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3.

민주당은 대선 패배가 누구탓인지 친노 비노 하기 전에 데이터 분석할 체제부터 갖추자

아쉽지만 결국 문재인 후보가 패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지지한 민주당 후보였다. 심상정은 사퇴했고, 김소연 후보나 김순자 후보는 너무 비정치적이었다. 어쨌든 그렇다 치고.
갖가지 뒷말들이 나온다. 안철수가 나오면 되는 거였다, 안철수가 너무 미적거렸다, 이 정책이 이랬다, 저 정책이 저랬다 등등.

그런데 이런 말들은 다 그냥 말이다. 학문적으로 말하면 모두 가설일 뿐이다. 그리고 가설이라도 세우려면 변인을 설정해야 하고, 그 변인 설정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것도 없다. 그냥 자기 신념을 말할 뿐이다. 그러니 이런것들을 분석이라고 내놓고 책임질 사람이 누군지 백날 떠들어 봐야 소용없다. 항상 나님 보다 너님이 더 책임이 크다는 결론이 나올 뿐이니 말이다.

논쟁을 할때는 느낌과 신념이 아니라 팩트를 가지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다투는 온갖 논객들이나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팩트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유일하게 내세우는 것은 단일화 이전에 1:1 시물레이션에서 안철수가 더 유리했다는 것 정도인데, 그것 역시 당시 안철수는 맥시멈이었고, 문재인은 추세적 상승이었다라고 말하면 빅이되면서 결론이 안난다. 그 밖에도 이정희 보수 대단결 방화쇠론, NLL론, 노무현 반감론 등 여러가지 이유들이 나오고 자칭 정치평론가들이 온갖 이설들을 늘어놓지만, 모두 근거가 없으니 일종의 감상문 내지 소설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썰을 풀기 시작하면 정치평론가나 유아인이나 차이가 없어진다.

그러니 지금은 이것 저것 따져볼 때가 아니라 데이타를 꼼꼼하게 수집할 때다. 사실 선거 결과 분석은 다른 분석보다 더 쉬울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변인이 투입될 경우 문재인 지지자에 속할 확률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한 회귀모형을 세워서 매 시점 시점 실제 변인을 투입해서 결과를 분석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그 정도 수준으로 꼼꼼한 데이터가 수집되어 있는것 같지는 않다. 그럼 메타분석이라도 해야 한다. 이빨로 싸우지들 말고.

제일 좋은 방법은 YTN에서 했던 것 처럼 신뢰할만한 패널 그룹을 확보한 뒤 지속적으로 조사를 해서 응답의 추이를 관찰하는 것이다. 50000명 정도의 패널이 확보되면 이들 중 2000명을 무작위 추출해서 수시로 추이를 살펴보는 것은 거대 정당에겐 일도 아니다.

지지율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경향성이다. 이번 선거에선 민주당이 전혀 하지 않았지만, 이번 선거로 예를 들면 이렇다. 어떤 정책을 개발하면 그것을 변인으로 투입해서 문재인 지지자가 될 확률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꼼꼼히 체크한다. 그래서 영양가 높은 것들을 골라 공약정책을 만든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했을때, 계속 지원을 기다리면서 단일화를 완성하는 쪽과 "졸라 땡큐" 한 마디 던진 뒤 문재인을 부각시키면서 광폭행보 하는 것 각각 투입해서 어느 쪽이 지지자들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지 체크한다. 광폭행보쪽이 더 크게 나오면 구태여 선대본 해체하지 말고 그냥 더 크게 밀고 나가면 되는 것이고, 아니라면 안철수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들어주어야 한다.

하다못해 네가티브 하나를 하더라도 다 이런식으로 해야 한다. 국정원녀 같은 경우도 첫날 바로 신병확보가 어려울 것 같으면 다음날 오전이라도 긴급 패널조사해서 다음 행동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패널을 연령, 성별, 계층, 지역별로 꼼꼼히 분류하여 어떤 정책, 혹은 발언을 할 경우 어느 계층이 심하게 동요하거나 움직이는지 모두 시물레이션 해야한다. 판별분석이나 로짓 분석을 수시 때때로 돌려야 한다.

사실은 이걸 선거때만 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입법안을 올려야 정당 지지율이 올라가는지 챙겨야 한다. 대선 후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당 지지율이다. 정당지지율보다 높은 지지율을 거둔 후보는 개인기나 매력이 대단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어렵다. 정당지지율은 평소 얼마나 지지받을만한 정책을 잘 만들어 내었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니 패널조사를 주기적으로 또 수시로 하는 것은 정당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방대한 데이터가 수집되면, 이게 바로 대선의 무기다.

새누리당은 이런 것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론조사 가장 잘하는 집단 중 하나인 여의도 연구소가 있다. 이들은 그 동안 잘 누적되고 검증된 패널을 보유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혹은 삼성연구소가 은근히 데이터를 준다. 막판에 문재인 바람이 부는 조짐이 보이자 마구 던지기 시작했는데, 이것 마구잡이가 아니다. 계산된 거다. 아무리 혐오스럽고 무분별한 네가티브라도 0.5~1% 씩 스크래치가 난다. 그 스크래치를 모아서 이긴거다.

