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29.

민주당이 쇄신되어야 한다면 뭐가 쇄신되어야 할까?

안철수는 올듯말듯하며, 안철수계열의 분들은 계속 안철수를 부르지 말고 먼저 민주당이 쇄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주장은 항상 둘이다.

1) 기득권을 내려 놓아라. 
2) 정치를 혁신하라. 

그런데 지금은 곁을 떠났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싫어했던 화법이 바로 이런 식의 화법이었다. 운동권출신들이 항상 이런 화법을 구사하는데, 그때마다 노대통령은 이런식의 의견과 함께 반려시켰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그 기득권들이 뭔지를 스스로 연구하게 하고, 정치 혁신을 스스로 계획하는 부담지우는 것 보다는, 무슨 지시와 무슨 결정을 원하는지 적시해서 주세요."

그러니 안철수의 멘토 분들은 저런 선문답 하지 말고, 예를 들면 3대영역 12과제와 4단계 로드맵, 이런 시의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구체적인 안은 그 안에서 실제로 부딪치며 고민하고 싸운 사람들이라야 생각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경험이 없는 관료들의 교육혁신안이 공허한 것과 마찬가지로 도도한 민주화운동의 물결 근처에도 없었던 사람이 그 과정속에서 생겨난 어느 정치집단의 혁신안을 구체적으로 만들수는 없는 것이다. 그럴때는 배워야 한다. 정당정치의 혁신을 꿈꾸었던 노무현의 실패로부터

저번에 민주당의 역사(전편 보기)에 대해 보았다면, 이렇게 이합집산을 거듭하다보면 자연히 그 내부에 파벌들이 생길수 밖에 없음은 쉽게 짐작할수 있다. 그리고 그 파벌들에는 보스가 있다. 민주당은 일종의 연맹왕국 혹은 중세 봉건왕국 같아서 이 파벌에 속한 정치인들은 중세때 기사들처럼 당대표(국왕) 보다는 자기 계파의 보스에게 직접적으로 충성한다. 그러니 언제든지 계파 보스가 "당 깨고 나가자!" 그러면 우르르 몰려 나가는 것이다.

노무현이 이런 계파정치의 폐해를 가장 뼈져리게 느낀것이 바로 3당 합당때였다. 김영삼은 지금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중요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다. 엄밀히 말해 김대중은 유신정권 내내 국외에 있었고, 국내에서 유신과 전두환 독재의 칼바람에 온몸으로 맞선 사람은 김영삼이었다.  아래 사진을 보라. 경찰에 끌려가는 김영삼의 굳세게 깨무는 입. 솔직히 요즘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저런 결기를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그 시절 김영삼은 참 대단했다.
유신에 맞서 노동자들을 옹호하다 사복경찰에게 연행되는 김영삼 신민당 총재
5공에 항거하다 최루탄을 뒤집어 쓰고 닭장차로 끌려가는 김영삼 통민당 총재

당연히 김영삼과 계파원들인 상도동계 정치인들 역시 유신과 5공 독재의 모진 탄압에 함께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이랬던 사람이 유신의 박정희의 2인자인 김종필, 전두환의 2인자인 노태우와 합당을 하곘다고 한다고 하면, 이걸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이건 평생의 삶에 대한 부정이며, 자기 자신을 모욕하는 일이며, 따라서 인간성을 모욕하는 일이다.

굴욕적인 3당 합당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통일민주당의 국회의원 59명중 8명만 빼고 평생 싸워온 상대인 군부독재의 똘마니가 되는 길을 기꺼이 선택했다. 왜? 계파 보스인 김영삼이 선택했으니까. 그러니 이들은 김영삼이 반독재 투쟁을 했기에 싸운 것이고, 김영삼이 독재에 투항했기에 같이 투항한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정치적 소신도 판단도 없다. 그리고 이런 식의 메카니즘은 3당합당에 참가하지 않은 평화민주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김대중이 노태우와 손을 잡는 선택을 했다면, 호남기반의 평화민주당 70명 의원들 역시 기꺼이 광주학살 주범의 똘마니가 되는 길을 군말없이 선택했을 것이다.

지금 민주통합당에서 이런 모습이 그나마 덜 보이는 것은 당이 개혁되어서가 아니라 당시 김영삼, 김대중 같은 절대적인 보스가 없어서, 여러 군소 계파들이 할거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스정치, 이게 바로 60년 된 정통 야당 민주당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이다. 그런만큼 이런 보스 계파정치에도 불구하고 보스가 아닌 대의를 선택했던, 그래서 김영삼의 명령을 거부하고 군부독재의 하수인이 될수 없다고 버틴 8명의 이름은 기록해 둘 만하다.이기택, 김정길, 장석화, 김상현, 박찬종, 홍사덕, 이철, 그리고 노무현. 이 중 끝까지 지조를 지킨 인물은 장석화, 이철, 김정길, 노무현이다.

3당합당에 반대하다가 당직자에게 제지당하며 절규하는 노무현, 김정길 의원

그렇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가능하게 한 계파정치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 둘이 조합한 연립방정식이다.

1) 계파는 특정한 지역(동교동계는 호남, 상도동계는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2) 계파의 보스는 국회의원의 공천과 정치자금 조달의 전권을 쥐고 있다.

이 둘이 결합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부산 경남에 김영삼의 추천을 받은 후보라면 막대기를 꽂아 놓아도 당선이다. 반대로 호남에 김대중의 추천을 받은 후보라면 강아지도 당선이다. 따라서 부산 경남, 혹은 호남에 공천을 받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인생이 바뀐다. 그렇다면 공천권을 쥐고 있는 계파의 보스에게는 절대적으로 충성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되는 공식은 그것 뿐이다. 

게다가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유명한 정치인일수록 후원금이 많이 들어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 계파의 보스라면? 이 돈을 신진 정치인에게 적절히 나누어 주는 것 역시 보스 권력의 원천이다. 신진 정치인은 보스가 지역구에 공천해주고, 또 보스가 지역구 관리할 실탄도 분배해 주니 복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눈 밖에 나면 지역구도 날아가고, 정치자금도 끊긴다. 보스를 거역하고 3당합당에 참여하지 않은 8명은 이후 정치활동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게 보스의 권력이 크다보면, 당연히 계파원들을 관리하고 자금 및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측근 그룹이 생기기 마련이다. 김영삼 옆에는 항상 돌격대 역할을 하는 김동영, 최형우, 각종 정치자금을 관리하는 서석재, 김덕룡, 책사 황병태 같은 가신들이 있었다. 김대중 옆에는 정치자금 및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권노갑, 돌격대 김상현, 한화갑, 잡다한 일을 해결해주는 한광옥, 그리고 책사 박지원이 있었다.

측근 그룹이 또 세월이 지나면 중간보스급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이 중간보스들에게 줄을 대는 자들이 나타나고, 결국 당은 여러 작은 계파들간의 이전투구의 장으로 바뀌어 버린다. 하지만 공천권을 보스가 쥐고 있는 한, 아무리 까불어 봐야 별 볼일 없다. 김영삼, 김대중이 모두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자기 당의 총수 자리를 내어놓지 않고 공천권을 행사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김대중은 가족같던 가신 김상현을 내치는 비정한 모습도 보이고, 한화갑등 옛 동교동계 가신보다 박지원, 이해찬 등 신진 세력을 중용하면서 서로 견제하게 하는 등 절대 2인자가 나오지 못해게 했다. 반면 김영삼은 대통령이 된 뒤 계파 관리를 소홀히 하면서 중간보스들이 통제 불능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상도동계의 좌장인 김동영이 사망하고, 때맞춰서 또다른 좌장인 최형우가 맛이 가면서 김덕룡, 서석재, 서청원, 강삼재 등의 중간 보스들이 각개 약진하면서 오랜 역사를 지닌 민주계(상도동계)는 계파로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럼 이런 보스정치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1) 정경유착의 가능성: 보스는 자금을 관리해야 한다. 계파원을 먹여살리지 못하는 보스는 계파를 유지하지 못한다. 이런 목돈은 자본가가 아니면 내어놓기 어렵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정경유착의 고리가 형성된다. 당시 재벌들은 항상 야당에도 "보험"을 들어놓기 때문에 김영삼, 김대중 같은 유력한 야당 지도자들은 잠재적 대통령으로써 넉넉한 자금을 구할 수 있었다.

2) 민주화에 대한 절박성 상실한 기득권그룹 발생: 보스에 대한 충성이 확인된 의원들은 이제 당선이 확실시되는 지역에 안정적으로 공천받게 된다. 즉 김영삼의 측근은 부산 경남에, 김대중의 측근은 호남에, 또 수도권에서도 전통적인 강세지역에 안정적으로 공천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3선, 4선, 5선, 거의 무한대선 의원이 가능하다. 그러니 이들이 보수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예컨대 김대중의 계파 호남지역 국회의원들이 바라는 것은 특별히 야심이 없다면, 이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민주당이 권력을 잡지 못해도, 민주당이 소수정당으로 전락해도, 민주당 당적을 유지하고, 호남에 공천이 되는 한 그의 권력은 영원하다. 마침내 이들은 그 지역의 호족이 된다.

3) 이러한 상황은 지방자치제와 함께 보스가 해 줄수 있는 자리가 엄청 늘어나자 더욱 심각해졌다.

그러니 이런 상태로는 어떤 개혁도 혁신도 불가능하다. 김대중 역시 이를 깨닫고  김근태 등 재야 운동권과 386학생 운동권 출신의 젊은 피를 대거 수혈하는데, 이렇게 들어온 운동권 출신들은 당연히 김대중을 보스로 모시는 기존 정당정치에 기겁할수 밖에 없었고 이후 동교동계와 계속 갈등한다. 대표적 사례가 이들 운동권 출신들이 김대중의 정책을 비판하자 동교동계에서 "어떻게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라며 반발한 부카닉한 사건이다. 사실 어찌 보면 김대중은 노회하게 보자면 이 갈등을 이용해서 동교동계의 중간보스들, 특히 한화갑이 지나치게 성장하는 것을 견제했다고 볼 수 있고, 좋게 보자면 동교동계는 더 이상 개혁세력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서서히 무게중심을 옮겨갔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민주당은 기존의 호남 기득권층(한화갑 등), 민주당 신파(정동영), 중도개혁파(어거지로 이인제 등), 그리고 386 운동권층(김근태 등)의 대결장이 되었고,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바로 이들이 승부를 겨루는 장이었다. 당시 최대 계파는 중도개혁파였다. 그리고 예전처럼 대통령 후보가 당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선이었다면 이인제는 무난히 후보가 되고, 그를 중심으로 한화갑, 정동영이 연정을 구성하고, 김근태를 왕따시키는 구도가 만들어 졌을 것이며, 민주당은 또 그렇게 한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 실시한 국민참여 경선(이것도 계파후보는 조직력으로 동원가능하다고 믿음)에서 계파 조직을 무력하게 만든 시민들의 물결이 엉뚱하게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다. 이건 계파정치 조직동원 정치 보스정치에 신물난 시민들의 반란이며, 최근 안철수 현상의 원조, 더 강력한 원조다. 

