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29.

일베충 초등 교사가 홍어타령을 했으면 문제가 되었을까?


어린이를 '로린이'라고 부른 일베충 초등교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08학번으로 추정되는 이 멍청한 젊은이는 교원자격증에 자기 이름만 가리면서 의기 양양했다. 아랫부분에 대구교육대학 총장 직인을 노출시키고, 다시 상단에는 자격증 일련번호까지 버젓이 나와있는데도 익명성 뒤에 숨었다고 믿고 온갖 더러운 말을 늘어 놓았다. 전교조에 대해 저주를 퍼붓는 젊은 교사의 평균 수준을 크게 깎아내린 셈이다.

그리고는 논란이 되자 임고생들 카페로 추정되는 곳에 다음과 같은 사과글을 게재하였다. 그런데 이 자는 정작 일베에서는 “로린이라는 말이 그렇게 심각한 성적 비하 발언이냐?”라며 “일베 죽이기”라고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정신분열증 환자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일까?

그의 이런 2중 플레이에 많은 네티즌들이 당황하고 분노하고 있지만, 이른바 사과글이란 것을 보면, 이건 절대 교사가 쓴 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당사자가 아니거나 거짓말을 함으로써 2중 조롱을 한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학교 학생처에서 연락이 왔다."라는 대목과 "징계조치가 내려졌다."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의 99.9%는 공립이다. 공립학교는 그 설립과 운영의 주체가 광역 지자체이며, 그 장은 교육감이다. 그런데 교사의 신분은 국가직 공무원으로 교육부 장관이 임용권자다.  공립학교 교사의 목(?)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 학교와 교장은 교사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기관이다. 그래서 학교에는 교사를 인사조치 할 수 있는 기구 자체가 설립되어 있지 않다. 교사의 징계는 시도교육감의 재청에 의해 교육부 장관이 처리하게 되어있다. 그것도 2차에 걸친 소명기간을 주고, 재의를 하기 때문에 징계가 확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위의 사과글에는 "학교 학생처"라는 엉뚱한 기구가 나오고 있다. 이 당사자는 2012년에 교대를 졸업한 사람이다. 그러니 교대 학생처에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 그리고 징계 조치가 내려졌다고 하지만, 공립학교 교사에게 이렇게 신속한 징계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유신시대가 아니고서야 있을수가 없다. 어쩌면 대구는 아직도 유신시대일지 모르겠지만. 

그러니 이 사과글은 매우 의심스럽다. 반면 "일베 죽이기"라며 반발하는 글은 오히려 일관성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이 일베교사가 로리타, 성매매 이런 말은 하지 않고, 홍어타령, 종북타령, 전교조타령만 했으면 과연 지금처럼 몰매를 맞고 있을까? 

바로 여기에 불편한 진실이 있다. 장담하건대 아무런 문제 없었을 것이다. 문제를 삼으면 오히려 좌좀들이 어쩌구 하며 반발했을 것이며, 교육계에서 좌좀들을 몰아내는 젊은 애국교사 따위 소리나 들었을 것이다. 조중동도 소신있는 교사를 좌파가 조리 돌림한다고 엉뚱한 쉴드를 쳤을 것이다. 어쩌면 종편에서 TV과외 한 꼭지 맡아서 부를 걸머쥐었을지도 모른다(명예는 절대 아니고).

저 철없는 젊은이의 사과글에서도 이미 그런 인식이 묻어 나온다. 사과글에는 "일베인의 용어를 쓴 것"이며 "나는 쓰레기가 아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둘을 조합하면 "일베인은 쓰레기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즉, 이 초등교사인지 예비교사인지는 일베 자체는 문제가 없고, 다만 로리타 발언이 들킨것이 당황스럽다고 여길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웬 여고 교사라는 자가 학교 명함을 들이 밀고서 전교조 죽인다 어쩐다 망발을 하고 있다. 초등보다는 확실히 영악해서 제법 가렸지만 여고 중 이름 뒷 글자가 ung(동명, 계성, 상명,진명,보성 등등)으로 끝나고 학교마크가 삼각형인 여고는 전국에 얼마 없을 것이고, 지 말대로 임고 합격한 것이라면, 공립학교일테니, 전국에 공립여자고등학교는 정말 얼마 없다. 이 자의 신상이 털리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 헛똑똑이 역시 여고생이 냄새가 나느니 어쩌느니 하는 성적 비하 발언이 없었으면 아마 무탈하게 일베충 계속 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 따져보아야 한다. 어린이를 성적대상으로 보는 것은 병이다. 이런 사람은 교사는 물론 일반인으로서도 요주의 대상이다. 말하자면 인간이하의 존재다. 여고생들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사람 역시 인간이하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인간이하의 존재가 교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각한 반발에 부딪쳤던 것이다.