그럼 민주당은? 이런 체제도 마인드도 갖춰져 있지 않다. 아직도 주먹구구로 감의 정치를 하며, 이른바 판세를 기준으로 선거를 치룬다. 이렇게 무전략, 몰과학적으로 선거에 임한다면 바람을 일으키는 것 외에 도전자가 이길 방법이 없다. 그나마 경영인 출신 정세균 고문이 선거 막판 10여일을 남겨두고 캠프를 지휘하면서 메시지와 정책이 먹혀들어가고 후보 문재인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데이터는 없지만 경영경험에서 얻은 촉이었다. 앞으론 이런 식의 선거는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누가 누구 탓을 할 근거가 거의 없는 상태라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다만 후보탓인지 정당 구성원 탓인지는 가릴수 있다. 사실은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을 경우 그 책임은 당에서 지는 것이 정상이다. 존 케리가 부시에게 패한 뒤 퇴진 요구를 들었단 말은 들어본적이 없다. 이후에도 케리는 계속 상원에서 민주당을 대표하고 있었다. 후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매우 비겁한 행동이다. 후보는 정당의 전략을 이행하고 그 정책을 널리 알리는 사람이다. 만약 정당이 짜 놓은 전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가 고집을 부려서 기어코 뻘짓을 했다거나, 혹은 모 후보처럼 꼼꼼하게 수첩에 써준것도 못읽고 헛소리를 한다거나 했다면, 그건 후보의 책임이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는 매우 성실한 후보였다. 캠프의 그 누구도 문후보가 캠프의 요구를 이행하지 못했거나 몽니를 부렸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정당 구성원들의 책임을 찾아야 한다. 그 기준은 친노냐 비노냐 이런 허황된 기준이 아니라 구체적인 데이터에 기반해야 한다. 현재로서 가장 확실한 데이터는 각 지구당별 총선 득표율대 대선 득표율이다. 그래서 총선당시 민주당 득표율-새누리당 득표율과 대선때 문제인 득표율-박근혜 득표율의 값을 구하면 된다. 전자를 A 후자를 B라 하자. 그래서 B-A를 구하자. 만약 이 값이 +인 지구당이 거의 없다면 이건 전략을 잘못 짠 것이니 중앙선대위에서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인 지구당과 -인 지구당이 섞여 있다면, -인 지구당의 위원장은 책임을 져야 한다. 마침 친노계열이 위원장인 지구당이 -가 많다면 친노가 책임을 져야 한다. 기준은 객관적이라야 한다.

자, 그러니 민주당은 지금 헛소리로 싸우지 말고 딱 두가지만 해라.

1) 앞으로 세밀한 지지율 변화를 예측해가며 정책 개발하는 연구소 설립과 대규모 투자
2) 각 지구당별로 B-A값 구해서 -인 지구당 위원장 명단 뽑기

그럼 아마 이른바 쇄신파는 자기들이 쇄신대상이라서 쇄신파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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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11.

교육대통령과의 대화 11. 학부모는 교육수요자가 아니다

제일 처음 부터 보실 분은..... 1편부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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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는 교육수요자가 아니다

나교수: , 충분히들 쉬셨으면 이제 다시 토론을 계속하겠습니다. 방금 우리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국영수의 비중을 줄이고 인문학, 과학, 예술 교육의 비중을 늘리고자 한다는 당선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물론 이건 교육과정을 개편해야 하는 문제이고, 당연히 전문가들과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당선인 역시 최상급의 교육학자로 불리셨고, 제가 아는 한 교육학자 중 가장 논변이 뛰어난 분이니 만큼 아마 관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학부모님들은 여전히 안색이 어두우십니다.

오자모: 솔직히 당선인 말씀에 백번 공감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우부친: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당선인 생각대로 교육과정을 개편하면 아마 다들 학원에 가서 모자라는 국영수 공부 시킬 겁니다. 그럼 괜히 사교육비만 늘어나는 거죠. 그런데 당선인께선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실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드네요.

이홍주: 그럼 안돼죠. 교육 수요자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셔야지.

송혁재: 뭐요? 수요자요? 그 말씀 자꾸 들을 때 마다 느끼는 건데, 상당히 역겨운 용어입니다. 지금 우리가 장사하는 줄 아세요? 교육이 무슨 시장판인줄 아세요?

이홍주: 자꾸 시장판 시장판 그러면서 시장을 폄하하는 경향들이 있으신데, 그건 조선시대 사농공상 하던 식의 발상입니다. 시장이야 말로 그 어떤 자원 분배 방식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입니다. 학생들은 서로 자기가 원하는 선생님한테 배우기 위해 경쟁하고, 선생님들은 서로 원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경쟁하다 보면 결국 서로가 만족하는 지점에 이를 겁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도 선생도 모두 크게 향상될 것이고요. 이게 뭐가 나쁩니까?

송혁재: 바로 그게 나쁩니다. 교육이란 것은 가격이라고 하는 공통의 척도가 있는 상품과 다릅니다. 그러니 서로 경쟁하고 실적을 비교할 수 있는 경제활동과는 다르단 말이죠. 게다가 공교육은 사회 공동체의 공익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렇게 경제의 잣대, 시장의 기준을 들이대면 결국 사실상 공교육은 사라지고 일개 서비스 상품으로 전락한 교육만 남습니다. 그 결과는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가 되고 말겠죠. 교육이 상품이라면 비싼 값을 치룰 사람이 더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이니까요. 교육은 상품이 아닙니다. 교육은 공공재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제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홍주: 제가 이른바 진보진영 분들에게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게, 제발 주류 경제학 관점을 비판하시려면 용어나 제대로 알아주십사 하는 겁니다. 교육이 어떻게 공공재입니까? 아마 공공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덮어놓고 공공재라고 부르시는 것 같은데, 틀리셨습니다. 공공재라는 것은 공짜로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을 배제할 수 없고, 또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도 기존 이용자들이 큰 문제가 없는 종류의 상품입니다. 무임승차가 가능한 상품이란 것이죠. 이런 상품에 누가 돈을 내겠습니까? 그러니 기업이 상품을 생산하고 제공할 유인이 없어서 공공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육이 그렇습니까? 독하게 마음만 먹으면 학비를 내지 않은 학생을 얼마든지 학교에서 쫓아낼 수 있습니다. 즉 배제성이 있단 뜻입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습니까? 심훈의 상록수 같은 소설에도 나오잖아요? 또 교육은 다른 이용자가 진입해도 기존 이용자의 편익이 줄어들지 않는 그런 종류의 것일까요? 안 그렇죠. 교실에 학생 수가 점점 늘어나면 원래 있던 학생들의 교육환경이 나빠집니다. 즉 포화성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 교육은 얼마든지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상품입니다. 만약 교육이 공공재라면 사교육 기업들이 성행하는 현실을 전혀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교육 대통령: 이 장관께서 모처럼 경제학자답게 말씀하시는군요.

이홍주: 당선인도 사회교사 출신이시니 나머지를 설명해 보시죠. 그런데 왜 중학교까지 교육이 무상으로 제공되는지?

교육 대통령: 그건 교육이 가치재이기 때문입니다. 가치재는 공동체나 국가가 판단하기에 모든 구성원이 누릴만한 가치가 있는 상품이기 때문에 제공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공교육 서비스는 엄밀히 말하면 공공재라기 보다는 국가가 구입해서 국민에게 나누어주는 가치재라고 보는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할겁니다.