노무현 대통령의 등장은 민주당의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결과였고, 계파들은 혼란에 빠졌다. 만약 노무현이 이 중 몇 정파, 예컨대 정동영계와 김근태계를 친위대로 삼아서 공천권을 무기로 보스역할을 했다면 이인제가 날아간 중도개혁파는 철새집단이기 때문에 그 밑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그걸 예상했고, 보스정치에 익숙한 기존 정치인들은 심지어 그렇게 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노무현은 대통령과 의회 권력의 분할이 민주주의의 원칙임을 강조하며 국회의원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지 않고, 당 총재 등을 맡지도 않았다. 불행히도 민주당은 보스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경험을 한 적이 없는 당이다. 민주당은 이름과 달리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당인 것이다. 그 결과는 우왕좌왕, 그리고 이전투구. 아무래도 재야 운동권 출신인 노무현과 그나마 코드가 맞았던 계열은 김근태 계열인데, 이들은 또 불행히도 "밀당"할줄 모르는 우직한 운동권 집단이라 기존 당권파인 동교동계와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갈등은 결국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로 이어졌고, 이후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점거해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계속되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도 되는 호남기반 정치인들과 개혁을 밀어붙이고 싶었던 운동권간의 갈등은, 당 지도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당내 보수파(선대인 말대로 이들의 보스가 김진표였는지는 알수 없다)들이 미온적으로 움직여서 개혁입법의 힘을 빠지게하는 형태로 나타나면서 열린우리당을 허접한 당으로 망가뜨리고 말았다.

자, 이쯤되면 민주당이 쇄신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다.

1) 계파의 중간보스들의 권력을 내려놓아라. 신파인 이해찬도, 구파인 김한길도, 그외 호남 지역 토호들도 모두

2)  아직도 전략공천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는 중앙당의 공천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각 지역당에서 당원들이 후보를 선출하게 하라.(사실 이것도 시작단계에선 많은 문제를 불러왔다. 관리도 서투르고 부정의 유혹도 많다. 경험이 없으니)

3) 당의 대표와 당직자들을 시민들이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상시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라.

4) 당의 정체성을 다시 선명히 하고, 미래의 전망을 열수 있는 정책개발 체계를 갖추어라. 

5) 기초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을 폐지하라는 안철수측의 요구가 있는데, 이는 후보의 부담을 너무 키우기 때문에, 이 역시 해당 자치구민의 경선을 통해 후보를 정하면 무난하다.

그 밖에도, 앞에서 분석했던 지점들을 잡아낸다면, 여기서 어떤 방향의 혁신 방안을 찾을수 있는지는 금방금방 나올수 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6) 당 혁신위원회 같은 기구를 설치해서 이후 당의 전망을 설계할 전권을 주고, 시민들의 브레인 스토밍을 받도록 하고, 그 위원장에 안철수를 추대하는 것이다.

아이고, 지친다. 이제 다음 편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






민주당의 쇄신을 바란다면, 먼저 민주당을 알고, 그 다음에 무엇을 바꾸라고 구체적으로 말하라

안희정 충남지사는 이명박이 당선되고 나서 친노를 폐족이라 칭하며 용서를 구했다. 물론 그가 실패했다고 주장한 것은 조중동의 말처럼 "국정을 망쳤기 때문" 이 아니라 "기대한만큼 개혁을 이루지 못했고, 오히려 진보개혁진영의 단결마저 무너져서 정권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참여정부, 혹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 있다. 이명박의 경우는 통상적인 수준의 국정마저도 농단해 버렸기에 실패한 정부이지만, 참여정부는 엄밀히 말하면 실패한 정부가 아니라 "개혁에 실패한 정부"다. 그런데 진보진영 특유의 자학 성향이 이걸 과장해서 표현한 것이 폐족이다.

그냥 "5년만에 개혁이 되리라 믿은 것은 너무 순진했다. 그리고 권력 앞에서는 진보, 개혁을 주장하던 사람들도 쉽게 변한다는 것, 그리고 국민이 원하는 개혁의 우선순위와 운동세력이 원하는 개혁의 우선순위, 또 경제가 원하는 개혁의 우선순위 간의 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 정도만 말했어도 그만인 것을 무슨 을사늑약이라도 맺고 오는 사람처럼 반성을 오버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폐족이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지금 그 시절보다 더 영전해서 충남감사 대감이 되어 있으니, 참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참여정부와 민주당이 비판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민주당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민주당을 비판하고 민주당이 바뀌려고 해도 그 비판의 방향과 영역이 너무 다양하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오랜 세월 정말 끈질기게 살아남아온 민주당은 문재인 후보의 캠프이름처럼 담쟁이, 아니 잡초같은 정당이라 그 정체성도 모호하다.

안철수의 민주당 쇄신론이 허공에 뜬 공허한 구호로 끝난것도, 민주당의 이런 복잡한 역사를 생각하지 않고, 최근 1년간 보여준 민주당의 모습을 보고 민주당의 본질을 파악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건 80년대때 이른바 사회과학 학습을 한 사람이라면 결코 범하지 않을 오류였다. 그러니 안철수와 또 새정치, 정치쇄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추상적인 민주당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파악된 구체적인 민주당을 살펴보아야 한다. 역사가 열라 복잡하고 기니, 인내심을 갖기 바란다. 아니면 적절히 몇 편으로 잘라 보겠다. 이것도 뭐, 일종의 사회수업이다.


민주당의 뿌리

이승만 독재시절을 이야기하면 항상 나오는게 여당인 자유당의 횡포, 그리고 맨날 얻어터지는 야당 민주당이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는것과 달리 민주당은 이승만정권 내내 있었던 당이 아니라 이미 이승만 정권 말기로 들어선 1955년에야 복잡한 과정을 거쳐 창당된 당이다. 그 창당 과정을 보면 다음 그림과 같이 무지하게 복잡하다.

이승만 정권 시절의 민주당

일단 민주당에서 제일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세력은 민주국민당 계열이다. 이들을 일컬어 민주당 구파라 부른다. 이들의 뿌리는 한국민주당(한민당)에 있다. 한민당은 엄밀히 말하면 친일지주, 친일자본가들이 해방직후 가장 크게 떠오르던 좌파 여운형, 민족주의 김구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정당이다. 이들이 여운형, 김구의 대항마로 이승만과 연대했으니, 엄밀히 말하면 야당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이들 중 그나마 진보적이었던 송진우, 장덕수 등이 연달아 암살당하면서 참, 그저 그런 정당이 되었다. 김구를 누르면서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한 정당도 한민당이다.

그러다 이승만이 자기 친위 정당인 자유당을 창당하자 하루아침에 배신을 당했다. 그래서 이승만에게 배신당한 또 다른 구여당인 대한국민당과 연대해서 민국당을 만들었다. 민국당은 그러니 이승만에 대항하는 야당이라기 보다는 이승만에게 버림받은 구여당이다. 물론 대한민국 건국초기에는 지금처럼야당과 여당이 홍어조 처럼 싸우던 시절이 아니었다. 한민당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좌파인 조봉암 같은 사람도 이승만 정권에서 장관으로 임명되곤 했으니, 사실 요즘보다 훨씬 나은면이 있다.

사형당하는 진보정치인 조봉암
그러다 여야의 갈등이 심해지기 시작한것은 이승만이 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헌법을 뜯어고쳐가며 대통령을 계속 해먹으려 할때 부터였다. 그리고 그 이름도 유명한 정말 어이없는 사건인 사사오입개헌 을 계기로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민국당은 이제 이승만과 대립하는 그야말로 야당이 되었으며, 재야 세력과 연대하여 "야권 단일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진보세력이 배제되면서 보수야권만의 단일화를 이루어 만들어진 정당이 바로 민주당이다(1955년). 그리고 한민당에서 민국당을 거쳐온 세력을 민주당 구파, 나중에 재야세력까지 포괄할때 들어온 세력이 민주당 신파다. 한편 진보세력은 조봉암을 중심으로 진보당의 창당에 박차를 가하였다.

하지만 이들 역시 진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625 전쟁 직후기도 하고 해서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다. 심지어 진보당도 요즘의 진보정의당이나 통합진보당보다 훨씬 온건했다. 옛날 열린 우리당의 김근태계 정도 위치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런 진보당의 리더인 조봉암이 간첩으로 몰려서 사형당하는 세상이었다.

조봉암 사형후 진보당은 지리멸렬해졌고 결국 보수야권 총단결체인 민주당이 이후 몇년간 이승만 독재와 싸워왔다. 그리고 419 혁명이 일어났고, 마침내 민주당이 정권(1960년)을 잡았으며, 구파인 윤보선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때 윤보선은 신파인 장면을 총리로 임명하였는데, 당시 2공화국은 의원내각제였기 때문에 장관을 임명할 수 있는 장면 총리가 오히려 권한이 더 강했다. 그래서 알맹이 좋은 장관자리를 놓고 구파와 신파간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이틈을 타고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민주당의 정권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동안 박정희는 모든 자유당, 민주당 계열을 모조리 구태정치로 몰아붙이면서 국회의원, 정당인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안철수가 여야 가리지 않고 구태정치 쇄신하며, 쌈질하는 국회의원 줄이겠다고 말했을때 진보지식인들이 경악했던 이유가 다 있는것이며, 그런 말을 쉽게 한걸로 볼때 안철수는 아직 대한민국 정치사에 대한 의식이 충분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서 2년이 지나 박정희가 정치활동을 허용했으나, 이미 민주당 구파와 신파의 골이 깊고, 힘도 빠져서 야권은 여러 정당이 지리멸렬하는 상황이 왔다. 하지만 이승만 시절보다는 비교적 단순한게 계속해서 민주당 구파와 신파가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형국이다.

이때 제일 먼저 민주당 재건에 나선 사람은 민주당 신파의 여장부인 박순천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윤보선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당 구파의 민정당(전두환의 민정당 아님)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여전히 화합하지 않았으나, 1965년 굴욕적인 한일외교 조약 반대투쟁(63항쟁)을 계기로 하나로 뭉치게 되었다.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당이 민중당이다. 그러나 63항쟁 도중, 선명야당을 내걸면서 국회의원직 총사퇴등 강경투쟁을 외쳤던 세력이 민중당의 소극적 투쟁에 반발하여 뛰쳐나가게 되는데 이들이 세운 정당이 신한당이다. 명분은 그러하지만 실제로는 민주당 신파인 박순천이 대표인 민중당에서 윤보선등 구파가 운신하기 쉽지 않아 일어난 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1967년 대통령선거가 다가오자 또다시 야권 단일후보를 만들기 위해 다시 뭉치게 되는데 이때 만들어진 당이 신민당이다.
유신 이전 박정희 시대의 야당

유신 직전의 신민당
이후 김영삼, 김대중이 활약하고, 유신과 참 힘겹게 싸웠던 그 야당이 바로 신민당이다. 그리고 신민당 이전까지만 해도 야당은 다만 권력에서 배제된 정당일뿐, 투쟁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차피 보수적인 정치인들의 집합인 야당을 투쟁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유신 독재, 즉 박정희에 대한 반작용이다.

유신시대는 신민당이 끝까지 간다. 오늘날의 민주당의 전신인 야권이 이렇게 오랫동안 당이 깨지지도 않고, 이름도 바꾸지 않고 오래 유지된 것은 유신시대 뿐이다. 그만큼 박정희 독재가 가혹했기 때문에 꽁꽁 뭉쳐서 단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만 하나로 유지가 되었을 뿐, 그 내부에는 여러 계파가 나뉘어져 있었다.