그런데 멀쩡한 합법조직인 전교조에 대한 비이성적인 적대감과 공격성을 표출하고, 뿌리없는 극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매카시적 광기를 드러내는 것, 그리고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 이는 교사로서는 도저히 용납될수 없는 결격사유다. 즉 교사이하의 존재인 것이다. 설사 이들이 성적 발언이나 망동을 하나도 하지 않고, 건전하고 착실한 남친, 남편 노릇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저 편향된 정치적 성향과 공격성, 혐오만으로도 수백번 해임되어 마땅한 것이다. 일베들이 숭상할 미국에서는 다른 어떤 범죄보다도 혐오범죄를 중하게 처벌한다. 

일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성, 호남, 좌파, 전교조에 대한 혐오에 가득차서 각종 사이버 테러를 감행한다는 것이다. 로리타 여부를 떠나서 이는 헌법을 뒤흔드는 행위이다. 철없는 고등학생이야 그렇다 치고, 교사라면 일베의 회원이고 정기적으로 열람한다는 것만으로도 사정청취를 들어야 한다. 혐오범죄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베 교사 사건의 본질은 바로 이 점이다. 그들의 변태스러운 발언이 아니라 일베 활동, 그 자체인 것이다.

혹시 여기 달려들어 욕질할 일베선생들 있으면 병신같이 숨어서 이죽대지 말고 나 처럼 소속학교 이름 다 밝히고 당당하게 소리쳐라. 그게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사의 기본 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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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20.

비정규직 교사 -학교의 치부

이 글은 4년 전에, 저의 블로그가 무명이던 시절에 썼던 것입니다. 이제 방문자가 꽤 많아진 지금, 묻어두기 아까워서 다시 발굴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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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두 종류의 교사가 있다. 일반 기업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듯, 학교에는 정규직 교사와 비정규직 교사가 있다. 비정규직 교사 안에서도 여러 구분이 있다. 고용 기간이 한정된 것 외에는 정규직 교사에 준하는 보수를 적용받는 기간제교사가 있고, 영어 수학 등 수준별 수업을 담당하는 수준별 강사가 있고, 인턴 교사가 있고, 영어회화 전담 강사가 있고, 그 외에 상담사, 사서 등이 있다.

원래 학교의 비정규직 교사는  교사가 일정기간 이상의 휴직, 휴가를 냈을 경우, 기타 유고시에 그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 근무하는 임시교사 뿐이었다.  그런데 1999년 명예퇴직 폭증(김대중과 이해찬의 업적이다)으로 인한 초등교사 부족사태를 계기로 임시교사라는 명칭이 기간제교사로 바뀌면서, "임시"가 아닌 "정시"에도 기간제 교사를 채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는 당시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어쩔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교원수급이 안정되고, 초등교사조차 임용고시 경쟁률이 1:2를 넘어서게 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기간제 교사 제도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교사라는 위계서열상 상당히 고급(?)스러운 노동자들에게도 어김없이 정규직/비정규직 내부분할이 시작되었다.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 이를 악용해서 지역에 따라서는 신규채용 교사의 무려 84%가 기간제 교사인 곳도 있다. 즉 정규직 교사가 퇴임한 자리를 특별한 이유 없이 기간제 교사로 충원하는 것이다. 심지어 지역에 따라서는 공립학교까지 이런 일을 자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신자유주의 정책의 기조상 공무원 정원을 감축하려 할 것이고, 따라서 신규교사 채용 규모도 축소되어, 그 차이는 고스란히 기간제 교사로 충원될 것이다.