이홍주: (회심의 미소를 띠며) 바로 그게 문제란 것입니다. 만약 교육이 가치재라서 모든 국민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면, 국가는 국민이 선택한 교육에 대해 지불만 해 주면 되는 겁니다. 골라줄 필요까지는 없단 말이죠.
하지만 지금 공교육은 어떤가요? 국가가 국민들에게 교육의 종류, 내용, 그리고 심지어는 그것을 제공할 교사와 학교까지 일방적으로 지정해서 할당하고 있습니다. 이건 국가가 사준다기 보다는 배급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선택권은 무참히 짓밟히고 있죠.
예를 들어 볼까요? 발레나 오페라 공연은 가치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의 티켓 값을 50% 이상 인하하도록 하고, 그 차액을 대신 지불해 줄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만약 국가가 김갑돌이란 사람에게는 발레 백조의 호수티켓을, 박을수란 사람에게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티켓을 강제로 배당했다면 이게 과연 제대로 혜택을 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만약 김갑돌은 오페라를, 박을수는 발레를 보고 싶어 했다면 이건 국가가 선심을 베풀어준다는 미명하에 폭력을 행사한 꼴이 아니겠습니까?
고교 평준화를 좀 보십시오. 교육 수요자들이 원하는 학교와 교사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희망과 선택이 배제된 채 강제로 학교와 교사가 할당됩니다. 이건 폭력입니다. 이런 폭력적인 처사가 그 동안 국가에 의해 교육이란 이름으로 행해져 왔던 것 아닙니까?

나교수: 간 만에 이장관께서 강펀치를 날리셨습니다. , 송선생님이즉각 반격 하시겠다고 나서시는군요.

송혁재: 그러니까 이 장관께서는 교육 수요자가 원하지 않는 학교, 원하지 않는 교사가 강제로 배당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이홍주: 제 말을 아주 정확하게 요약하셨습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이렇게 되면 공급자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국가가 고객을 확보해 주는 꼴이 된다는 거죠. 그러니 학교 입장에서는 개선과 혁신을 위해 노력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학교가 낙후하게 되고, 결국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수요자들이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드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을 국가에 의해 강매 당했는데, 그 품질이 신통치 않으면 어쩝니까? 시장에 나가서 또 사는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송혁재: 이 보세요. 교육이 무슨 시장에서 사고 파는 물건인 줄 아세요?

이홍주: 시장에서 물건만 거래된답니까? 서비스도 거래되죠.

송혁재: 아니, 그럼 교육이 무슨 마사지, 미용, 네일아트 같은 서비스업이랑 같다는 말씀이십니까?

이홍주: 본질적으로 뭐가 다릅니까? 고객의 만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니 송선생님은 좌파라는 분이 직업귀천의식 있으십니까? 고객의 머리를 만져주는 능력을 제공하는 것이나, 고객의 자녀를 가르치는 능력을 제공하는 것 사이에 무슨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까? 음악학원, 피아노학원, 컴퓨터학원 같은 곳도 모두 서비스업으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학교만 유달라야 합니까?
(송혁재가 발끈하며 일어서려는데 원정규가 제지한다)

원정규: 송선생님의 불만이 뭔지는 알겠지만, 일단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일단 학교 교육도 서비스업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송혁재: 가정하든 말든 맘대로 해 보세요. 신자유주의자들 같으니라고.

원정규: 신자유주의 논쟁은 좀 있다가 따로 하기로 하고요. , 이 장관님 말씀에 대해 좀 물어보겠습니다. 학교가 공급자고, 교육이 서비스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고객이 있어야 하겠죠? 누가 고객인가요? 누가 학교를 선택하는 선택의 주체인가요?

이홍주: 그야 당연히 학부모가 아니겠습니까?

원정규: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홍주: 아니 어떻게 그게 잘못된 생각이죠? 너무 당연한 생각 아닙니까?\
원정규: 제가 단언 드리는데 학부모는 결코 교육 수요자가 아닙니다.

이홍주: 그럼 대체 누가 교육 수요자겠습니까? 자기 자식 자기가 원하는 대로 키울 자유가 부정되는 겁니까? 누가 교육비를 냅니까?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 수요자가 아니면 누가 수요자입니까?

원정규: 자기 자식, 자기가 원하는 대로 키울 권리라. 세상 어느 부모에게도 그런 자유는 없습니다. 자식을 마음대로 키울 자유를 부모에게 준다면, 이건 자식 입장에서는 마음대로 성장할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 되니까요. 그리고 이 경우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온전한 권리는 부모가 아니라 자식에게 있다고 봐야겠죠. 자식의 인생이니까요. 그러니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자유가 있다고 해야 합니다. 부모에게는 자녀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해야 할 의무가 있고, 또 자녀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권리와 의무는 있겠지만,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까지 결정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엄밀한 의미에서 교육 수요자는 학부모가 아니라 학생입니다.

이홍주: 그건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말씀이십니다. 서울대학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내 자식이고 내가 돈 내는데 그럼 내 맘대로 고르지도 못한단 말씀이십니까? 거 참 요상한 논리네요.

원정규: 만약에 그게 자식이 아니라 애완견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니 원래 사냥개였던 개를 집에서 애완견으로 키우건, 털을 깎아서 완상용으로 만들건 그건 주인 마음일수도 있겠죠. 물론 이것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주장도 많이 있습니다. 사냥개였던 개는 넓은 들판과 마당이 있는 집에서 길러야지 아파트 같은 곳에서 애완용으로 기르는 것은 가혹행위라고요. 개도 그럴지언정 하물며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인 자녀는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자녀는 당연히 독립적인 인권을 가진 존재입니다. 여러분 자녀 인생의 주인은 여러분 자녀이지 여러분이 아닙니다.

우부친: 하지만 자식 잘못되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직 어리고 미숙한 아이들이니까 길을 잡아주려는 것 아닙니까?

원정규: 그렇다고 해서 길 자체를 골라주거나 심지어는 강요할 권리는 없습니다. 다만 아주 엉뚱하거나 엇나가는 길이 아니라면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쓰러지지 않고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줄 뿐입니다. 그렇게 보면 학부모의 역할은 교사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사는 오늘날 가르쳐야 할 내용과 도와줘야 할 영역이 광범위해지면서 부모가 감당할 수 없어짐에 따라 부모 역할의 일부를 맡아 가진 집단입니다.