그 놈의 신파, 구파는 뿌리깊게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신파의 리더는 이철승, 구파의 리더는 유진산이었다. 그리고 신파계열의 떠오르는 지도자 김대중, 구파계열의 신성 김영삼도 나름 자기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선거가 문제였는데, 과거 여러 정당으로 나누어졌다가 야권단일후보를 만들때는 담판으로 결정 지었지만, 이제 야권이 당으로는 하나인데, 그 안에 계파가 나누어져 있다 보니 처음으로 내부경선이란 것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김영삼이 유리했다. 유진산이 일찌감치 민주당 구파의 좌장 자리를 젊은 김영삼에게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신파는 이철승도 출마했기 때문에 김대중과 표를 나눠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김영삼이 1차 투표에서 1위는 했으나, 과반을 득표하지 못했다는 것. 결국 결선투표에서 이철승이 김대중에게 신파를 넘겨버리면서 판세가 뒤집히고 말았다. 그리고 김대중이 1970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게 되었다. 매우 근소한 차로 지고 말았지만..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체크 포인트.

1) 다 잡은 대권후보를 놓친 김영삼의 충격! 그런데 김영삼은 오래 칩거하지 않았다. 즉시 승복하고, 김대중의 선거운동원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김대중이 박정희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게 된 것도, 김영삼이 열심히 영남권에서 뛰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뭐라 해도 당시 김영삼은 대통령 할만한 그릇이었다. 야권의 어느 후보도 새겨 들어야 한다.
2) 민주당 신파, 구파 계파에 호남, 영남 지역구도가 결합해 버렸다는 것(최악!). 이 악몽은 이제 수십년간,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유신 시대... 무시무시한 시대였다. 그리고 신민당은 그 전신인 한민당, 민주당 등이 보여주지 못했던 투쟁성을 강요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나라는 한 마디로 공포의 나라였다. 야당은 무론, 여당까지도 공포에 떨었다. 몇가지 적어볼까? 요즘 세대들은 상상도 못할 일들. 이걸 보면 박정희 향수를 느끼는 노인들을 경멸할 이유가 충분할 것이다.

1) 대통령 선거가 없다. 1500여명의 대의원들이 체육관에서 한다. 보통 현 대통령이 90% 이상의 득표로 당선된다. 대위원들이 모여서 90% 이상 찬성해서 지도자 뽑는 나라, 현재 우리나라 아주 가까이에 하나 있기는 하다. 딱 그 나라 꼴이다.
2)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3)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수도 있다. 
4)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을 국회가 해임결의하자, 여당(야당도 아니고) 대표 4명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죽도록 얻어맞고, 수염도 뽑히고 불구자가 되어서 나온 뒤 정계를 은퇴한다. 
5) 그 중앙정보부 부장을 지낸 자가 그만둔 뒤 외국에서 반 박정희 활동을 하자, 정보부요원들을 풀어서 폐차장에서 압착시켜 죽였던가, 양계장에서 그라인더로 갈아서 죽였던가 한다. 
6)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을 요원들이 납치해서 배에 태운뒤 바다에서 집어던져 죽이려다 미국, 일본정부에게 들켜서 개망신 당하고, 김대중 구사일생한다. 
7) 야당 당수인 김영삼을 어거지로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한뒤 쫓아내버린다.
그 밖에도 유신시대의 어이없는 이야기 시리즈로 늘어놓으라면 책이 몇권 나온다. 딱 김정일 부칸에서나 들을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래서 bbc같은 외국 방송이 그 박정희 딸이 대통령 선거에 나온것을 신기하게 보도한다.

암흑기를 버티면서 비로소 신민당은 야당=저항, 희망 이란 공식에 얼추 맞춰들어갔다. 물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유신이 워낙 드세니...

그리고 10.26으로 박정희가 죽었으나 12.12., 5.17로 전두환이 또 쿠데타를 일으켜서 제5공화국 독재가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신민당은 또 "구태 정치" 로 몰려서 정치활동을 금지당하고 해체되고 말았다. 그리고 한동안 민한당이란 어용 야당이 형식적으로 있는 가운데 전두환의 민정당 독재가 시작되었다. 김대중은 미국으로 망명가고, 김영삼은 집밖으로 못나오고 통신도 두절되는 사실상 감금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 1985년 정치활동 금지가 해제되고(김영삼, 김대중은 여전히 금지) 옛 신민당 정치인들이 다시 뭉쳐서 신한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이 신한민주당은 1987년 6월항쟁을 맞이하여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는데, 이때는 김영삼과 김대중이 강경투쟁에 손을 모았다. 마침내 김영삼, 김대중 계열만 따로 튀어나와서 통일민주당을 창당하고, 신민당 내 온건파(결국 전두환 앞에 쫄은)는 소수파만 남아 있다가 민정당에 흡수되어 버렸다. 그리고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 단일화를 염원하던 국민들을 배반하고 김영삼과 김대중은 서로 반목하다가 김대중이 뛰쳐나가서 평화민주당을 세우면서 다시 야당이 둘로 갈라지게 된다. 그리고 각자 대통령으로 출마했으나, 결국 노태우에게 지고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당시 노태우의 별명이 36% 대통령인데, 이는 김영삼, 김대중의 단일화 실패가 얼마나 애석한 일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두개의 민주당(통민당과 평민당)은 각자 자기 지역에서 선전했다. 그리하여 1988년 선거에서 민정당이 원내 소수당이 되는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 역사상 최대의 여소야대 국회를 국민들이 만들어 주었는데, 그만 김영삼이 놀라운 결정을 한다. 1990년에 바로 3당합당. 이로써 김영삼이 통일민주당의 대부분의 의원들을 몰고 민정당과 합치면서 민주자유당(민자당)이 만들어졌다. 둘로 갈라졌던 민주당 중 하나만 남았고, 이로써 부산, 경남이 저항의 거점에서 보수의 거점으로 넘어가게되었다.


하지만 이기택, 노무현 김정길 홍사덕 박찬종 등 일부 의원들이 3당 통합에 반대하면서 합류를 거부했고, 여기에 무소속의 이철 의원 등이 합류하면서 이른바 꼬마민주당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들이 이들이 1991년 김대중의 신민주연합당과 합치면서 다시 당명을 민주당으로 정해서 정통성을 과시했다. 이때의 민주당을 통합민주당이라 부르는데, 이 통합민주당은 감히 대한민국 야당 역사상 최고의 정당이라 불릴만큼 역량있고 활기넘치는 정당이었다. 여기에는 꼬마민주당에서 건너온 젊은 피들이 큰 역할을 했다. 만약 이때 김대중이 이들과 함께 대통령이 되었으면 아마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역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1992년 김영삼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는 다들 잘 아는 imf다.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은 정계 은퇴선언을 한다. 하지만 김대중이 은퇴한 뒤에도 통합민주당은 별 문제없이 잘 돌아갔다. 3당 합당으로 2/3의 의석을 차지했던 민자당을 과반 컷트라인 수준으로 위축시켜 놓았고, 정책 능력도 훨씬 뛰어났다. 잠룡들이 등장했고, 상대적으로 민자당에는 이렇다할 차기 주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김대중이 다시 정계 복귀를 시도하면서 미래를 꿈꾸던 신진세력과 갈등이 격화되었다. 이 갈등은 결국 다시 분당으로 이어져서 김대중을 추종하는 세력들은 민주당을 버리고 재야운동권과 연대하여 새천년 국민회의를 창당하였다. 소수파로 남은 민주당은 1996년 총선에서 사실상 소멸되고, 생존다즐은 결국 민자당의 후신인 신한국당에 흡수되었다.

이 구도를 보면 계속해서 어디선가 신진 세력을 데려와서 키운 다음에는 원래 있던 세력과 반목이 일어나서 그들을 쫓아내고, 쫓겨난 신진은 결국 여당에 흡수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어쨌든 이 새정치 국민회의를 가지고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이후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 민주당)는 이번에는 386 운동권 출신들을 대거 수혈(당시 용어로 젊은 피)해서 세를 불린 뒤 당명을 다시 민주당으로 바꾸었다.



이때부터 민주당의 진보색이 강해졌다. 그리고 이 진보색을 바탕으로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또한 이때부터 민주당 내의 보혁갈등이 벌어졌다. 경우에 따라서 이 갈등은 과거 여야 갈등을 방불케 헀다. 물론 이때도 "구태정치 척결"이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 갈등은 끝내 또 다른 분당 사태로 이어졌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갈라진 것이다. 그리고 잔존 민주당은 노무현 탄핵을 위해 광주학살세력인 한나라당과 손을 잡는 엽기적인 행각까지 벌리게 되었다. 그들의 배신은 응징받아서 열린우리당은 민주당 계열에서 가장 큰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386운동권과 정동영, 천정배, 유시민 등 젊은 피들과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동교동계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았다. 과반 의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성향상 보수야당의 진보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옛 민주당 성향 의원들의 반발로 개혁입법을 거의 해내지 못했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다가 대선을 맞이해서 민주당의 탈당파, 그리고 한나라당의 탈당파(손학규 계)를 끌어모아서 외연을 확대한 것이 대통합 민주신당이다.

그러나 이 당은 대통령선거와 이듬해 총선에서 잇따라 패하면서 원내 87석의 소수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예전에 갈라졌던 호남 민주당과 다시 통합하여 민주통합당이 된것이다.

여기까지가 지금 민주당이 있기까지의 긴 여정이다. 그리고 이 여정은 계속해서 여러 당파와 파벌의 이합집산의 역사다. 지금도 이 내부에는 여전히 파벌들이 존속하고 있고, 확인했지만, 이 파벌들의 뿌리는 19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쉽사리 근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파벌이 이합집산하는 정당이다 보니, 정당 전체의 가치나 목표보다는 파벌의 보스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조폭적 전근대성을 가지고 있다. 파벌의 보스는 국회의원 공천권과 정치자금 분배권을 움켜쥐고서 소속 의원과 정치인들을 거의 제왕처럼 지배했다. 이것이 바로 민주당의 가장 심각한 구태였다. 이렇게 보스가 소속 정치인을 지배하려다 보니, 비자금이 필요하게 된 것이고, 이게 끊임없는 정경유착의 고리가 되어왔다. 이런 계파정치, 보스정치의 문제점을 가장 강력하게 지적한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김영삼, 김대중과 달리 대통령이 된 이후 당에 대한 통제권을 일체 행사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이 대통령의 뜻을 전혀 따르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 연출되었다.

반면 김영삼과 김대중은 대통령 겸 당 총재를 겸하면서 공천권을 행사했다. 그러니 구태정치의 문제점과 해법에 대한 고민은 안철수가 처음이 아니다. 그리고 노련한 대통령도 극복하지 못한것을 정치 신인이 이 복잡한 역사를 가진 정당에게 열흘 남짓한 시간안에 고쳐 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당돌한 요구였다.

이쯤 쓰고 나니 머리가 아프다. 출근해야 하는데, 잠은 언제 자나?
워낙 역사가 복잡한 정당이다 보니 중간에 틀린 곳도 많을 것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자.
대략 이렇게 알면 된다.

계보가 열라 복잡하다. 그래서 수많은 계파와 보스들이 이합집산한 과정이 바로 민주당의 역사다. 그래도 유신시절, 5공화국 시절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역사가 있고, 1997년 이후에는 나름 진보적인 색채가 입혀졌다. 거꾸로 말하면 1997년 이전에는 진보와는 거리가 만 정당이었다. 그래서 이 정당 내부에서도 진보와 보수간의 갈등이 있다.