비정규직 교사의 문제는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와 흡사하다. 우선 이들은 같은 노동을 하고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 기간제교사의 봉급은 최고 14호봉이다. 즉 5년 이상의 경력은 그대로 삭감되는 것이다. 이는 2006년에 인권위의 지적을 받은 사항이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임시교사이던 시절에는 "임시교사는 중요한 업무를 맡기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어서, 행정업무나 담임업무에서 어느정도 배제되었지만, 기간제교사가 되면서 차별없이 모든 업무를 동등하게 나누어서 맡게 되었다. 오히려 힘든 일을 떠 맡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은행이나 다른 직장에 비해서는 차이가 크지 않지만 동일 노동을 하고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비정규 교사는 교원노조에 가입할수도 없다. 교원노조법에 의해 정규직 교사만 전교조 조합원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전교조와 관련한 법규에는 정규직/기간제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 그리고 특별한 언급이 없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정규직 노동조합이 되고 만 것이다.

또 비정규 교사는 각종 연수에서도 배제된다. 각 시도 교원연수원이 중앙공무원교육원인가 뭔가의 관할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사립학교 교원에게만 연수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나쁜 것은 고용이 불안정한데다가 교장에게 고용에 대한 전권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이들 비정규직 교사들이 교장, 교감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해서 가학적 쾌감을 느끼기 위한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계약 기간을 주로 1년 단위로 하기 때문에, 또 계약할때마다 호봉을 다시 획정하기 때문에 교장, 교감에게 밉보이면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없는 이들은 변변히 저항하기도 어렵다. 계약기간이 1년보다 긴 비정규직 교사 자리를 놓고 뇌물이 오간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으며, 공공연히 선물을 요구하는 교장이 아직도 있다.

사실 정규직 교사의 경우, 특히 공립학교의 경우 승진 욕심이 없는 교사라면 교장,교감이 뭘 어찌해볼 여지가 별로 없다. 교장, 교감은 이런 상황이 싫다. 기껏 온 평생을 발발기어 교감, 교장이 되었는데, 교사들에게 큰소리도 제대로 못쳐서야 지나간 청춘이 안타깝지 않겠는가? 그래서 비정규직 교사들이 그들의 밥이된다. 어디 그 뿐이랴? 추석이나 설에 다른 교사들은 그러려나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비정규직 교사들은 양주가 되었든, 갈비가 되었든 가져다 바쳐야 한다. 심한 교장은 현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어느 학교에서는 선물이 중복되지 않도록 비정규 교사들이 미리 리스트를 맞춰 보기까지 한다.

학교의 그늘, 전교조가 애써 외면하는 곳, 그 사각에서 비정규직 교사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신의 운명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바라보면서, 온갖 수모와 구박을 감내하며, 다른 교사들과 똑 같은 수업과 업무를 담당하면서, 더 적은 돈을 받고 있다. 그들에게 학생들에 대한 헌신과 끊임없는 자기 연찬을 기대할수 있을까? 그 피해는 과연 누구에게 갈까? 서로 경쟁해서 승리하지 못하면 목이 달아나는 상황으로 만들어 놓으면, 과연 참신한 혁신을 할까, 아니면 서로서로 실수하지 않기 경쟁으로 점점 퇴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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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10.

아이언 맨 3에 대한 발비평문을 보고 절감한 진보의 발달지체

아이언맨3를 보았다. 보기 전에 이 영화를 3세계를 선한 미국이 신무기 기술로 보호한다는 철저한 미국중심주의가 관철된 기분나쁜 영화라는 비평을 보았기에 볼까 말까 망설였다.(비평문 원문링크). 하지만 오락은 오락일뿐이란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은 이 비평은 태어나서 영화비평이라고 본 글 중 가장 엉터리라는 것이며, 진보를 자처하는 그 교수(하여간 교수가 문제다)의 그 안이하고 무지한 상황이 우리나라 진보진영(그런게 있다면)의 발달지체의 한 징표처럼 보여서 몹시 마음이 불편했다는 것이다.

