풀어본다. 그 중 첫번째 경험담이다.

2007년 어느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미얀마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 특기할만한 것은 승려들이 다수 참여했다는 것이었고,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군인들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국제사회에서 다시 미얀마 독재정권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아웅산 수치 석방", "학살의 중지", "공정한 선거 실시"등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압력과 시민단체들의 연대성명이 확산되었다. 시민단체들의 거센 항의와 불매운동에 견디지 못하고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이 미얀마에 투자한 법인을 철수하는 일도 발생했으며, 독재자라 할지라도 돈 벌게 해주면 상관없다던 일본조차 일본인 기자가 총격으로 사망한 상황에선 …

아웅산 장군의 딸 수치, 박정희 장군의 딸 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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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봉한 영화 "더 레이디"가 상영관의 교묘한 시간배치에도 불구하고(보기 어려운 시간만 골라가며 배치) 입소문을 빠르게 타고 있다. 그런데 이 입소문 중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그리고 심지어 불쾌하기까지 한 입소문이 있어서 부득불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 소문이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미안마(버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를 연결짓는 어처구니 없는 입소문이다.

물론 박근혜 입장에서야 "강철 난초"라느니 "여성 만델라"라느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여성의 이미지에 자신을 슬쩍 얹어 가는 것이 엄청난 이득이겠지만, 그렇게 되면 세계의 존경을 받고 있는 아웅산 수치 여사 입장은 뭐가 되겠는가?

영화속의 한 장면을 보자. 시위대에게 발포하려는 군인들의 총구를 향해 뚜벅 뚜벅 걸어가는 모습이다. 자, 따져보자. 박근혜 후보의 인생은 총을 겨눈 이 군인들과 수치 등 뒤에서 초조하게 바라보는 민주화 운동세력들 중 어느쪽이었나? 바로 답이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공교롭게 아버지가 장군이었다는 점, 그리고 아버지가 암살당했다는 점, 그리고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정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꾸 이 둘을 비교하는 정신나간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 둘은 장군인 아버지부터 그 결이 다르다.

1.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장군 vs 독립군과 싸운 장군/ 쿠데타에 희생된 장군 vs 쿠데타로 권력을 차지한 장군



수치 여사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은 버마 독립운동의 영웅이다. 여러 소수민족과 지방세력으로 나뉘어져 영국의 지배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던 버마인들을 단결시켜 영국군과 싸웠다. 그런데 처음 영국군과 싸울때 이를 지원하던 일본군이 영국을 몰아내자마자 버마를 지배하려 하자, 이번에는 다시 일본군과 싸웠다. 이렇게 거의 평생을 싸웠으나 정작 조국 독립을 6개월 앞두고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반대파의 총탄을 맞고 동지 7명과 함께 안타…

학교폭력을 놓고 벌리는 교과부와 진보진영의 막장극을 중단하라

학교폭력 문제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이건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혹자는 별것 아닌 행위로 가해자로 몰려서 처벌받은 억울함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억울함 100명분을 모아도 피해자 한사람의 고통에 미치지 못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공감의 동물이기 때문에 동료들을 믿지 못하고, 동료들을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은 거의 지옥과 다름없는 고통이다. 여기에 신체적, 언어적 위해행위까지 곁들여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러니 학교폭력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를 경우 교육당국이 느낄 당혹함과 초조함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대해 초조감을 느끼지 않는 교육당국은 오히려 직무를 유기하거나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초조하다 하더라도 그 대책마저 졸속이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하여 5년간 보존하도록 하겠다는 교과부의 지침은 그런 초조함이 만들어낸 또다른 졸속이다. "학교폭력"을 구태여 별도로 분류하는 까닭은 이것이 일차적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당국이 내어 놓는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 역시 교육의 한 종류로서 나와야 한다. 적어도 이게 법무부나 행안부에서 내어놓는 대책과는 결이 달라야 하는 것이다.

교육이 무엇이냐에 대한 정의는 무수히 많지만 그 많은 정의들이 공통으로 전제하고 있는것은 "학생의 변화를 위한 의도적인 개입"이라는 것이다. 교육은 학생의 변화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 변화는 그저 기다린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가진 개입, 즉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교육적 조치도 학생의 변화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그런데 교과부의 이번 조치는 일단 징계를 받으면 돌이킬수 없게끔, 더 나아가서 보복성 불이익까지 당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형벌로서는 의미가 있으나 교육으로서는 의미가 없으며, 교육을 책임지는 부서에서 내놓을만한 방안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기재 거부"를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