다음에는 이런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쇄신되어야 한다면 무엇을  왜 쇄신해야 하는지 살펴보겠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다음편: 민주당은 무엇이 쇄신되어야 할까?

2012. 11. 26.

친노는 누구인가? 친노에 대해 안철수는 어떤 오류를 범했는가?

우선 오해하지 말라. 필자는 친노가 아니다. 괜히 하는 소리라 할 것 같아서 증거물도 몇개 제출한다. 소위 좌파정부 10년을 비판하는 필자의 옛 글이다.


나는 공무원이라 당원은 되지 못했지만, 진보신당의 홈페이지 회원었다. 진보신당 칼라TV 애청자였고, 게시판에 블로그 연계해서 재미있게 놀기도 했다. 그러다 민노당 후원금도 불법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소 사실에 쫄아버린 당 지도부로부터 홈페이지 아이디를 삭제당하면서 추방당했다.

그러니 편리한대로 극좌파라고 불러라. 실제로 난 통진당을 '우파'라고 종종 지칭하니까. 그러니 내가 안철수보다 문재인에 좀 기울어 보였다면, 그건 친노여서가 아니라 좌파였기 때문이다. 만약 안철수가 새로운 정치, 쇄신을 민주당을 보다 좌클릭하는 쪽으로 말했으면 안철수를 지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만 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에 터를 잡아 버렸다. 문재인도 중도우파로 보는 판에 중도우파와 극우파 사이를 중도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진보정당 후보들은 0.4% 내외를 맴도는 상황에서 메이저 후보중 그나마 제일 왼쪽에 있는 후보에게 기우는건 당연한 일이다. 아, 이런 얘기를 하자는게 아니고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간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했다. 아름다운 사퇴이건 뭐건 간에 어쨌든 선거라는 게임에서는 사퇴했으면 진거다. 지고도 이겼다, 이런 말은 사퇴한 당일에서 3-4일 계속될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안철수가 아직 장래있는 정치인이라 본다. 따라서 그가 실패를 통해 배움이 있기를 희망한다.

그의 패배 원인은 "친노"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왔다. 그것도 당연하다. 그는 1987년 민주항쟁에도 참가하지 않았고, 이후 2008년 촛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그 어떤 과정에도 발자취가 없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시에도 한국에 없어서 그 분위기를 알수는 있어도 "느낄수"는 없었다. 따라서 친노가 형성된 과정,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 등에대해 대중들과 동떨어진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문재인에게 진 것이 아니라 노무현에게 진 것이며, 문재인과 대결하다가 부지불식간에 노무현을 소환하고 말았다. 그것도 적으로. 이 점을 잘 알아두기 바란다.

물론 노무현은 대결해야 할 상대이며,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만만치 않은 스토리와 가치를 포괄한 대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무현을 극복하고 넘어서려면 그 스토리, 그 역사의 자락에 충분히 참여한 가운데서 넘어서야 한다. 역사의 흐름 외부에서 관찰자적 시점에서 몇마디 비판과 대의의 강변으로 노무현을 넘어설수는 없다. 노회찬도 심상정도 하고싶었으나 하지 못한 일이다. 정치 초년생은 더구나 할수 없다. 안철수는 이제 자신의 스토리,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공공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자신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며, 그 스토리로 노무현을 덮어씌우기를 해야 한다. 그게 앞으로 그의 과제다.

자, 이제 친노 이야기 하겠다.
2007년에도 그러더니 2012년에도 대통령 선거때만 되면 친노에 대한 증오의 멘트들이 춤을 춘다. 2007년에는 워낙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없었고, 정동영, 손학규가 후보가 되기 위해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등을 타격해야 했을테니 전략적으로 그랬다 치자. 그런데 이번 대선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이명박 각하와 그 일행들에 대한 둠스데이였다. 애초에 안철수 현상이 나타난 이유도, 정치권에 신물이 나서라기 보단 가카의 후계자인 공주를 이길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 정치권에 대한 신물에 민주당이 포함된 이유도 가카와 한나라당에게 이기지 못하고, 정연주, 노무현, 곽노현, 정봉주 등 자기편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우왕좌왕 해서였다. 즉 가카가 모든 것의 기준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치 쇄신론이 나오더니 가카는 어디로 가고, 새누리당은 어디로 가고, 친노심판론이 나온다. 그러더니 불과 며칠사이에 친노라는 이름은 마치 경기동부연합처럼 저주스러운 이름표가 되어 SNS를 떠돌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치 친노라는 집단이 강고한 조직을 형성해서 다수를 믿고 행패를 부리며, 정치권의 기득권자가 되어 장벽을 치고 있는 것 처럼 말들이 나온다. 급기야 친노 척결 없이 정치 쇄신 없다 이런 논리까지 진행되고 말았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이 현상은 그 강고한 친노가  "행패"를 부린다기 보다는, 거의 일방적인 린치를 당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소위 친노는 안철수가 행여 저쪽편으로 넘어가서 정권교체를 그르칠까봐 조심조심하며 그냥 눈 감고 난타를 허용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느새 각하 심판이 민주당 심판으로, 민주당 심판이 친노 심판으로 바뀌었고, 그 와중에 이해찬이 사퇴했다.(부연하자면 이게 전략적으로 안철수의 결정적 패착이다)

이런 사태를 보면 적어도 두가지는 확인이 된다. 

1) 친노라고 라벨을 붙일수 있는 어떤 일련의 연대 혹은 집단의 실체가 있다. 

2) 친노를 뼈속깊이 증오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 역시 일련의 연대 혹은 집단의 실체가 있으며, 절대 안철수 세력이 아니다. 안철수와 그의 무당파 지지층이 이렇게 빠른 마타도어에 나설만큼 조직적일 수 없다.

이제 두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친노는 뭐하는 사람들인가? 그리고 누가 그들을 증오하나?

1. 친노는 누구인가?

친노는 문자 그대로 노무현과 친한,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러보지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이질적인 흐름과 집단이 뭉뚱그려져서 친노라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1) 노사모 계열

노사모는 정치인에 대한 자발적 시민지지 단체 혹은 팬클럽의 원조다. 어느모로 보나 안철수 현상은 노사모로 상징되는 노무현 현상의 데자뷔, 그것도 약한 데자뷔에 불과하다. 그들 역시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은 말할것도 없고, 김대중의 민주당 역시 호남지역의 특권층으로서 부패하기 이를데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이 줄줄이 부패혐의로 구속되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민주당 역시 구태정치로 볼수 밖에 없었다.
이럴때 그들이 주목한 정치인이 노무현이다. 노무현이 주목된 이유도 사실 안철수와 같다. 순수하다, 바보같다. 그것이 팬덤을 형성하면서 돈 받고 정치인에게 모이는 단체가 아니라 자기돈 써가면서 모이는, 그리고 강고한 조직이 아니라 느슨한 네트워크인 노사모가 만들어졌다. 현재로서 노사모에 가장 근접한 모습은 미권스다. 무수한 이름없는 강호의 고수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의 집단지성이 갖가지 전략과 전술을 만들어내었다. 노무현의 허락도 필요없었다. 알아서들 움직였다.


이들의 지도자(?)에 대한 로열티로는 안철수 지지자들이 상상도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혹자는 탈레반으로 홍위병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이들의 극렬스러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나중에 대통령으로서 신자유주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면은 있지만 어쨌든 노무현이라는 캐릭터의 삶의 스토리가 이들에게 충분한 감동을 줄만했기 때문이다. 성공가도만을 달려온 안철수와 달리 지는 줄 알면서도 계속해서 자기 길을 고수한 노무현의 스토리는 히로익 사가의 주인공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정치가는 스토리다. 안철수의 스토리는 아직 노무현의 스토리에 미치지 못한다.사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이렇다할 스토리가 없다. 그리고 안철수가 주장하는 새정치, 특권없는 정치,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정치, 이것도 사실 노무현의 리바이벌이다. 노무현이 참여정부란 이름을 괜히 붙인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은 정치개혁에 너무 천착하다가 경제와 사회 부분에서 신자유주의자에 포획되면서 좌우가 혼란스러워졌다. 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 사회였던 것이다.

다음 사진들을 보라. 이들을 누가 조직했는가? 누가 동원했는가? 아무도 한 적 없다. 비록 노무현 대통령이 몇가지 중대한 실책을 범하긴 했지만, 그 이름을 함부로 폄하해서는 야권에서 지지받기 어렵다. 김두관에 이어 안철수까지. 친노척결론에 편승하는 순간 이들의 적이 되는 것이다. 사실 박원순을 시장으로 만든 자발적 참여세력, 안철수 현상의 진원이 되었던 자발적 참여세력의 상당수는 아래 사진의 촛불과 조문행렬에 참가했던 사람들이다. 친노척결이란 말은 이들에 대한 추방령이고 모욕이다. 게다가 이들은 대체로 키보드 전투력이 대단한 사람들로, 일베꾼들과 달리 나름 논리적인 글을 쓰는 무명고수들이다. 문재인과의 대결은 그래서 특히 조심스러워야 했다. 자칫하면 문재인이 아니라 노무현을 적으로 돌리는 수가 생기는데, 일부 호남 기득권 정치인들의 원한찬 목소리에 말려들어(박선숙도 그 중 하나일까? 김한길 등등도) 그 미묘한 지점을 넘어버렸다. 그리고 그걸로 승부는 종결이다.





사실 안철수 진영이 정치쇄신 내용으로 제시하는 직접, 참여민주주의의 특허권은 엄밀히 말하면 노사모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아고라 등지에서 다소 공격적인 논변을 펼쳐 이미지가 거친 경향이 있지만, 이들이 작당을 해서 무슨 이권을 해먹었다거나 어디가서 완장질을 했다거나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바가 없다. 나름 순수한 팬클럽. 참여민주주의 부분에선 급진적이나 다른 부분에서는 리버럴.

2) 민주당 계열

원래 김대중의 민주당 정치인이었지만, 여차직 저차직 해서 노무현 사람이 된 정치인들, 그리고 탄핵 국면에서 국회의원이 된 이른바 탄돌이 의원들이다. 원래 김대중의 참모였던 이해찬이 어찌어찌 이들의 보스처럼 되어 있는데,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 정동영의 위치가 애매한데, 가장 어려운 순간에 노무현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요즘 정동영이 강력한 좌편향을 보여주지만 나는 여전히 믿음이 가지 않는데, 이는 노무현의 사실상 세자나 다름없었음에도 불구하고(노무현은 선거도 끝나기 전에 정동영을 후계자로 지명했으며, NSC위원장이라는 막중한 지위에 임명해서 후계자 수업을 철저히 시켰음) 막판에 반노무현 정서에 편승하려 했던 신의없음 때문이다. 이는 요란하게 친노를 말하지 않았지만 노무현 임기 내내, 그리고 죽은 이후까지 꾸준히 그 자리를 지켜온 정세균과 많이 대비된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중도 우파 정도이며, 호남출신들이라 할지라도 지역구는 수도권인 경우가 많다. 민주당에서는 비교적 개혁적인 축에 속하면서 주로 호남이 지역구인 구 동교동계, 호남 기득권층과 갈등이 많았다. 이 갈등이 나중에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로 확대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열린우리당이 갈라져 나가면서 이들은 호남 민주당을 "구태세력"으로 몰아 붙였는데, 안철수 근처를 맴돌면서 "친노구태세력"을 외치면서 민주당을 안에서 뒤흔든 무리들이 바로 이때 몰렸던 "구태세력"이라는 것이다.