오자모 (억울해 하며) 학부모라면 누구나 자기 자식이 점수 잘 받기 바라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교육 시키려고 사교육까지 시키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우리가 수요자가 아니고 선택의 권리가 없다는 거죠?
이홍주: 어머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송혁재: (벌떡 일어서며) 일리가 있기는 뭐가 있단 말씀이십니까? 명색이 교육 전문가, 교육 당국자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니 이렇게 공교육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부친(뛰어들며): 아니, 뭐가 어이가 없어? 보자보자 하니까 배웠다고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바보가 아니라면 우리가 세금내서 학교 굴리고, 선생 월급주고 하는 거 부정하지 못할텐데요? 따지고 보면 선생님들 교수님들 월급도 우리 세금에서 나간단 말입니다. 그러니 우린 댁들 고객이라고요. 고객은 왕이다 이런 말도 모르십니까?

원정규: . 세금을 냈으니까 수요자라는 그 말씀을 그럼 일단 받아들여 봅시다. 그런데 두 분께서 내는 세금은 학교 뿐 아니라 병원에도 들어가죠?
우부친: 당연하죠.
원정규: 또 국방에도 들어가죠? 아마 교육과 함께 제일 많이 세금이 들어가는 분야가 국방이 아닐까 하는데.
우부친: 사람 무시하쇼? 그거야 5천만의 상식이 아닙니까?
원정규: 그렇다면 여러분은 국방과 의료에서도 소비자이고 수요자시죠?
오자모: 당연한 걸 왜 자꾸 따지고 그래요?
원정규: 그렇다면 여러분은 국방이나 의료가 여러분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바라십니까, 아니면 가장 좋은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바라십니까?
우부친: 그게 무슨 소리요? 그게 그거 아닙니까?

원정규: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국방부터 살펴볼까요? 지금이 전쟁 중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은 작전장교들이 작전을 수립하기를 바라십니까, 아니면 작전에 대해 여론조사를 해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작전을 수립하기를 바라십니까?
우부친: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전을 어떻게 여론조사로 정합니까? 장교들이 짜야죠.
원정규: 그 까닭은 전쟁의 목적은 승리하는데 있는 것이지 국민들의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우부친: 당연하지 않습니까? 인기 얻을 것 같은 작전을 세웠다가 나라가 패망하면 그놈의 인기가 다 뭔 소용이겠습니까?

원정규: 그럼, 병원은 어떨까요? 여러분이 병원에 갔을 때 여러분이 원하는 치료 방법과 여러분이 원하지 않으나 병을 낫게 하는 치료방법이 있다면 어떤 게 더 좋은 치료방법이겠습니까?
오자모: 당연히 병을 낫게 하는 거죠.
원정규: 그리고 어떤 치료 방법이 병을 낫게 하는지 판단은 누가 내리죠? 환자가 내립니까? 아니면 환자 보호자가 내립니까?
오자모: 그거야 당연히 의사가 내리죠.
원정규: 아니, 이런 상황을 어떻게 감내하십니까? 이거 완전 공급자 중심주의 아닙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국방이나 의료의 수요자 아닙니까? 세금도 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수요자가 공급자의 판단을 따른단 말입니까? 고객은 왕 아닙니까?
우부친: 그거야, 그런 일들은 전문가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렇죠.

원정규: 그러니까 작전은 장교들에게 맡기고, 치료는 의사들에게 맡기는 것이 수요자들에게 맡기는 것 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바람직하다는 것이죠?
우부친: 그렇죠.
원정규: 좋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여러 공공 서비스들 중 유독 교육만 수요자 중심이라야 하는 까닭이 뭡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럴 거면 전문적인 교사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건전한 양식을 가진 성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게 하지, 상위 5%에 드는 학생들이 죽도록 공부해야 겨우 교사가 될 정도로 까다롭게 선발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더군다나 교육의 직접 당사자인 학생도 아닌 학부모들의 뜻대로 학교가 움직여야 할 까닭이 어디에 있죠?
오자모: 그거야, 내 자식 맡겨 놓았으니까 그렇죠.
원정규: 아니. 그럼 의사는 환자 부모가 내 자식 맡겨놓았으니까라고 말하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치료해야 하나요?
오자모: 그건 아니죠. 의사는 자신의 전문성과 소신에 따라 최선을 다해 병을 치료해야죠. 그게 부모가 원하는 것이니까요.
원정규: 그렇다면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치료를 해야 하나요, 아니면 환자의 부모나 가족이 원하는 방향으로 치료해야 하나요?
오자모: 당연히 환자를 보고 해야죠. 가족이 무슨 상관이에요? 아픈 건 환자잖아요?
원정규: 그러니까 병원에서 수요자는 가족이 아니라 환자 본인이 되겠죠?
오자모: 그렇죠.
원정규: 그렇다면 교육에서 수요자는 부모일까요 아니면 학생일까요? 교사가 우선 귀를 기울여야 할 대상은 학부모일까요 아니면 학생일까요?
오자모: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요, 애들 말만 듣고 어떻게 교육을 해요? 애들은 아직 미숙하고 잘 모르잖아요?

원정규: 그럼 학부모는 어떨까요? 학부모 말만 듣고 어떻게 교육을 하겠습니까? 학부모는 단지 그 한 두 명의 아이만 길러봤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학부모들은 아이가 열 살이 되면 어떤 변화를 겪는지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한 두 번 경험해 보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교사들은 그 나이 또래의 어린이들만 최소 수백 명에서 최대 수천 명까지 아이들을 길러본 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해마다 계속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만 전문적으로 길러본 전문가입니다. 예컨대 중학교 교사라면 학부모가 한두 번, 한두 명 겪어 보았을 사춘기 청소년들을 수백 명에서 수천 명까지 전문적인 안목을 가지고서 집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이렇게 교육을 전담하는 전문가들 앞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큰 차이가 있을까요? 오히려 학생은 자기가 교육에 대해 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시키는 대로 하지요. 하지만 학부모는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제법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수요자 중심이라고 말하면서 학부모의 뜻에 따라 학교가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까?