그 비평문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간략히 소개한 뒤 나의 반박을 붙여 놓겠다.

1. 아이언맨 3는 슈퍼 히어로 영화중 가장 위험하다. 아이언맨 1을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영화”라고 비판 한 바 있는데, 야만적인 제3세계를 선인(善人)인 미국인이 보호하고, 제3세계의 폭력과 독재도 미국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그 오만한 이데올로기, 미국 중심의 무기 개발 논리가 뿌리 깊게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 이 문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아이언맨 3는 가장 위험하다. 왜냐하면 아이언맨 1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게 말이 되나? 사실 아이언맨 1은 나도 보면서 살짝 불쾌감을 느낀부분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언맨 3과 아이언맨 1은 다른 영화다. 아이언맨 1을 비판할때 썼던 문구를 재활용하면서 아이언맨 3을 비판하는 그 지적 해이는 도대체 곱게 봐 넘기기가 어렵다.

2.  <아이언맨> 시리즈도 펜타곤의 시청각특별위원회와의 협업으로 만들었다. 아주 단순하게 보면, 이 영화는 신무기 개발을 옹호하는 영화이다.... 악당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비밀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논리가 이렇게 포장된 것일 뿐이다.

=>> 이 분 도대체 영화를 보고 쓴 글인지 의심된다. 안보고 썼다면 도덕적으로 교수 자격이 없고, 보고 썼다면 지적으로 교수 자격이 없다. 오히려 이 영화는 신무기 집착증에 대해 성찰적이다. 철저한 오락영화에서 이 정도 성찰도 담아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은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해 신무기를 개발했지만, 도리어 그 신무기 때문에 에어포스 원이 폭파당하고 대통령이 화형대에 매달린다.
최신형 수트인 '아이언 패트리어트'를 보며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며 활짝 웃으며 에어포스 원으로 맞아들이는 장면은 역설의 진수를 보여준다. 더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여기서 멈추겠다. 하여튼 세상 만사에서 "반미자주 투쟁"의 코드를 찾아내는 지독하게 왜곡된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닌 한 이 영화를 몇 번을 봐도 "신무기 개발이 해법이다."류의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한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신무기, 힘에 의존하려는 자신들에게 있다는 메시지가 느껴질 뿐이다.  

테러리스트를 찾아 중동지역을 헤매고 다니면서 멀쩡한 농가나 공장에 요란하게 쳐들어갔다가 머쓱해 하는 로드중령의 모습 역시 악의 축을 찾아 외부에 힘을 과시했던 미국의 그 동안의 모습에 대한 통렬한 조롱이다. 정작 테러리스트는 미국의 부유한 지역인 플로리다에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똘추 과학자였던 그 테러리스트에게 힘을 실어주고 키워준 것은 펜타곤과 부통령이었으며, 바로 신무기 개발에 집착하는 그 동안의 정책이 그런 괴물을 길러냈던 것이다.


3. <아이언맨3>의 악당은 참 흥미롭다. 악당 만다린의 의상과 그의 주변에 있는 기린(麒麟:중국 신화 중의 동물)이 모두 중국적인 것이다. 중동과 중국에 대한 미국의 공포가 이런 형식으로 재현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 악당 만다린이 오사마 빈라덴이 중국풍 옷 입은 모습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히 대사에 나온다. "미국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 위해 너희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모습으로 연출했다."라고. 즉 이 영화의 악당은 중국과 중동을 이유없이 무서워하는 미국인들을 이용하여 연출된 캐릭터다. 실제로는 중국, 중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따라서 만다린은 중국, 중동에 대한 미국의 공포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근거없는 그 공포를 희화화 하고, 그 근거없는 공포때문에 엉뚱한 적을 설정하고, 결국 내부의 적을 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4.  <아이언맨3>가 지금 우리에게 위험한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먼저 한국에서 열광적으로 <아이언맨3>를 관람하고 있을 때 남북은 핵 전쟁의 위험이 빠졌고, 동시에 미국의 무기를 또다시 수입하는 상황이 마치 정말 영화처럼 재현되었다. 