이들 소위 친노구태세력은 이명박이 득세했던 2008년 총선에서 대거 낙선하고, 민주당은 호남에 국한된 원내1/3에 불과한 정당으로 축소된다. 호남 민주당 의원들은 그 보수성에서 사실상 한나라당과 큰 차이 없는 경우가 많다. 호남지역에는 '토호'들이 유독 힘이 있는데, 이 토호들의 연맹체와 민주화투쟁 세력이 애매하게 섞인 정당이 민주당이었는데, 2008년, 국민들이 투표로 민주화세력(친노와 김근태계)을 대거 학살해 버림으로써 민주당을 무늬만 야당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래놓고 민주당이 이명박 정권 아래서 한게 뭐있냐고 따지는건 상당히 무책임하다. 적어도 민주화세력이 대거 국회에 복귀한 2012년 411 총선 이후, 미흡하지만 민주당이 그래도 훨씬 나아진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쇄신되어야 할, 청산되어야 할 세력이 누군지 답이 나온다. 그런데 안철수 캠프는 쇄신되어야 할 사람들의 증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말았다. 여기서 그의 '진심'이 오해되고 말았다.

3) 측근 계열: 문재인, 이광재, 안희정, 강금원 등 아주 오래전부터 노무현과 알고 지내던 사람들. 상대적으로 역차별을 받아 상당히 몸을 사리며 살아옴

4) 운동권 계열: 좀 애매한 집단이다. 시민단체나 시민운동 민중운동권에서 유입된 사람들(유시민 등) 혹은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가 되기 이전에 김근태 후보를 지지했던 그룹들이 전략적으로 서로 연대한 경우다. 그런데 김근태와 노무현이 80년대 민주화 투쟁에서 서로 연대했던 사이이기 때문에 이들은 친노라기 보다는 비판적 지지그룹을 형성하는데, 외부에서는 이들도 모조리 싸잡아서 친노라 부른다. 이들끼리 어떤 연대를 맺거나 하진 않았으며, 상대적으로 노사모, 민주당과의 관계도 좀 서먹한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대체로 리버럴한 사람들이다.


2. 누가 친노를 싫어하나?

친노가 다양한 복합체인 만큼 친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한 종류가 아니다.

1) 좌파, 그 중에서 특히 평등파

참여정부시절 좌파는 친노와 반노로 갈라진다. 민주노총 기준으로 국민파는 자주파와 손을 잡고 친노의 대열에 들어서고, 중앙파, 현장파는 반노의 대열로 들어섰다. 그 기준은 비정규직 입법과 각종 노동시장의 이른바 유연화와 구조조정에 대한 입장이다. 어쨌든 좌파는 이런 정책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하고 노무현 정부를 반노동자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말기에는 자주파도 반노무현 대열로 돌아서는데, 그 계기는 대추리 사건과 북한 핵에 대한 강경한 태도 때문이다.게다가 FTA까지 추진하고 새만금을 강행함으로써 좌파들과 노무현의 관계는 겉잡을수 없이 틀어지고 말았다.

2) 민주당내, 호남 토호세력

이들의 노무현에 대한 증오는 심지어 광주학살 주범인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노무현 탄핵에 앞장설 만큼 대단했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들을 구태 정치인으로 몰아붙인 민주당내 신진세력들에 대한 증오지만, 어쨌든 이들이 노무현을 그들의 보스로 파악한 이상 용서는 없었다.
이들은 그걸로 그치지 않고, 호남지역에 갖가지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반노무현 정서를 고취시켰다. 황주홍이가 거짓말로 호남지역에 반문재인 정서를 퍼뜨리려다 증거가 잡힌 것만 봐도 이들이 어떤식으로 자기들 지역구에서 선동질을 해왔을지는 짐작이 충분히 가는 일이다.
그리고 어느 모로 보더라도 이들이 구태정치인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3. 안철수 캠프의 미스

사실 민주당이 문제가 많은 정당임은 사실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이 있다. 이건 나중에 다시 다루겠다. 어쨌든 민주당이 쇄신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인데, 그 쇄신의 대상이 누구냐에서 의견이 갈린다.

1) 아직도 남아있는 호남토호세력을 척결해야 하는가?
2) 아니면 친노세력을 척결해야 하는가?

친노세력을 척결한다 하더라도 그 이유는 다시 갈라진다.

1) 친노가 신자유주의자이며 반노동자적인 시장주의자이기 때문인가?
2) 친노가 감히 쪽수를 믿고 호남토호님들을 배제하기 때문인가?

여기서 안철수 캠프는 그만 2)와 2)를 선택하고 말았다. 상대해야 할 후보가 문재인이라는 점에서 또 단일화에 호남인심이 결정적이라는 생각에 그만 짧게 보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호남지역에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높은데, 그 까닭은 사실상 호남지역의 기득권자들이 호남의 새누리당같이 군림하기 때문이다. 이게 호남지역에 봇물처럼 세워진 각종 포럼의 원동력이다.
이들은 문재인이 미워서가 아니라 민주당 기득권이 미워서 안철수를 선택했다. 그런데 엉뚱하게 안철수 캠프가 이들이 물리치고자 하는 호남 토호들의 손을 들어주거나, 기득권 척결을 친노척결로 몰고가는 분위기에 말려들자 지지를 철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문재인보다 토호가 더 미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 현재 민주당의 대주주가 친노인것 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그 역사는 오래지 않았음을 간과했다. 민주당이 예전처럼 대의원에 의한 경선을 했으면 친노는 결코 민주당을 장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폐족이라 불리며 내팽개쳐졌던 친노들이 다시 민주당을 차지하게 된 동력은 바로 국민참여 모바일 경선이다. 즉, 안철수가 주장했던 정치쇄신적 방법을 통해 민주당을 차지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대표를 구태정치로 몰아서 인적쇄신을 운운하는 순간, 그 모바일 경선에 참가했던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은 아득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자발적 시민참여를 주장하는 세력들간의 시민사회, 공론영역에서의 여론잡기 배틀이 시작된 것이고, 이미 대통령을 만들어도 보고, 또 그의 죽음을 보기도 했던 친노쪽 참여자들이 더 적극적이어서 공론영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건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 지지자들의 적극성과 말빨의 문제였다. 게다가 진보진영에 속한 말빨 강한 지식인들과 급진적 민주주의자들도 안철수의 "국회의원 200명 축소", "정치불신", "부동산 가격 안정" 코드에 상당수 빠져나갔다. 선대인의 난처한 처지를 보며.

70명이 넘는 전현직 의원들이 멀쩡한 자기당 후보 냅두고 무소속 후보 지지하게 해달라고 떼를 쓰고, 자기당 후보를 음해하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현직의원이 있는 지경의  민주당이다. 무슨 조직력이 있었겠는가? 
문재인 후보는 당의 힘이 아니라 순전 개인기로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론을 장악하게 만든 힘은 친노를 세세히 분석하지 않고 섵불리 자극하여 공론장 아레나로 불러들인 안캠프의 실책, 그리고 그 근처를 어슬렁 거린 혐오스러운 민주당 구태 정치인들이 불러일으킨 어그로다.

여기까지 쓴 내용은 직관적으로 구성해본 일종의 가설이다. 진짜 그런지 여부는 실제 데이터를 조사해 봐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다음 주제는 민주당의 역사

2012. 11. 25.

여론조사는 왜 널뛰기를 할까?

이거 총선때 썼던 포스팅인데, 요즘 그때보다 여론조사에 대한 문의가 더 많아서 개작합니다. 여론조사를 할때마다 기관마다 결과가 마구 달라서들 헷갈려 하시는데, 실제는 이보다 더 복잡하지만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여론조사의 기본 개념

여론조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전수조사가 가장 정확하겠으나,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써베이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써베이 방식이란 모두에게 물어볼 수 없을때  전체를 대표하는 소수를 골라낸뒤 그들에게 물어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체를 추론하는 조사 방식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1) 모집단: 골라낼 전체입니다. 만약 내가 중학생의 의식조사를 한다면 대한민국 중학생이 모집단, 서울교육감 선거 지지율을 조사하려 한다면 서울시 유권자가 모집단이 됩니다.

2) 표본(샘플): 조사를 위해 골라낸 소수를 표본이라 합니다. 표본은 비록 소수이긴 하나 모집단을 대표할수 있어야 합니다. 대체로 2000명이 넘는 표본은 흔하지 않습니다. 통계가 발달한 미국은 2억 유권자를 1500-2000명 표본만 가지고도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합니다.

3) 모수추정: 표본에서 확인된 결과를 바탕으로 모집단 전체에 대한 예측을 추론해내는 과정입니다.

3) 추출(샘플링): 모집단에서 표본을 골라내는 과정입니다. 표본이 얼마나 모집단을 잘 대표하느냐가 바로 이 추출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무작위 추출(누가 표본이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완전 랜덤으로 표본이 추출됨)을 원칙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가지 보정이 가해집니다. 그러나 확률추출(모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표본이 될 확률이 동등해야 한다)의 가정이 지켜진다면 모수추정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확률추출인지 여부가 의심스러우면 이 표본의 결과는 단지 표본의 결과일뿐 모집단의 결과라고 추론하기 어렵습니다.

4)표집오차: 표본이 모집단을 100% 반영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가정이죠. 따라서 표집과정에서 당연히 오차가 나타납니다. 이 오차는  주로 표준오차로 제시됩니다. 설명하자면 열라 복잡하니까 그냥  +/- 범위로 표시되는 그 숫자입니다. 그리고 신뢰수준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건 실제 모집단의 값이 이 표본조사 값의 오차범위안에 있을 확률입니다.

예시) 권재원 후보의 지지율이 45%이며 표준오차는 +/-4%이며 신뢰수준은 95%

권재원의 지지율이 45%이며, 그 정확도가 95%란 뜻이 아니라, 권재원의 실제 지지율이 41%-49% 범위내에 있을 확률이 95%란 뜻입니다. 이게 바로 오차범위입니다. 그리고 통계학에서는 오차범위내의 숫자는 모두 같은 것으로 칩니다. 즉 같은 기간, 다른 조사기관에서 나온 결과가 어떤 회사는 42%, 어떤 회사는 44%가 될 수 있지만, 그 차이는 아무 의미 없단 뜻입니다.


문제) 권재원 대 이회창 지지율이 45%: 42% (표준오차 +/- 2%, 신뢰수준 95%). 이건 권재원이 앞선단 뜻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권재원의 실제 지지율이 43-47%, 이회창이 40%-44%에 있을 확률이 95%란 뜻입니다. 그러니 A사 조사결과 권45: 이42, 같은 날 B사 조사결과 권 43: 이 44 이렇게 승자가 다르게 나와도 두 결과는 이론적으로 동일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이럴경우 지지율 차이는 오차범위 안에 있다라고 말하면서 누가 앞서거나 뒤진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여론조사로 단일화를 결정하는건 아주 논란이 많아지는 방법입니다. 또 마찬가지 이유로 여론조사 결과 엎치락 뒤치락 하는 걸 가지고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2. 유권자를 대표하는 표본은 어떻게 추출할까?