우부친: 이보세요. 애초에 당신네 교육자들이 교육을 똑바로 했으면 누가 이런 식의 말을 하
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원 교수 말씀을 들어 보니 마치 교육은 우리 교육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테니 무식한 학부모는 빠져라 뭐 이런 것 아닙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당신네 월급도 다 우리가 낸 세금에서 나온단 말입니다.
오자모: 맞아요. 정말 너무 하시네요.
원정규: 좋습니다. 그렇다면 장교들은 사병들의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작전을 수행해야 하겠군요. 그런데 젊은 장병들의 부모들은 당연히 자식들의 안전을 원할테니, 그 희망대로 웬만하면 후퇴하거나 항복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겠군요.
우부친: 그건 좀....
원정규: 그렇다면 공교육은 학부모가 원하는 교육을 해야 하나요, 아니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하나요?
오자모: 그건 좀 말씀 드리기 어렵네요. 하지만 전 납세자입니다.
원정규: 세금을 낸 것이 과연 공교육을 구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 가난해서 세금을 적게 내거나 내지 않은 사람의 자녀는 학교에 다니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
오자모: 그런 뜻은 아니고요.
원정규: 그럼, 현재 자녀들이 장성했거나 혹은 독신이라서 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교육세를 내지 말아야 할까요?
오자모: 그건 아니라고 봐요.
원정규: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수요자도 아니면서 요금을 내고, 요금을 내지도 않았는데 서비스를 이용하는 셈이 아닙니까? 그럼 학교에 다니는 자녀 수가 많을수록 교육세를 더 많이 부과해야 공정하지 않겠습니까?
우부친: 그건 안 되죠. 납세는 국민의 의무이니까 공평하게 부과 되어야죠.

원정규: 하지만 아무런 혜택도 보지 못하면서 세금만 뜯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자녀가 없거나 이미 다 성장해서 학령기 자녀가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오자모: 혜택을 못 보긴요? 만약 학교가 제대로 안 굴러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안 그래도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이 엉망이 될 거 아니에요? 그렇게 막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무슨 짓을 할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갑자기 길가는 사람한테 칼질이나 안 할지.
원정규: 그렇죠? 우리가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가 나를 공격하거나 해칠 것이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우리가 어떤 사업을 시작할 때 마다 적절한 인재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도 그나마 다 공교육 덕분입니다. 이렇게 그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되면, 이를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다고 말합니다. 즉 공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이 사회적 자본을 늘리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공교육의 진정한 수요자는 누구이겠습니까?
오자모: 우리 사회네요.
원정규: 그렇습니다. 공교육의 수요자는 사회이며 그 수혜자는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사회는 공교육 기관에게 올바른 사회 구성원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사회는 시민들로 이루어져 있죠. 그러니 여러분이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자녀의 부모로서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주권자로서 내는 것입니다. 세금을 낸 보상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 가족이 교육 받은 사람들 속에서 믿을 수 있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받는 것이지 결코 내 자녀의 점수, 내 자녀의 석차로 받는 게 아닙니다. , 이 말에 뭐 잘못된 거 있습니까? (이홍주를 보며) 그러니 제발 학부모가 교육 수요자라는 등의 말씀은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송혁재를 보며) 그리고 공교육은 상품이 아니니 수요공급으로 말할 수 없다는 등의 말씀도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송혁재: (갑자기 배신 당했다는 듯이)아니,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원정규: 공교육은 실제로 서비스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고객이 사회이며 공동체라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워낙 남발되어 별 의미가 없어지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공교육 기관에서 가르치려면 교사 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수 많은 사람들 중 고객인 사회가 그 사람을 선택했다는 구입인증서 같은 것입니다. 또 그 타당성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단히 엄격하고 어려운 임용절차를 통과해야만 공교육 기관의 교사가 될 수 있는 것 역시, 여러 교육 서비스 기능 보유자들 중 가장 우수한 사람을 사회가 수요자로서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송혁재: 수요자? 판매자? 이제 잘 하면 학교평가, 교원평가도 정당화 하시겠네요?
원정규: 당연하죠. 교사와 학교가 고객인 사회에 대해 자신들의 실적을 평가받고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학교평가나 교원평가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교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원교수님 보다는 실제 정책을 집행할 당선인의 뜻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육 대통령: 저 역시 교원평가제와 학교평가제를 정비해서 실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홍주:(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이제야 저와 당선인이 뜻이 맞아 떨어지기 시작하는군요. 그래요. 선생님들 평가 받아야죠. 그래야 자극도 되고 경쟁도 하고 또 책임감도 생기죠.
송혁재: (냉소적으로) 어이구,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잘들 노십니다. 그래 결국 서울대 출신에 제도권 박사끼리 가재는 게 편이라도 하시겠다는 겁니까?
교육 대통령: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제가 학교 평가, 교원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해서 이장관님과 뜻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장관께서는 학교와 교사가 돈을 내는 학부모들의 평가를 받으라는 것이지만, 저는 학교와 교사가 시민사회의 평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학교나 교사도 분명 일종의 공권력인 이상 시민사회의 감시와 견제가 없으면 타락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와 교사도 사회가 자신들에게 부과한 책무를 얼마나 충실하게 실행했는지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송혁재: 말 장난 하지 마세요. 결국은 교사들 줄 세우고, 구조조정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그 놈의 구조조정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구조조정의 공
포를 떠들고 다니셨지만, 심지어 신자유주의 이명박 정부에서조차 교사들이 구조조정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차피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줄을 세울거냐고 말씀 하셨는데, 줄을 세우지는 않겠습니다. 교사들이 1등부터 100등으로 순위를 받는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시민들을 양성하는데 노력한 교사들은 응분의 보상을 받고, 나태하고 반인권적이고 권위적으로 군림한 교사들은 당연히 재교육을 받거나 퇴출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장관께서는 학교의 학업성취도를 공개해서 학부모들의 심판을 받는 쪽을 수요자의 평가라고 하셨습니다. 제 생각은 그것과 다릅니다. 저는 학교가 얼마나 민주적인지, 수업이 얼마나 자유롭고 창조적인지를 공개해서 시민사회의 심판을 받는 것이 수요자의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기준을 세워 학교평가와 교원평가를 실시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바깥에서는 민주니 자유니 떠들었지만 정작 교실에서는 지루한 일방통행 수업과 권위적인 태도로 일관한 거짓 진보교육자들도 가려지겠죠.
저는 지나치게 고루하고 권위적은 교사들은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리더십을 갖추도록 하겠지만, 이런 거짓 진보교사들은 모조리 퇴출시킬 것입니다. 몰라서 안한 것, 안 되서 못한 것은 용서 되지만 알고도 안한 것, 그러면서 하는 척 하고 위장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과오니까요. 제가 교사들을 줄 세워서 구조조정할거라고 걱정하셨다면, , 맞습니다. 구조조정 할 겁니다. 다만 그 기준과 종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자모: 그럼 학부모들은 이제 어떤 위치에 있게 되나요? 평가하고 선택하는 수요자나 고객의 위치가 아니라면, 학부모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교육 대통령: 안 그래도 그 말씀을 꼭 드리려고 했습니다. 사실 이 자리를 마련한 것도 그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였거든요.
나교수: (PD와 사인을 주고받다가) , 그렇다면 여기서 한 호흡을 쉬고 다음 시간에 학부모의 올바른 위상이라는 별도의 주제로 새로 토론을 시작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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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9.