=>> 이쯤 되면 **도 풍년이다. 이 영화 어디에 무기를 또다시 수입하는 상황이 나오는가? 스포일러 때문에 이쯤해서 덮지만 이 영화의 결론은 정 반대로 달려간다. 심지어 극도로 강력한 악당(슈트를 입고도 당해내지 못하던 악당)마저 자기가 개발한 기술에 의해 처참하게 죽는다.  누구든 무기를 개발하고 외부의 적을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자는 그런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최신무기에 의해 에어포스원이 폭파되고 무수한 백악관 스탭들이 죽음을 맞이하듯. 주인공 역시 끝없는 불안증에 시달린다. 그 불안증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그 불안증을 제거하기 위해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했는가? 이걸 본다면 이 영화가 신무기 만만세, 미국 만만세라는 따위의 말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5. 아시아에 대한 미국인의 이미지는 영화에서 나온다. 우리가 생각하는 중동의 이미지도 미국 영화에서 나왔을 뿐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에게 한국인은 중동인과 얼마나 다른 존재일까? 비슷한 유색인종 아닐까? 상황이 이럼에도 왜 우리는 이토록 <아이언맨>에 열광하는가? 

=>>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이 영화에서 대통령을 구하고 미국을 구한 영웅의 피부 색깔이나 보고 말하자. 새까맣지 아니한가? 유색인종 운운이라니 얼마나 난데없나? 중동인인지 중국인인지 헷갈리던 악당 역시 다만 그렇게 분장했을 뿐이다. 가장 사악한 악당들은 금발머리 휘날리는 백인들이다. 적어도 영화 교수라면 꼼꼼하게 보고 좀 평론하자. 


1990년대부터 이른바 진보적인 영화 평론가들의 비평 코드는 늘 같았다. 이들의 수백편의 평론문을 다음 몇줄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다. 
" 헐리우드 영화는 일단 까고 본다. 헐리우드 영화는 상업주의 혹은 미국중심주의 두 가지 코드 중 어느 하나에 몰아놓고 깐다. 프랑스 영화는 예술영화이며, 일본 영화는 성찰적이다."
여기서 벗어나는 평론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혹 벗어나면 진정성을 의심받고 수꼴로 몰릴 분위기였다. 문제는 수십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이걸 평론이라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영화가 플롯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으며, 캐릭터를 어떻게 구축하고, 액션 장면을 어떻게 구성하며, 배우는 어떻게 연기하고 있는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보기 어렵다. 물론 영화 속에서 교묘한 정치코드를 찾아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정치평론이 아니라 영화평론인 다음에야 어느 것이 우선시되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헐리우드 영화를 아무리 비하해도 그들이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미국의 지배전략 때문이 아니라 뛰어난 플롯 구사능력과 연출능력 때문이다. 배울건 배워야 한다.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않고서, 다만 선입관과 반감에 기반한 평론을 쓴다면 백편을 써도 발전이 없을 것이다. 늘 80년대의 운동권 사투리만 상투적으로 내뱉는 중증 발달지체에 머무를 뿐.

<추신>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나 역시 "미국 만만세"에 동조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신무기의 위력 때문이 아니라, 영화속에서 에어포스원이 폭파되고 대통령이 대롱대롱 매달리는 장면을 거침없이 만들수 있는 그 자유 때문이다. 우리에겐 너무도 요원한 경지다.

2013. 5. 4.