여론조사의 성패는 이 소수의 표본이(500명이든 1000명이든) 얼마나 모집단을 잘 대표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표본을 추출할까요?

대통령 선거니까 모집단은 대한민국 유권자 전체가 되겠죠. 그런데 무슨 명단이나 목록이 있어야 그 중에서 표본을 골라내겠죠? 길가는 사람 1000명 붙잡고 물어보기 이런짓 안하려면. 이때 모집단의 명단, 목록으로 사용되는 것을 '표집틀'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모집단을 뭐라고 정의하던 결국 중요한 것은 표집틀입니다.

예를 들면 모집단이 안철수 지지자라고 합시다. 하지만 안철수 지지자를 누가 누군지 알수가 없죠. 그래서 안철수 펀드 입금자 목록을 가지고 거기서 1000명을 골라내는데, 이때 입금자 목록이 표집틀입니다. 짐작 하시겠지만, 모집단을 뭐라 정의하건 간에 그 표집틀을 뭘 사용했느냐에 따라 결과는 상당히 달라질수 있습니다. 장난치기 좋은 부분이죠. 입금자 목록의 경우 엄밀히 말하면 안철수 지지자 중 가장 적극적인 지지자만 대표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표집틀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론조사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당시 안캠프가 제안한 공론조사를 보고 기겁했던 겁니다. 민주당 대의원중 50명을 고른다면 문재인 지지자중 가장 적극적인 층이라 보기 어렵지만, 안펀드 입금자중 50명을 고르면 안철수 지지자중 가장 적극적인 층이 표집될테니까요.

자, 그럼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서, 대한민국 전체 유권자중 표본을 고르려고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의 목록을 어떻게 구할까요? 대통령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1) 집전화 손전화? RDD?(표집틀을 확인할 것)

그래서 이때 사용하는 방법이 전화조사입니다. 대개 유권자중 전화 없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사실상 사람을 추출하는게 아니라 전화번호를 추출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대부분에 통계조사에서 모집단은 실제 모집단이 아니라 이 표집틀 내의 명단을 말합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여론조사에서는 전화번호부를 표집틀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문제는 최근 10년 사이에 전화번호부가 모집단과 괴리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전화번호부를 표집틀로 사용하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발생합니다.

집전화가 있으나 전화번호부에 등재하지 않은 사람들과 휴대전화만 있는 사람들은 아예 모집단에서 제외됩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정교하게 표집방법을 설계해도 무조건 잘못된 표집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표집오차는 이론적 모집단이 아니라 표집틀상의 모집단과 표본 사이에서 계산되기 때문에 애당초 표집틀이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표집오차가 매우 작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심각한 표집오차가 발생한 것이죠.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rdd(임의 전화번호 걸기) 방식이 사용됩니다. 전화번호부에서 임의의 번호를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화번호와 관계 없이 지역국에 등록된 모든 번호를 대상으로 랜덤의 번호를 선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표집오차는 크게 개선되지만 여전히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집전화가 아예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모집단에서조차 배제되기 때문이죠.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전화번호부를 표집틀로 사용한 여론조사는 전체 모집단의 50% 밖에 반영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조사 시간이 낮시간이거나 하면 50% 중에 다시 낮에 집에 있는 사람, 즉 노인이나 주부로 그 대상이 더 축소되니 사실상 25% 밖에 대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rdd방식은 어떨까요? 이 역시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결론입니다. 인터넷 전화가 무려 1000만대나 보급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RDD는 인터넷 전화번호까지 생성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예 전화 없이 휴대전화만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거나 휴대전화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로 20~40대의 젊은 층이며, 또한 이들이 야권후보 지지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전화번호부나 RDD방식을 사용한 전화조사 방식의 여론조사는 무조건 여당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수 밖에 없습니다. 20~40대의 20%가 인터넷 전화조차 없이 아예 휴대전화만 사용할 정도입니다.  출구조사가 선거 여론조사보다 비교적 더 정확한것은 전화가 아니라 면접 조사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런 표집틀의 문제가 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문제는 더 있습니다. 많은 여론조사가 확률적 표집 방식인 무선표집이 아니라 할당표집을 합니다. 할당표집은 비확률표집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모수추정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사학회에서 선거 여론조사를 보도할때 이점을 유의하라고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요.

"비확률표집방법은 정확한 표집오차의 계산이 어려우므로 예측보도를 보다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할당표집방법을 사용한 경우, 최신의 자료에 근거한 정확한 표집틀을 사용하였는지 확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언론사에서 할당표집을 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무선표집을 한 여론조사와 표집틀에 대한 유의사항을 소개하지 않은채 마치 정확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그 정도로 무식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이건 버젓이 알면서도 계속해서 보도한다고 보이며,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 조장(Push Poll이라고 합니다)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 여론조사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이런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이 세 방식을 어느 정도 비율로 혼합하는게 가장 좋은지는 일선의 조사자들의 노하우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긴급하게 조사하는 기관보다는 꾸준하게 조사하고 있는 기관이 더 좋은 표집틀을 확보했다고 믿는게 좋습니다. 리얼미터 같은 정례조사기관이 신뢰를 많이 받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2) 가중치

선거 조사이기 때문에 실제 투표할 사람의 의사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여론조사기관들은 응답자들을 그냥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중치를 부여합니다. 우선 연령, 직업 등 집단의 인구 비율에 따라 응답자 비율을 맞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층의 응답률이 낮은 경우가 많아서 가중치를 부여하기도 하고, 또 노년층의 투표율이 높아서 이를 가중처리하기도 합니다. 자세한 방법은 설명하기 복잡하니까, 하여간 모집단과 가까워 지게 원자료를 가공한다라고 보심 됩니다. 하지만 이 가중치를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최근 연령별 투표율에 따른 가중처리가 많이 활용됩니다. 젊은 층이 노년 층보다 투표율이 0.7 정도기 때문에 이를 반영시키는 것이죠. 투표율 가중처리된 결과는 따라서 야권에게는 아주 보수적인 결과, 여권에게는 후한 결과로 받아들여집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표본을 추출하는 단계에서 특정 집단을 더 많이 추출하기도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경우는 확률표집이 아니기 때문에 모수추정을 하면 안되지만... 한겨레의 대선 여론조사가 표본 1300명 중 전라도 지역 표본을 추출단계에서 더 가중하여 추출합니다. 그래서 한겨레의 조사는 처음에는 항상 문재인 후보에게 유독 불리하게 나왔죠. 호남의 반노정서가 과대대표 되어서. 그런데 막판에 호남인심이 문재인으로 쏠리면서 안철수 후보에게 또 유독 불리하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3) 온갖 외부효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는 정말 민감합니다. 아, 어 다른데 따라 결과가 엄청 달라집니다. 예를들면 조사 시간도 중요합니다. 만약 토요일 오전 10시-16시 사이에 집전화를 가지고 조사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젊고 활동적인 계층들은 거의 배제된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따라서 전화로 조사를 할때는 전화 번호뿐 아니라 전화를 거는 시간도 골고루 할당해서 처리해야 합니다. 같은 조사라도 조사시간이 10시-16시인 조사보다는 12시- 20시인 조사가 누락이 적을 것이란 거죠.

또 응답자의 성실도, 성향도 영향을 크게 줍니다. 예컨대 50대 이상은 ARS일 경우에는 소신껏 응답하지만, 면접원에게 대답해야 하는 경우에는 박근혜라고 응답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건 학습된 공포죠. 또 최근에 사퇴한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은 선거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면 짜증을 내며 끊어버리거나(부동층이 늘어난 현상), 아니면 엉뚱한 후보로 응답하거나(박근혜가 제일 먼저 나오니까) 하는 등 왜곡된 응답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조사 문항의 문제도 있습니다. 조사 문항을 몇글자 고쳐서 응답을 엉뚱하게 유도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똑같은 표본을 상대로 한번은 문재인이, 한번은 박근혜가 이기게끔 설문조사할 수도 있습니다. 문항의 마술로요. 그러니 어떤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문항이 무엇이었는지 반드시 살펴 보아야 합니다.



자, 이제 대선 후보 등록이 이루어졌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항상 여론조사가 맞았네 틀렸네 하면서 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에 선거 여론조사가 틀리는 경우가 매우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여론조사 10% 차이가 쉽게 뒤집히는 경우도 나옵니다. 그런 반면에 출구조사는 비교적 정확합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발생할까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여론조사는 매우 민감한 조사입니다. 표집틀의 설정, 추출방법, 가중방법, 조사 시간, 조사 문항 등에서 사소한 차이가 매우 큰 차이로 번져나갈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론조사를 얼마나 믿어야 할까요? 여론 조사자는 이런 오류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여론조사를 통해 오히려 여론을 조장하여 밴드웨건 효과를 꾀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요즘 여론조사 결과를 보는 눈은 더욱 신중해져야 합니다.

2012. 11. 16.

송순재를 읽자! 곽노현 교육감은 끌려가고, 그 진영은 선거에서 패했으나 생각은 살아남는다

곽노현 교육감이 영어의 몸이 된 상태에서 곽노현 교유감의 잔당(?)들이 고군분투했으나, 기존 운동권 주류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선거는 송순재 교수라는 교육철학자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소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제 교육혁신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송순재 교수가 쓰거나 옮긴 책들을 공유하고, 함께 교육혁신의 상상력을 키우고 그 폭과 품을 넓혀 나갈것을 권합니다. 이렇게 하나 둘 넓어지고 깊어진 우리의 생각이 모여서 저 완강한 주류, 보수 교육론을 물리치고 교육철학이 있는 교육혁신이라는 새 기원을 열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누가 알아요?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교과부가 해체되고, 국가교육위원회가 만들어진다면 어떤 분들이 그 위원이 되어야 겠습니까? 곽노현 위원장, 송순재 위원의 꿈을 꾸어 봅니다.





1) 상상력으로 교육에 말걸기: 공간, 소리, 색채에 대한 교육학적 성찰
책 보러 가기
이 책은 대표적인 대안교육 이론가인 저자가 그동안 「우리교육」 「좋은 교육」 등에 단편적으로 발표해왔던 글들을 각 주제별로 모아 대폭 수정 보완한 것이다. 교사들과 모임을 함께하면서 ‘교사로 산다는 것’과 ‘학교를 단위로 한 변화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집중해온 저자의 교육학적 고민과 생각의 지평이 어디까지 확대되고 심화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국내외의 사례와 동서고금의 문헌, 다양한 문화 예술 장르를 종횡으로 넘나들면서 각 주제와 관련시켜 교육적으로 성찰해보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교육의 근본 과제는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2)사유하는 교사(한스 쇼이얼 외)

책 보러 가기
교육학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을 위해 엮은 교사 입문서이다. 교사라는 위치에 대해 교육학적인 안목에서 보고 생각할 수 있도록 주어진 문제를 과학적, 이론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한층 단순화시켜 제시한 사건들을 통해 교육적 과정을 고찰하고, 과정에서 무엇이 작용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런 사건들을 올바르게 관찰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3) 덴마크 자유교육: 위대한 평민을 기르는(공저)

책 보러 가기
최근 북유럽 여러 나라 특히 스웨덴, 핀란드 등지의 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교육의 진정성이나 인간존중 혹은 한 나라의 풍토에 고유하게 뿌리박아 성장한 자유교육이나 민주적 시민교육이라는 점에서, 또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독창적이며 근세사에서 북유럽 인접 국가들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덴마크 교육은 남다르다. 저자는 이러한 덴마크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자유교육과 시민대학의 사상적 원천이 되었던 그룬트비와 자유학교와 시민대학의 실제적 구현자인 콜을 만나 덴마크의 교육 내용을 책으로 담아냈다.