교육대통령과의 대화 10 국영수는 제일 중요한 과목이 아니다


제일 처음 부터 보실 분은..... 1편부터 보기
바로 앞의 편인 9편 보기
국영수는 제일 중요한 과목이 아니다.
 
나교수: , 이제 주제가 넘어갑니다. 당선인께서는 인문 예술 교육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편하겠다는 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국영수는 어떻게 되느냐며 불안해 할 수도 있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토론을 시작합니다. 문제제기 하신 쪽에서 먼저 말씀하시죠.

오자모: 제가 먼저 말 꺼냈으니까 계속 할게요. 저도 예술이나 교양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공부는 말하자면 일종의 액세서리 같은 거죠. 있으면 예쁘고 좋지만 그렇다고 그것부터 먼저 챙길 건 아니라고 봐요. 그런데 당선인께서는 국영수 같은 중요과목에 대해서 좀 가볍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솔직히 학부모 입장에서는 불안하네요. 애들이 배운 것 없이 멋만 드는 건 아닐까 하고요.

이홍주: 내 말이 바로 그겁니다. 영어 수학 못하면서 음악, 미술 아무리 잘하면 뭐합니까? 교양이 아무리 풍부하면 뭐합니까? 고급 실업자 밖에 더 되겠습니까?
교육 대통령: 하하 은근슬쩍 국영수에서 국어 빼고 영수만 말씀하시네요? 왜 그러시나요? 그리고 그렇게 실용적이신 분이 왜 실업계 학교를 강화하지 않고 자율고니, 국제고니 하는 거만 늘렸습니까?

이홍주: 그거야 이제는 고급 인재를 육성해야 하니까 그랬죠.
교육 대통령: 그러니까 이 장관님의 고급 인재는 국영수 잘하는 사람입니까?
이홍주: 영수는 일단 기본이죠. 이 기본 위에 다른 것들을 겸비한 사람이 인재죠. 일단 영어 수학을 잘해야 다른 과목들도 잘하게 되는 겁니다.
교육 대통령: 허어,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꼴을 모르십니다. 오늘날 인문적 교양과 예술적 소양이 고부가가치 산업의 기반이라는 것은 거의 상식입니다.
이홍주: 그런가요? 난 못 들어 봤는데, 왜 그렇죠?

교육 대통령: 아까 관계망을 형성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출할 수 있는 상품이 21세기의 고부가가치 상품이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뭐하셨습니까? 조셨나요? 내 참, 그래서 교양이 필요한 겁니다. 교양은 자기 삶을 성찰하고 또 삶을 창출할 수 있는 소재가 되는 것들입니다. 지식과 정보, 그리고 각종 기능들을 자기 삶을 통해 깊게 생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녹여 낼 수 있는 내공, 이것이 바로 교양이란 말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지식·정보가 빠르게 전파되고 공유되는 세상에서는 제품의 성능만으로는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중국의 ZTE같은 기업이 적어도 기기의 성능만큼은 애플이나 HTC를 순식간에 따라잡는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뭐냐 하면 그 제품을 가지고도 어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할 수 있느냐, 그리고 어떤 미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이홍주: 기계는 그렇다 치고, 하지만 영어 수학이 바탕이 되어야 그런 것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육대통령: 영어요? 번역기의 성능이 점점 향상되고 있습니다. 구글 번역기 같은 건 영어로 된 웹사이트를 순식간에 통째로 우리말로 옮겨 줍니다. 수학이요? 요즘 컴퓨터가 어떤지 잘 아시잖아요? 완전 수학 천재죠. 중요한 건 영어나 수학을 잘하는 것 보다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디에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어와 수학을 인간보다 월등히 잘하는 로봇이나 컴퓨터는 상상할 수 있어도 교양을 갖추고서 삶을 성찰하고 삶을 창출하는 그런 로봇이나 컴퓨터는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이홍주: 하지만 그 교양이라는 것도 기초과목의 소양이 없으면 얻을 수 없지 않습니까?

교육 대통령: 물론 기초소양으로서 언어 수학 과목의 중요성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게 모든 학년 학교 수업시간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흔히 국영수를 기초교과, 도구교과라고 합니다. 왜 기초고 왜 도구이겠습니까? 그걸 익혀서 다른 교과를 공부할 수 있게 하니까 도구이고 기초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국어·수학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장관께서는 골프를 치실 테니 골프로 예를 들어보죠. 레슨 초기에는 기본 자세, 기본 스윙 연습하는 시간을 길게 가지겠죠. 하지만 레슨이 진행되면 될수록 그런 기본기 연습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나중에는 코스 공략 위주로 레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기초과목인 국영수의 비중은 점점 줄이고, 그 대신 각종 교양과목과 예술 과목의 비중을 늘리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영어 수학을 배우는 까닭은 단지 영어 수학만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 고급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고, 교양을 넓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지식을 얻고, 교양을 넓힐 기회는 주지 않은 채 막무가내 영어 수학 공부만 지겨울 정도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 도구를 재미있게 사용할 기회는 점점 줄여나가면서, 도구를 연마하는 시간만 점점 늘리고 있으니 공부가 재미없는 겁니다. 만약 이 장관께서 골프레슨을 받는데, 필드에 제대로 나가보지도 못하게 하고, 게임 한 번 안 시키면서 10년이 넘도록 스윙연습만 시킨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부친: 그렇다면 당선인께선 중고등학교의 국영수 시간을 줄일 생각이십니까?
교육 대통령: 물론입니다.
우부친: 그래도 과연 공부가 될까요?