교육의 눈으로 바라본 노동절 단상: 노동이 없는 교육, 교육이 없는 노동

(이글은 원래 칼럼 기고문이나, 데스크를 통과하지 못한듯 하여 게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노동절이란 계기와 관련된 글이기에 더 늦게 올라가야 의미가 없을듯하여 블로그에 먼저 올립니다.)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노동절의 공식 명칭은 ‘근로자의 날’이다. 이 근로자라는 말을 그대로 풀어보면 ‘부지런한 노동자의 날’이 된다. 괴이한 노릇이다. 부지런하지 않은 노동자는 해당 사항이 없는 날이 되는 것이다. 이 괴이한 단어에는 노동에 대한 뿌리깊은 천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노동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으나, 노동을 ‘부지런하게’ 하면, 그 ‘부지런함’ 만큼은 평가해 줄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근심’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이 ‘부지런함’은 ‘고달프고 괴로움’의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그러니 근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저 ‘부지런함’이 아니라 ‘고달프고 괴로운 것을 꾹 참는 부지런함’ 까지 요구된다. 꾹 참는 부지런함으로 칭찬받는 미덕은 노예의 미덕이지 결코 주인의 미덕이 아니다. 이래저래 근로자라는 말은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의미의 총합이다.

문제는 이 노동 천시의 풍토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그릇된 인식이 바뀌려면 어린 시절부터 건전한 노동관과 의식을 익혀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은 노동 실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노동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노동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노동은 사회과의 ‘근로자와 기업가의 자세’라는 소단원에서 잠깐 등장할 뿐이다. 반면 가장 최근에 개정된 교육과정에서는 재테크가 당당하게 대단원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말 그대로 노동 없는 교육인 셈이다.

이렇게 노동 없이 재테크만 있는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배울까? 그 과정과 원천이야 뭐가 되었건 이런 저런 재주로 돈을 벌기만 하고 불리기만 하면 된다고 배울 수밖에 없다. 기업의 이윤도 가계의 소득도 노동을 원천으로 하고, 학생들의 대부분이 졸업하면 어떤 형태로든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데도, 우리나라 교육은 여기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는다. 그냥 돈은 거기 있으며, 재테크로 잘 굴리면 되는 것이며, 이걸 경제랍시고 배운다. 이렇게 배운 아이들이니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어떤 일, 어떤 가치를 말하는 대신 “돈 많이 버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 없는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졸업하면 자신들이 노동을 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면서 노동 일선에 뛰어들게 된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비정규 시간제 노동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현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전혀 배우지 않았다. 근로계약이 무엇인지, 근로기준법이 무엇인지, 노동 3권이 무엇인지 배우지 않았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노동시장에 던져진 젊은이들은 냉혹한 자본의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 되어 이리저리 내몰리며 한 무더기의 노동으로 소진되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배우지 못한 탓에 이들은 이 고통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따져보지 못하며, 그것을 오롯이 자기 탓으로 돌린다. 이들은 노동이 가치 생산의 원천임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 없이 돈 벌수 있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이를 이용하여 온갖 편법 다단계 업체가 기승을 부린다. 온 사회가 젊은이들을 부려먹으려, 다시 그 대가로 쥐어 준 쥐꼬리만한 임금을 털어먹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우리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위로도, 혹은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 따위의 판타지도 아니다.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노동을 배우는 것이며, 노동의 의미와 노동의 권리를 배우는 것이며, 이러한 권리를 찾기 위해 어떤 절차와 행동이 필요한지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어디에서도 이를 가르치지 않는다. 노동 없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육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에 노동이 없다면, 우리나라 노동에는 교육이 없다. 이것 역시 심각한 문제다. 노동은 사람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획득하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이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계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 듀이, 셀레스탱 프레네 같은 위대한 교육학자들은 일과 놀이와 배움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했다. 사람은 일하면서 배우고 놀이하면서 배운다. 그리고 이러한 배움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이 확장되는 경험이 바로 행복이다.

그런데 기업이 노동자들을 단기간만 부리다가 언제든지 내칠 수 있는 풍토에서, 또 그렇게 취업과 해고를 반복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풍토에서 노동은 배움의 계기가 되지 못한다. 노동이 배움의 계기가 되려면 비슷한 분야에서 상당히 긴 시간동안 꾸준히 일하면서 자신을 연마시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년을 일해도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한낱 최저임금 대상자로만 취급받는 상황에서 꾸준히 한 분야를 정진하며 전문가로 성장해 간다는 것은 차라리 사치에 가깝다.

기업도 교육에 돈을 쓰지 않는다. 기업은 직원들을 단기간 부리다가 언제든지 버릴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교육비를 투자하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나라 노동에는 교육이 없으며, 노동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없으며, 따라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노동을 통해 행복해질 기회가 없다.

