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13의 게시물 표시

홍콩, 싱가포르가 부러웠던 가카와 오세훈.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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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는 타이완,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이 네 지역이다. 그러고 보니 모두 한자문화권이며, 한족이 주류를 이루는 나라들이기도 하다. 물론 홍콩, 마카오를 나라라고 볼수 있느냐는 말도 있겠지만, 엄연히 독자적인 여권과 화폐, 그리고 자치 정부를 가지고 있으니 나라라고 봐야 한다.

그럼 내가 중국 오덕님이시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난 중국 본토 여행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저 지역들이 아시아의 선진권이라서 그런것도 아니다. 물론 나는 농촌보다는 도시를, 자연스러운 곳 보다는 문명이 발달한 곳을 좋아한다. 나는 잘 발달하고 정비된 현대식 도시 탐험을 좋아하지, 거친 자연속을 헤집고 다니거나, 혹은 "사람 냄새 난다"는 말로 위장된 어지럽고 비체계적인 후진국 거리에서 저렴한 물가를 즐기는 일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래 사진들은 야경 멋지기로 세계 수위를 서로 다투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야경이다. 이 사진들만 봐도 이 도시들이 얼마나 화려하고 세련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나마 이건 일부분에 불과하다. 오세훈과 이명박이 얼마나 이 도시들을 부러워했는지 알만하다. 그래서 여의도에 IFC가 생기고(외양도 실내도 한국이 아니라 홍콩에 온듯하다), 영등포에 타임스퀘어가 들어서고,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는 싱가포르의 에스플러네이드와 모양과 기능이 흡사한 독특한 구조물이 들어섰다. 싱가포르 강 주변 풍경을 따라 만들려고 한 것이 청계천이며, 인도에 작은 실개천 조성한 것 역시 싱가포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두배 혹은 그 이상 높은 나라들임을 생각해 보면 이건 뱁새짓이다. 아무리 도시를 화려하게 꾸며놓은들, 정작 시민들이 그것을 향유할 여유가 없다면, 단지 그것은 공허한 화장빨에 불과하다. 서울 시민들은 홍콩, 싱가포르 시민만큼 돈도 없을 뿐 아니라 시간도 없다. 저 사진들을 보면 야경을 위해 건물 외부에 설치한 조명이 주로 빛을 내고 있으며, 대형 빌딩 사무실의 등은 거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혁명가들의 꿈은 언제나 이루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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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열기가 끝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뮤지컬 영화는 장사 안된다는 통념을 깨고 벌써 관객 500만명을 돌파하였다. 이 뜻밖의 흥행 돌풍에대해서 처음에는 스타, 시너지 등 마케팅 측면에서 이유를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대선에서 패배한 48%를 중심으로 한 셀프 힐링 측면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고, 심지어 영화를 정치적 스탠스에 무리하게 대입시켜 약팔지 말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레미제라블 원작,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했던 다른 영화들을 참고해 보면, 이 영화를 그렇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감독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원작 소설에서도, 그리고 이후 제작된 영화들에서도, 프랑스에서 제작한 연속극에서도 1832년의 혁명은 하나의 배경으로 주어질 뿐이다. 장발장은 적극적으로 혁명에 가담한 이가 아니라 다만 방관자다. 그는 코제트의 연인을 구출하기 위해 순전 개인적 동기에 의해 바리케이트 안에 들어설 뿐이다. 사벨이 자살하고 오랜 추적에서 벗어남으로써 작품의 긴장은 해소되며, 그것이 엔딩이다. 그러나 1985년의 뮤지컬,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혁명과 바리케이트에는 이전의 어떤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스포트 라이트가 보태어지며, 원작은 물론 그 어떤 장면에도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미래의 혁명이라는 클라이막스를 만들어 놓았다.  혁명은 더 이상 객관적인 시대적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제목인 "불쌍한 사람들"의 염원과 꿈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낼 바리케이트 너머의 세상으로 의미를 획득한다.



마찬가지로 2012년 영화에서는 청년 혁명가들의 위상도 대폭 확대되었다. 1998년 영화에서는 마리우스를 제외하면 이름조차 소개되지 않고 단역으로 처리되기까지 했던 앙졸라가 심지어 마리우스보다 더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전체 넘버들 중 1막과 2막을 마무리하는 곡들 역시 혁명 노래들인 &q…

이범에게 묻는다. 진보 교육의 실력이 달리는게 문제인가, 아니면 진보교육자가 배제된 정책팀이 문제인가?

정말 오랜만에 포스팅을 한다. 거의 3주만인 것 같다. 미디어 오늘에 쓰는 기명 칼럼조차 근근히 채워 나가야 할만큼 생산력이 크게 떨어져 있기도 했고, 또 1월 20일 경에 출간할 신간 편집 작업 하느라 또 바쁘기도 했다. 물론 대선 이후 어느 정도 회복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 기간동안 대선에서 이래서 졌네, 저래서 졌네 하는 인상비평이 많기도 했지만, 이미 12월 23일에 밝혔듯이 나는 실제 회귀모형을 세워서 통계 검증해 보기 전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에는 반대하기 때문에 그런 인상비평에 대해 반론할 생각도 가치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대선의 충격이 다 가실만할때 느닷없이 소위 교육평론가 이범의 한겨레 칼럼에서 또 인상비평이 나왔고, 하필이면 그 인상비평 내용의 핵심이 진보진영의 실력부족, 그것도 진보 교육진영의 "실력부족"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고 하는 것이라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고, 심한 모욕감마저 느꼈다. 그래서 3주만에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아서 포스팅을 재개한다. (이범 칼럼 원문 보기)

길지 않은 글이기 때문에 직접 읽어보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겠지만, 독자의 편의를 위해 그의 칼럼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 이범은 안철수 캠프와 이수호 캠프 양측에 모두 참가하면서 진보 교육정책의 한계를 절감했다.
2. 첫째, 차등없는 반값 등록금을 강변하면서 보편복지에 집착하는 모습인데, 최종적으로 무상등록금을 생각하면서 그 중간단계로 저소득층에 대한 차등적 무상등록금 같은 유연한 대책(이게 소득순위 1, 2 분위 계층에겐 오히려 더 유리하고, 이들은 반값 등록금 조차 부담스러워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을 낸 이범 같은 인재의 의견을 묵살했다.
3.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도 대학의 86%가 사립이고, 특히 서울·수도권에 국립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상위 사립대에 입학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 뻔한데 무슨 소용이겠는가?
4. 학생인권만 강조하다 보니 학생의 수업 방해 문제 등, 교권에 대한 정책이 없었다. 이범은 용감하게도 이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