교육 대통령: 거꾸로죠. 공부를 하면서 국영수도 익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회 과목이나 윤리, 철학 과목에서 읽어야 할 글들은 대부분 논설문이나 설명문입니다. 그렇다면 국어라는 과목에서 논설문, 설명문이라는 단원이 별도로 있어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또 고등학생이라면 사회 시간에 외국의 사례나 학설을 살펴볼 기회도 주어야 하고, 다른 나라 정부 웹사이트도 방문하고, 국제적인 NGO 사이트를 방문하면서 질의응답을 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적인 이슈를 놓고 다른 나라 학생들과 인터넷 토론을 할 수도 있겠죠. 이러면서 저절로 영어공부가 되는 겁니다. 단지 영어시험을 위한 영어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영어가요.
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시간에 통계를 다룹니다. 경제시간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함수와 도함수를 다룹니다. 과학시간에는 상당히 고급 수학까지 다룹니다. 이렇게 거의 모든 교과에 수학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런 여러 영역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수학이 왜 필요한지 깨닫고서 관련되는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지 않겠습니까?

오자모: 물론 그러면 좋기는 하겠지만, 솔직히 불안할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영어 수학을 공부하면 정말 영어 수학 실력이 늘고 있는지 알 수 없잖아요?
교육 대통령: 하하하. 제가 교사시절에 학생들도 그렇게 질문 하더군요. 뭔가 확실하게 정리가 되고, 시험 칠 준비를 해 줘야 가르치고 배운 거라고 생각들을 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 오자모 씨 혹시 운전 하시나요?
오자모: . 물론이죠. 특히 애들 고등학교 들어간 다음부터는 학원 데려 다니느라 운전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교육 대통령: 그럼 그 동안 운전 실력이 많이 늘었겠네요?
오자모: 확실히 많이 늘은 것 같아요.
교육 대통령: 최근에 특별히 운전 연습을 하신 적 있으십니까? 굴절코스, T자 코스, 언덕, 돌발 이런 것들?
오자모: 그런 연습을 왜 해요? 그건 면허 시험 칠 때나 하는 거죠.
교육 대통령: 그럼 만약 지금 면허시험장 가서 굴절코스니, T자코스니 이런거 시험 치라고 하면 연습이 부족해서 떨어질까요?
오자모: 그럴 리가 있나요? 운전을 벌써 10년째 하고 있는데? 그런 기초적인 코스야 쉽죠.
교육 대통령: 바로 그겁니다. 그런 기초기능을 따로 일부러 연습하지 않아도 실제 상황에서 운전을 계속하면 그런 기능은 저절로 향상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실제 운전하는 와중에 어떤 특정한 기능이 좀 뒤떨어진다고 판단하면, 예를 들면 후진 주차가 잘 안된다고 생각되면 그것만 따로 연습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일단 도로주행을 다니기 시작하면 굳이 따로 연습하지 않아도 경험이 쌓이면서 운전 기능이 향상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국영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 각종 코스 기능 연습을 따로 하지 않아서 불안감을 느끼는 운전자는 거의 없습니다. S자 연습을 안해서 굴곡진 길을 운전하지 못할까 두려워하거나 하지 않죠. 그러니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문헌과 사례를 공부하고 실험을 하고 토론한다면 그 와중에 국영수 기능은 저절로 향상되기 마련이니까요.

송혁재: 당선인 생각은 뭔지 알겠지만, 저 역시 당선인께서 현실을 너무 안이하게 파악하고 계신 것 아닌가 우려됩니다. 우리 교육 현실은 대입수능이라고 하는 끝판왕이 버티고 있는 실정입니다. 당선인이 어떤 꿈을 꾸시던 간에 이 수능이 있고, 대입이 있는 한 결국은 국영수 위주 수업으로 흘러가고 말 것입니다.
오자모: 맞아요. 인문이니 교양이니 하다가 수능은 어떻게 보나요? 만약 학교에서 그런 걸로 수업하면 결국 학생들은 학원에서 국영수 공부해야 하니 사교육만 팽창 할 것 같아요.

교육 대통령: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물론 수능이 끝판왕, 종결자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수능이 바로 국영수와 연결된다고 보는 것은 오해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렇지 않게 바꿀 생각이고요. 원래 수능은 어떤 교과목과 직접 연결되는 시험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니라야 하고요. 국어 영어 수학이란 과목명을 쓰지 않고 언어, 외국어, 수리라는 이름을 쓰는 게 괜히 그러는 게 아니거든요. 언어는 국어가 아니며, 수리는 수학이 아니고, 외국어는 영어가 아닙니다. 국 영 수 라는 교과를 따라 떼어 공부한 학생보다는 다양한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영역을 한국어로, 혹은 필요하면 영어로, 그리고 다양한 수학적 방법을 응용해 가며 공부한 학생들을 선발 하려는 게 이 시험의 목적입니다. 그게 바로 대학에서 학문을 공부할 수 있는 기초 소양이니까요. 물론 수능의 기능은 거기까지로 제한해야 합니다. 기초 소양이 갖춰졌다고 판정되면 거기서 다시 순위를 매기는 것은 무의미하죠.

이홍주: , 국어 영어는 사회나 과학 시간에 해당되는 내용을 통해 할 수 있다고 합시다. 하지만 수학은 안 될 걸요?
교육 대통령: 저는 국영수 수업을 없앤다고는 안했습니다. 줄인다고 했지.
이홍주: 글쎄 줄이면 안 될 거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아우성인데 어떻게 줄입니까? 지금 우리나라 고등학생 수학 평균이 40점대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시간을 줄인다고요?