노동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행위이며, 또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될 행위이다. 교육은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행위이며, 노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행위이다. 교육은 마땅히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노동의 가치를 가르치고, 노동에 필요한 여러 가지 준비를 시켜야 한다. 마찬가지로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노동은 마땅히 그 속에서 노동자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교육이 노동을 준비하고, 노동이 교육의 계기를 마련할 때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행복한 삶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행복 교육이 별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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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1.

교사들의 대화 소재

어지러운 교무실(교무실에 대해 쓴 이전 포스팅 참조)가운데 몇몇 교사들이 모여있다. 이들이 의자들을 모아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걸 어찌 다 알겠는가? 하지만 절대 이들의 대화소재가 아닐 것 같은것은 골라볼수 있다. 아마 다음과 같은 것들은 절대 교사들의 대화소재가 아닐 것이다.

1. 전공분야의 최신 이론들에 대한 대화(예: 과학교사들이 과학이야기 하거나, 사회교사가 사회학 이야기 하는 경우)
2. 교육학이나 교육철학에 대한 대화(교수법이라거나 교육관에 대한 이론적이고 심각하고 진지한 대화)
3. 각종 고전이나 인문학과 관련된 대화(예컨대 역사라거나, 혹은 예술작품이나 비평에 대한 이야기)
4. 학생, 청소년의 권리 증진과 관련된 대화


이건 내가 정말 장담한다. 교사들끼리 모였을때 위의 네가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문제는 위의 네가지는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흔히 하기를 기대받는 그런 이야기라는 것이다. 즉 교사들은 절대 지식인스러운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럼 대체 교사들은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장담은 못하지만 다음 네가지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1. 전문적이지 않은 가십 수준의 학생 이야기(몇반의 아무개가 이렇다더라, 우리반 아무개네 집이 어떻다더라, 아무개가 참 수업태도가 나빠지더라 등등)
2. 연예가 중계성 대화
3. 사교육에 관한 대화(어디에 학원이 좋아서 우리 애도 보내야지. 영어학원은 어디가 좋아 등등)
4. 자기 자식 자랑

한 마디로 그냥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이 자기들 거실에 모여 앉아서 할만한 이야기들이 교무실에서도 여전히 이야기되고 있다. 이들이 교사다. 이들이 "교직은 전문직이기 때문에 죽어도 학생, 학부모로부터 평가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교사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앞서 네가지의 소재로 이야기를 하려 하면 "잘난척 한다"고 핀잔을 듣거나 "아, 머리아프다."소리 듣기 일쑤다. 소위 선진국 같으면 대졸자들의 통상 교양 수준에서 이야기를 해도 소위 전문직인 한국 교사들은 "그렇게 수준높은 이야기"취급을 한다.

도대체 모여 앉아서 연예가 중계나 자기 자식 이야기나 하는 교사들, 정작 아이들 가르칠 내용에 대해서는 중학교 교과서 수준밖에 모르는, 그리고 그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교사들을 보면 앞날이 깜깜하다. 이들에게 퍼들어가는 월급들을 생각하면 내가 학부모라도 퇴출소리가 절로나온다. 퇴출은 변태짓을 하거나 폭력적인 교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교육, 자식자랑, 연예가중계가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사들 역시, 아니 그런 교사들이야말로 퇴출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시장화 저지 등의 나름 이유가 있기는 했겠지만, 교원평가 등등을 악착같이 반대해서 결과적으로 이런 교사들의 든든한 방패막이로 전락해버린 전교조를 보면, 그리고 저 연예가 중계 따위 대화판에 전교조 조합원들도 어김없이 끼어있고, 이들을 비조합원과 전혀 구별할수 없게된 모습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히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

전교조의 회생은 이런 조합원들에게 "그런 무식한 이야기나 하면서 교무실을 더럽히고 있느냐"라고 일침을 가할수 있는 그런 냉혹하고 비판적이고 비인간적인 조합원들이 좀 늘어나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교조는 너무 인간미가 넘쳐 차마 그 말들을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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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