에 학교의 교장이었던 에냐 리겔은 학교 혁신의 과정과 경험을 풍부하고 현실감 있게 전해주는 동시에 믿음과 용기를 주는 안내자가 될 것이다.



4)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가?(야누쉬 코르착)

학생인권조례 논란이 뜨겁다. 그 학생인권조례의 근원인 유엔 아동청소년 권리협약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야누쉬 코르착의 대표작이다.
책 보러 가기
코르착은 어린이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의 기본권을 말한다. 바로 죽음에 대한 권리, 오늘 하루에 대한 권리, 원래 자기 모습대로 있을 수 있는 권리이다. 그는 가정에서, 또 학교의 기숙사와 여름 거주지, 고아원의 일상을 탐구하면서 어린이가 공동체의 진정한 구성원이 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한다. 서로를 돌보고 자치 회의와 법정을 통해 공동체를 만들며 시민으로 성숙해나가는 과정은 '어린이의 공화국'이 왜 필요한지, 또 가까운 곳에서 건설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코르착의 대표작이라 할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가』는 우리의 발걸음이 미술 전시회장에서 인상적 그림을 지날 때 쉬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를 코르착의 사상, 특히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그의 철학 앞에서 멈춰 서게 만들고 있다.

예스 24 인터넷 서점엔 없네요. 알라딘이나 교보문고에는 있어요


5) 프레네 교육학에 기초한 학교 만들기(디틀린데 바이예)
프레네교육학은 20세기 초 유럽에서 이루어진 교육개혁학으로 존 듀이학교, 몬테소리학교, 발도르프 학교와 함께 대안학교의 큰 흐름을 이룬 프레네 학교의 기반이다. 프레네학교는 공교육 외부의 대안학교를 세우는 대신 공교육 체제 내에서 학교를 변화시키려 했다는 점,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학교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나라의 혁신학교의 중요한 모범이자 동시에 진보성의 선명함을 보태줄 수 있는 중요한 규준이다.



6) 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 상상을 현실로 만든 혁신학교 이야기(번역서)



책 보러 가기


‘혁신학교 만들기’라는 이 시대의 과제를 앞에 두고 있는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볼 때 헬레네 랑에 학교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하나의 완결된 모형을 한순간에 이루어냈다기보다는 여러 교육이론과 착상들을 한데 모으고 시도해보면서 ‘자기 자신만의 작품’이 되도록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혁신학교를 꿈꾸는 교사와 부모, 교육관계자들에게 이 책의 저자이자 헬레네 랑


그리고 비교는 되지 않지만 , 블로그 주인장의 책도 소개합니다 ㅋ



2012. 11. 14.

교육대통령과의 대화(9) 경쟁교육은 교육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제일 처음 부터 보실 분은..... 1편부터 보기
바로 전편인 8편 보기

교육대통령과의 대화(9) 경쟁 교육은 교육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나교수: 자, 이제 경쟁력, 경쟁교육이란 주제로 당선인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

교육 대통령: , 그럼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국가 경쟁력을 강조하시는 이 장관님께 여쭙겠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국가 경쟁력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싶네요.

이홍주: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 이지 뭐겠습니까?
교육 대통령: 그러니까 대체 무엇으로 이긴다는 말씀이십니까? 설마 전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겠죠?
이홍주: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말하는 건 경제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보다 생산성을 높여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 수출 많이 하는 나라가 이기는 그런 경쟁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교육 대통령: 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런 말씀은 교육 뿐 아니라 경제도 책임져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상당히 무리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더 좋은 상품을 만드는 건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 그 목적이 다른 나라보다 수출을 더 많이 해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너무 편협하지 않습니까? 경제 정책의 목표는 국민의 후생을 개선하는 것이지 단지 달러를 많이 버는 게 아닙니다. 달러를 많이 벌어들여도 그게 국민들의 삶의 질에 전혀 투자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이라면 그게 국가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홍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달러를 많이 벌어야 국민 후생도 좋아지죠.
송혁재: 경제 이야기 하시니 잠깐 태클 좀 걸까요? 이장관님 경제학자 출신 맞아요? 하긴 아무리 시중 서점을 뒤져봐도 이장관님의 경제학 저서는 없더라고요.
이홍주: 지금 인신공격하는 자립니까, 여기가?

교육 대통령: 아니, 인신공격이 아니라 송선생님의 지적이 아주 적절합니다. 지금 장관께서 경제학적으로 엉뚱한 말씀을 하고 계시니 의심이 들 수밖에요. 달러는 많아도 적어도 안 되며,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건 경제학 상식 아닙니까? 수출은 왜 합니까? 물론 달러를 벌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달러는 왜 벌죠? 그건 우리 후생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출의 목적은 수입이다. 이건 경제 원론에도 나오는 얘기 아닙니까?
이홍주: 아니, 딸라가 흘러 나가는데 어떻게 이익이 된단 말입니까?
교육 대통령: 내 참. 명색이 경제학 교수를 지내셨다는 분이 어떻게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달러를 많이 벌어들여서 외환보유고가 아무리 높아져도 그게 국민의 삶의 질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우리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양질의 재화와 서비스를 얼마나 저렴하게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지 다른 나라와의 무역경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홍주: 그건 당선인의 희망 사항이죠. 국제 사회가 무한경쟁의 시대이며, 세계 시장은 냉혹해서 순식간에 도태될 수 있다는 건 상식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좋습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설사 그 무한경쟁의 시대 운운하는 말씀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 장관께서 강조하신 학교끼리, 교사끼리 경쟁 붙이고, 결과적으로 속된말로 애들 빡세게 돌리고 치열하게 경쟁 시키는 그런 교육은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 교육은 그저 시험 잘 치는 학생들이나 길러내지 경쟁력 있는 학생들을 길러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역설적이게도 경쟁교육은 경쟁력을 갉아 먹는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홍주: 거 요상한 말씀으로 현혹시키려 들지 말고 근거를 대 보세요. 난 당신처럼 요상스런 말재주 자랑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가 대통령할 때도 난 그 사람을 한 번도 대통령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요.
교육 대통령: 그러세요 나도 당신이 교육부 장관일 때 한 번도 당신을 장관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습니다. 나를 대통령으로 여기건 말건 그건 그쪽 자유지만 경쟁교육이 경쟁력을 갉아 먹는 까닭만큼은 똑똑히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하나 물어 보겠습니다. 경쟁력을 그토록 강조하시니 잘 아시겠네요? 그 교육 경쟁력을 어떻게 확인합니까?

이홍주: 그거야 학생들이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했느냐에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는 공부 잘 하면 성공하는 사회니까 공부를 얼마나 잘 가르쳤느냐, 그러니까 성적을 얼마나 높였느냐 하는 걸로 확인할 수 있는 거고. 그러니까 학업성취도 평가도 자주 자주 해야 하고. 성과가 부진한 선생은 좀 질책도 하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교육 대통령: 바로 그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이 장관께서는 통념을 말하고 계십니다. 별다른 근거 없이 다수에게 그럴듯하게 믿어지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경쟁력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지금 글로벌 경쟁의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으며, “경제 우선을 주창하시는 분들이 정작 경제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까요? 당신들의 알량하고 얕은 밑천을 이렇게 쉽게 고백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홍주:(화를 벌컥 내며) 내가 뭘 모르고 뭘 저해한다는 겁니까? 그럼 당신은 알아요? ?
교육 대통령: 물론 알죠. 그런데 댁께서는 잘 모르시는 것 같으니까 가르쳐 드리죠. , 경쟁력의 기준은 불변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일까요?
이홍주: 그거야 당연히 시대에 따라서 변하겠지.

교육 대통령: 그리고 댁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경쟁력은 다른 나라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글로벌 경쟁력이겠죠?
이홍주: 왜 자꾸 뻔한 걸 자꾸 묻소?
교육 대통령: 그렇다면 그 살벌한 경쟁의 장소에서 살아남으려면 더더욱 때와 장소에 가장 어울리는 그런 능력을 갖춰야겠죠? 만약 그 무대가 월드컵이라면 공을 잘 차야 살아남을 것이고, 메이저리그라면 공을 잘 던지고 잘 받고 또 잘 쳐야 살아남겠죠?
이홍주: 자꾸 뻔한 이야기 늘어놓는 것 보니까 뭔가 수상한데? 그냥 묻지 말고 혼자 마음대로 말하쇼. 난 절대 안 낚일 테니까.

교육 대통령: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강의하듯 말 할 테니까 무슨 일방적이네, 불통이네 하는 말하기 없깁니다. 특히 저기 조중동 기자님들 조심하세요. 전 명강의로 유명한 유능한 교사이자 교수였습니다. 제 강의 듣다보면 기자님들도 어느새 좌빨 될 수 있습니다. (모두 웃음을 터뜨리고 조중동 기자들 쑥스럽게 머리를 긁는다.) 자 그럼 강의시작하겠습니다.
이장관의 말씀을 따른다면 교육의 목표는 경쟁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쟁력은 세계 경제가 현재 어떤 종류의 경제인가에 따라 달라지겠죠. 요컨대 지금이 13세기라면 땅 잘 갈고, 농사 잘 짓는 능력이 있어야 경쟁에서 살아남겠죠. 19세기라면 규율 잡히고 일사불란한 작업을 빈틈없이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경쟁력이며,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표준화되고 규율 잡히고 일사불란한 교육을 통해 대량으로 양성하는 기관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입니다. 공교육제도와 학교는 말하자면 산업시대 국가 경쟁력의 산실이었던 것이죠. 남들보다 훨씬 늦게 산업화를 시작했던 독일이나 일본이 순식간에 최고 수준의 산업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학교제도가 이런 일사불란한 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양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21세기가 벌써 1/10도 더 지나간 지금은 어떤 능력을 갖추어야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이 장관님의 논리를 또 따라가 본다면, 많이 남길 수 있는 상품을 내어 놓을 수 있는 능력, 소위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경쟁력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상품이 고부가가치 상품일까요? 만약 다른 사람들이 이 제품을 개발하려고 한다면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지만 나는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면, 그게 바로 고부가가치 상품입니다. 즉 나는 유능하기 때문에 이것을 손쉽게 생산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싸게 팔수 있는 것이죠.