교육 대통령: 두 가지만 생각해 봅시다. 우선 학생들의 점수가 낮은 것인지, 아니면 나오는 문제가 어려운 것인지. ·고등학교 때 미국이나 캐나다로 유학간 학생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게 뭐냐 하면 수학입니다. 수학이 너무 쉬워서 정말 이정도만 해도 되는지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학 쉽게 배운 나라가 수학이 필요한 기초과학분야가 우리보다 뒤떨어져 있나요? 원 천만에요. 그 반대 아닌가요.
그리고 이렇게도 따져 봅시다. 학생들의 점수가 평균 40점이라면 분명 문제가 심각한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학생들이 못해서일까요, 선생들이 못가르쳐서일까요, 아니면 애초에 그 교과 자체가 지나친 것일까요? 우선 어느 학교나 수학점수가 그 정도라면 선생님들이 못 가르쳐서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만약 성립되려면 학교에 따라 학급에 따라 편차가 커야 하는데, 거의 골고루 수학은 못하거든요. 사실 평균이 60-70점 정도가 되어야 정상인데, 평균이 40점 내외에서 맴돌고 있다면 이건 수학이라는 교과 자체가 난이도 조정에 실패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수학선생님들 중에 꽤 많은 분들이 수학이라는 과목에 대한 다소 패권주의적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진정한 승부는 다른 과목이 아니라 수학점수에서 결판난다는 식의. 지금 명백히 우리나라 수학교육과정과 또 수학 시험문제들은 지나칩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이 수학점수 때문에 포기하고, 국문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이 수학점수 때문에 포기하는 등의 어이없는 일들이 발생하는 겁니다.
그것 뿐이 아닙니다. 수업 시간표와 학생들의 학습시간을 블랙홀처럼 독점하다시피하는 수학 시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점수가 낮은 것은 수학시간이 적어서가 아니라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재미가 없을까요? 이 공부를 왜 하는지, 어디 써먹을지도 모르는데, 분량은 엄청 많은데다 어렵기가지 하고 불친절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수학적 기법을 널리 사용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런 용도까지 공감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과학에서 수학을 사용하는 까닭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까닭이 그렇게 함으로써 개념과 개념의 논리적인 관계를 명확히 하고, 단순화 하여, 추론을 가능하게 때문이라는 것 말입니다. 게다가 수학시험은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무관하게 나옵니다. 그냥 짧은 시간에 누가 많은 문제를 풀어내느냐 하는 승부입니다. 이건 수학시험이라기 보다는 컴퓨터 한테 맡겨도 되는 계산 시험에 불과합니다.

이홍주: 하지만 고등학생들이 풀어야 하는 수학문제가 단순한 연산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교육 대통령: 물론 아니죠. 하지만 수학점수 1,2 점을 다투어야 하고, 또 워낙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그 문제들을 일일이 논리적으로 추론해가면서 풀었다가는 절반도 풀기 전에 시험이 끝나고 말겁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추론하기 보다는 문제의 유형별 풀이법을 그냥 익힙니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이런 식으로 풀고, 저런 종류의 문제는 저런 식으로 풀고 하면서 풀이 패턴을 익히는 겁니다. 이런 패턴들을 많이 가르쳐 주는 선생들이 실력있는 선생이라 불리며, 이런 패턴들을 잘 정리해 놓은 학원이 용한 학원으로 통합니다. 결국 수학 시험은 누가 더 많은 패턴을 암기하고 있느냐, 그리고 누가 그 패턴을 적용해서 계산을 빨리 하느냐를 측정하는 시험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log함수가 대체 왜 쓰이며,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log기호가 나오는 연산문제 푸는 방법을 익히고, 미분·적분이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이해하기 전에 그런 기호가 나오는 문제의 계산법을 외우고 문제를 푼단 말입니다. 이런 식의 교육이 계속 되면 결국 수학 점수는 높지만 정작 수학은 잘 모르는 그런 학생들만 양산되고 마는 것입니다. 문제는 차라리 쉽고 긴 시간동안 풀게 하되, 개념을 분명하게 익히게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홍주: 당선인이 말씀하시는 수학 잘하는 학생 가려내는 문제라면 결국 기본적인 정의와 공리, 정리들을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을 측정하자는 것인데, 그 정도로 변별력이 생길까요? 아마 복잡한 계산 없이 기본 개념과 추론만 가지고 시험 치면 상위권 학생들 점수는 거의 비슷비슷 할 겁니다.
교육 대통령: 상위권 학생들 점수가 비슷비슷하면 뭐가 문제가 됩니까? 그 이상의 수학적 능력은 수학 시험이 아니라 여러 사회과학, 자연과학, 기타 여러 일상적 상황에서 활용하도록 해야죠. 구체적인 상황에서 말이죠. 일단 수학의 기본 개념을 익혔으면 그것보다 더 고차적인 능력은 더 복잡한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복잡한 현상을 수학적 개념을 이용하여 패턴화시키고 일반화 시키는 능력이니까요. 그건 수학시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평가할 수 있겠죠.

오자모: 그럼 영어는요?
교육 대통령: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어 혹은 영어라는 이름으로 치러지는 시험에서는 기본적인 문형과 어휘력, 독해력 등을 측정해서 수준이 웬만큼 되는지 정도만 검증하고, 그 이상의 수준은 구체적인 내용과 영역이 있는 외국어 자료를 해석하는 시험에서 해결해야죠. 그러니까 사탐이나 과탐에서 영어로 된 자료를 제시할 수도 있는 법입니다. 거꾸로 영어 시험에 사탐이나 과탐에 나올법한 문제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고요. 하지만 그러자면 가장 큰 고민이 있는데요, 학교 수업이 바뀌어야 이게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송혁재: 교사한테 대체 뭔 불만이 그리 많으십니까?
교육 대통령: 불만이 많을 수 밖에요. 우리 나라에서 교사는 매우 사회적 지위가 높습니다. 그런데 그만큼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죠. 왜 존경을 받지 못할까요? 그 지위만큼의 전문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또 그러려는 노력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사회영역 선생님들은 사회과목을 수학적 기법까지도 동원하는 사회과학이란 점을 망각하고 계시면서 암기과목으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사회 시간에 수학적 기법을 통해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어야 하고, 외국의 논문이나 시사 자료도 거침없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과학 선생님들도 직접 실험을 하거나 관찰을 해서 그 결과를 통계처리하고 공식화해서 수리모형을 세우고 하는 등의 작업을 안 한지 십 수년 씩 된 분들이 태반입니다. 사이언스, 내이쳐 같은 외국의 권위 있는 과학 잡지를 읽거나 수업에 활용하는 경우는 손에 꼽고요. 그러니 과학 역시 암기과목처럼 가르치고들 계시죠. 이렇게 내용이 되어야 할 과목이 암기과목으로 전락하고, 또 그걸 방치하고 있으니 도구를 위한 도구, 국영수를 위한 국영수 수업만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겁니다.
송혁재: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참 할말이 없네요. 저는 그렇게 합니다만....
(한 동안 다들 침묵)
나 교수: 그럼 좀 쉬었다 갈까요?
교육 대통령: 그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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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