우부친: . 흥미 있는데요? 그런데 예를 좀 들어 주세요.
교육 대통령: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옷을 직접 디자인해서 입으려면 천 값을 제외하고라도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천재적인 디자이너가 있다면 그는 훨씬 쉽게 옷을 디자인 하겠죠. 하지만 그 옷을 구입할 일반인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그 옷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직접 디자인 하려 했더라면 들였을 엄청난 비용을 기준으로 기꺼이 그 옷의 값을 지불할 겁니다. 그 결과 우리의 천재 디자이너는 실제 자기가 들인 비용에 비해 훨씬 많은 부가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그런 큰 이득을 본 까닭은 무엇입니까? 보통 사람은 쉽사리 할 수 없는 일을 쉽사리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통 사람은 쉽사리 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것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건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40년 전만 해도 인쇄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원고를 보면서 활자를 찾아 배열하고, 또 조판도 하는 등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가 아니면 하기 어려웠죠. 그래서 식자공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기술자와 인쇄소가 높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이 기술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쉽게 컴퓨터로 편집해서 프린터로 인쇄하고 있으니까요.
또 자동차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자동차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개발도상국들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GM이나 포드가 미국 10대 기업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그 위상이 추락했습니다. 이렇게 어떤 능력이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인지, 즉 경쟁력인지는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거꾸로 만약 아주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전혀 경쟁력이 없는 인간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부친: 하하하, 농사도 제대로 못 짓는 얼간이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그렇습니다. 조선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은 농사입니다. 그러니 경쟁력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경쟁력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 그렇다면 21세기는 어떤 능력을 요구할까요? 흔히 오늘날의 사회는 지식·정보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네트워크 사회라고들 합니다. 즉 실물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지식·정보의 생산이 중요해지고, 또 사람들 간의 관계를 산출하는 산업이 중요해진다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소린지 설명해 볼까요?
지금 여러분이 수강료를 내고 내 강의를 듣고 있다고 합시다. 그럼 여러분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내 머릿속에 든 것이 내 강의를 통해 여러분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이 낸 수강료가 무엇에 대한 댓가인지가 모호해집니다. 그것은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과 정보의 댓가인가요, 아니면 나와 만나고 내가 하는 말을 들을 권리, 즉 나와 접속할 기회에 대한 댓가인가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우부친: 그 둘이 어떤 차이가 있죠? 그게 그거 같은데?
교육 대통령: 만약 지식과 정보를 구입한 것이라면 내가 여러분에게 지식·정보를 판매함과 동시에 그 지식·정보의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즉 그 지식·정보는 전달과 동시에 내 머리 속에서 지워져야죠. 그래야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무슨 인셉션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여러분이 내 강의를 들은 결과는 그 지식·정보가 이전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소유자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즉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여러분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거꾸로 여러분이 내 강의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불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수강료란 강의를 들을 권리, 즉 내가 알고 있는 지식·정보에 접속할 권리이지 지식·정보 그 자체에 대한 댓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식·정보 산업에서 얼마나 많이 팔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접속시켰느냐가 중요하며, 이 접속자들의 네트워크를 얼마나 형성시켰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실제로는 대만의 홍하이 정밀에서 생산하는 아이폰을 애플사 제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애플이 이 전화기를 통해 접속할 수 있는 소위 생태계라고 부르는 지식·정보 네트워크 접속권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교수: 그럼 이런 시대의 경쟁력은 어떤 능력을 말하는 것이죠? 그 설명을 하시기로 했으니 부탁드립니다.

교육 대통령: 이미 답이 나왔습니다. 지식·정보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소통하는 것이 경쟁력입니다. 즉 접속과 소통능력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접속과 소통능력은 단지 마당발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접속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가 아니라 어떻게 더 질 높은 소통을 하면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즉 아는 사람이 많은 게 아니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지속적으로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 중요합니다.
오자모: 그럼 친절하고 예의바른 아이로 길러야겠네요.

교육 대통령: 물론 그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웃음과 친절만으로 네트워킹이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질 높은 소통과 네트워크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심지어 아부를 잘 하려 해도 상대방이 무엇에 자부심을 느끼는지, 상대방의 기분이 어떤지 잘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네트워킹의 핵심은 공감입니다.
, 그럼 정리가 되었습니다. 21세기의 경쟁력은 지식·정보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을 확대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 간단히 줄이면 창조력과 공감적 소통능력이죠. 우리나라가 그 동안 경쟁력을 발휘했던 표준화된 대량생산 라인은 이미 중국이나 제3세계로 넘어갔습니다. 이런 마당에 지나간 산업사회의 경쟁력을 외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쓸모 있는 일자리는 모두 이 창조력과 소통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그런 영역에서만 주어질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경쟁은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홍주: 이 보세요. 내가 경제학과 나와서 아는데, 당선인께서는 경제에 대한 식견이 좀 모자라시는 것 같아요. 지금이 아무리 지식·정보 사회라고 해도, 그렇다고 산업사회의 일자리가 없어진다고요? 아니 지식·정보만 있으면 어떻게 삽니까? 물건을 만들어야 뭘 해도 할 것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 장관께서도 경제학자로 활동 안하신지 오래 되셔서 경제를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농업이 사라졌나요? 아니죠. 하지만 농업 부문의 고용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산업혁명 덕분에 영농 기계화가 이루어져 농업에서 노동력이 많이 절약되었기 때문입니다. 지식·정보혁명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제어되는 일이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니 기존 산업의 위상은 유지될지라도 그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은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고용도 줄어들죠.
앞으로는 기계로 대체가능한 능력을 가지고는 일자리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이건 누구나 동의하는 문제입니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을 보면 본사에는 공장이 아예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특정한 상품을 생산하지 않고, 어떤 삶의 방식, 삶 그 자체를 생산합니다. 아이폰의 성공을 보십시오. 아이폰이 물건이 좋아서 성공했나요? 아닙니다. 아이폰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했기 때문에 성공했습니다. 그 물건을 가지고 창조해내는 삶의 방식. 이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삶의 방식을 창출한다는 것은 고도로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작업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서로 점수 따기 경쟁, 문제 풀이 경쟁을 해왔던 낡은 교육을 버리고 창조력과 소통능력을 기르는 새로운 교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홍주: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것입니까? 그럼 경쟁의 품목만 바뀌는 것 아닐까요? 학력경쟁에서 창의성 경쟁으로? 그래서 각 학교별로 창의성 경쟁을 붙이면 창의성도 높아지고, 경쟁력도 높아질 것 아닙니까? 전국 창의력 경진대회 같은 거 실시해서 점수가 저조한 학교는 예산을 축소한다거나 하면 아마 잘될걸요? 그래서 제가 창의과학재단도 만들고, 창의인성학교도 세우고, 또 스팀 융합교육도 보급한 것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지금 용어를 오해하고 계십니다. 장관께서는 시종일관 창의를 강조하시는데,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창조입니다. 창의란 단지 좋은 착상, 아이디어라면 창조란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장관은 시험에 무슨 강박이라도 있으십니까? 본인이 시험 치는 거 좋아했다고 해서 시험이 만병통치약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모든 능력은 그 능력에 걸맞는 함양방법이 있는 겁니다. 축구를 잘 하려면 공 차는 연습을 해야 하고 야구를 잘 하려면 공 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하듯 말입니다.
, 그렇다면 창조력과 소통능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창조하고 소통하는 경험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험을 치자고요? 시험은 이 두 가지 모두와 상극입니다. 시험은 정답이 있고 풀이과정이 있고 수치화 가능한 점수가 있는 학력 측정 방법입니다. 그런데 창조성은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둘이 어울립니까? 창조성은 생각을 확산시켜야만 발현됩니다. 하지만 정답이 있고 점수가 있는 시험은 자꾸 생각을 점수 받기 쉬운 쪽으로 수렴시킵니다. 상극입니다. 게다가 소통은 어떻습니까? 시험은 서로 서로를 차단시키는 고립된 경험입니다. 시험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경쟁적인 교육은 학생들 서로간의 소통을 가로막습니다. 즉 이 장관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경쟁교육은 창조력과 소통능력, 즉 이 시대에 요구되는 경쟁력을 훼손하는 경쟁력 훼손 교육인 것입니다.

이홍주: 그게 문제라면 팀을 이루게 한 다음에 팀끼리 경쟁시키면 되죠. 그럼 경쟁력도 살고, 또 협동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살 것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그럼 팀원끼리는 협동하겠지만, 팀끼리도 협동과 소통이 이뤄질까요?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소통이 다만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걸로 보입니까? 계속해서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 단위로 흩어져서 경쟁하나, 서 너 사람 단위로 흩어져 경쟁하나 네트워크 사회에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홍주: 그럼 어쩌자고요? 그래도 애들을 학교에 불러 모았으면 시험은 치고 등수는 매겨야 할 것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물론 학교 안에서만 교육이 이루어지면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학생들이 학교의 담장을 넘어가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창조의 기회를 가지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를 가지는 그런 교육을 실시하려 합니다. 이게 이루어진다면 이들이야말로 21세기형의 경쟁력을 갖춘 인재가 되겠죠.

송혁재: 가만, 가만, 이거 말씀이 잘 나가다가 신자유주의로 빠지십니다. 그러니까 당선인 말씀의 핵심은 학교 밖에 있는 단체나 전문가에게 교육을 개방하시겠다는 뜻입니까?
교육 대통령: 그렇습니다.
송혁재: 그렇다면 당선인은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인 이른바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와 다를 바 없는 철학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만 고교 다양화 수준이 아니라 교육기관 다양화를 말씀하고 계시니 오히려 한 수 더 뜬다고 보아야 하겠군요.
교육 대통령: 지식·정보는 거의 실시간으로 발전하고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걸 5~6년 단위로 편성되는 교육과정과 교과서, 그리고 경계가 정해진 교과목으로 가르치는 학교에서 다 따라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송혁재: 아니, 그럼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아이들을 바깥으로 내 몰아서 자격 없는 사람들한테 맡기는 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육입니까? 막무가내 내보내서 각자 알아서 선택해라 하면 창조적이 된답니까?
이홍주: 내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이거 내가 전교조하고 같은 편이 될 줄은 몰랐네요?
교육 대통령: 당사자들은 모르고 계셨지만, 사실 그 동안 두 분은 같은 주장을 하고 계셨습니다. 서로 동지들인 셈이죠.
송혁재: 그런 심한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교육 대통령: 하지만 전교조는 그 동안 국가가 주도하고, 국가가 운영하는 획일적인 학교제도를 뜯어 고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좌우 가리지 않고 무조건 구조조정이니, 신자유주의니 하면서 강하게 반발하지 않았습니까?
송혁재: 그건 교육을 시장화 하려고 하니까 그랬던 거죠.
이홍주: , 전교조 타령은 나중에 따로 하도록 하고요, 이거나 물어 봅시다. 그럼, 당선인께서 학력신장 정책에 탐탁치 않으신 것 같으니 말인데요, 학교에서 아니면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이 뭘 어떻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교육 대통령: 한 마디로 교양입니다. 교양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이런 지식이나 정보가 폭넓은 사고와 대화를 통해 한 사람의 인격 속에 축적된 것입니다. 이런 풍성한 교양이 있는 사람이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상력이 있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교양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예술교육과 인문교육이 강조되어야 하며, 과학교육 역시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홍주: 하하. 교양이요? 참 팔자 좋으십니다. 이 치열한 국제 경쟁 시대에 한가하게 교양교육?
오자모: 제 생각도 좀 그래요. 당선인 말씀은 꼭 국영수 안하고 음악 미술 수업 늘리겠다는 걸로 들리거든요. 그럼 애들이 너무 배우는 게 없잖아요?
교육 대통령: (답답한 듯) 휴우... 이 이야기는 또 길어질 것 같으니까, 잠시 쉬었다가 별도의 주제로 토론하는게 어떨까요?
나교수: 그게 좋겠습니다. 슬슬 피곤해지고 있었거든요. 방송국 광고수입 올릴 시간도 줘야죠? (대폭소

다음편으로 가기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