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9.

대통령 지시사항만 반영하고, 교육정상화와 개혁은 반영한 듯 보이고 만 대입제도 개선안


‘학생․학부모 부담 완화와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시안’이 발표되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이번 시안의 핵심 골자를 수시전형은 학생부와 논술 및 실기, 정시 전형은 학생부와 수능으로 입시를 단순화하고, 국영수에 적용하던 A/B유형을 폐지하고, 한국사를 필수교과로 추가하고, 문과 이과 구별을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 등으로 보도하였다. (관련기사: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30828033505801).

특히 주요 일간지는 문이과 통합문제를 주요 논제로 중요하게 다루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272357095&code=940401). 

발표 당일만 하더라도 문이과 통합과 관련하여 많은 논쟁이 오가다가 문이과 구별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과, 이과 학생들이 다른 계열 선택과목도 하나를 선택하는 교차선택형쪽으로 결정되지 않겠느냐 하는 예측이 주를 이루었다. 이 교차선택형만 하더라도 수학의 출제범위가 축소되고, 그 대신 과탐이나 사탐 과목을 하나 추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입시에서 수학의 비중이 지나치게 큰 문제를 어느정도 완화시킬 수 있다. 이는 그 동안 공교육을 왜곡시키고 사교육이 번창하게 된 근본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처럼 교육부의 이 시안은 자세히 살펴보면 살펴 볼수록 용두사미임이 밝혀지고 있다. 수시모집을 학생부, 논술, 실기로 단순화 했다면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얼른 보면 인문, 자연계는 논술로 승부보고, 예체능계는 실기로 승부를 보는 입시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본문뿐이다. 보도자료 구석에는 작은 글씨로 “실기 위주 전형에는 ‘특기자 전형’ 포함”이라고 주석이 붙어있다.

그런데, 특기자 젼형은 그 동안 전형방법이 모두 몇 개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입시를 복잡하게 만든 주범이다. 그런데 이 특기자 전형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실기전형의 이름 아래 슬그머니 숨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변형된 본고사로 악용되어 온 면접과 적성검사에 대한 대책은 초라하기까지 하다. 그 동안 일부 대학은 면접때 구술시험을 치르는 등 사실상 본고사를 시행하고 있다고 지탄을 받아왔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대책이 “문제풀이식의 구술형 면접과 적성고사는 자율적으로 지양”이다. 우리나라 대입 역사상 학생들을 줄세울수 있는 방법을 대학이 자율적으로 지양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사실상 포기 선언이다. 결국 어차피 수시 합격자들이 특별히 부담스러워 하지도 않았던 수능 최저기준을 폐지 외에 정시모집에서 달라진 것은 거의 없는 셈이다.

교육 전문가와 언론사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문이과 통합방안도 교육부가 앞장서서 내용 없는 것으로 바꾸고 있다. 당초 보도자료에는 세가지 시안이 나와있는데, 1안은 A/B형 출제를 폐지하는 것과 한국사가 추가되는 것 외에는 현행 방식과 동일하다. 2안은 문이과 학생들이 사탐, 과탐 과목을 계열에 따라 2개, 1개씩 교차 선택하는 것이며, 3안은 문이과 구별 없이 모든 수험생이 국, 영, 수, 사, 과, 한국사 여섯 과목을 같은 문제로 응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세 시안을 놓고 여론을 수렴하여 10월 말에 최종안을 확정짓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1안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고 말았다. 그러면서 문이과 통합을 공론화 한 것에 만족하는 모습이다(관련 기사: http://news.mt.co.kr/mtview.php?no=2013082713495175788). 결국 문이과 통합, 수능에서 영어/수학 비중 축소와 탐구과목의 확대 등 교육계의 오랜 숙원은 물건너 갔다. 장관이 이렇게 1번안을 우선 검토한다고 밝힌 이상, 문이과 통합이라는 50년만의 변화에 부담을 느끼는 관료들이 2번이나 3번안에 힘을 실어줄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번에 발표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시안에서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라고는 하나 밖에 남지 않는데, 그건 바로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것이다. 오히려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기 위해 이 거창하지만 결국 바뀐 거 없는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시안을 발표한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마저 가능한 상황이다. 실제로 교육부 관계자들은 한국사를 별도의 과목으로 지정함으로써 한국사 필수교과지정과 여타 사회교과 기득권 유지라는 두 마리 새를 다 잡았다는 안도감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교육부는 대통령 지시사항을 교육적 고려, 100년지 대계보다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것은 말로 통치권자의 말 한마디에 교육이 우왕좌왕하는 북한 같은 나라에서나 볼수 있는 구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교육부는 한국사 필수교과화가 이번 시안의 주요 목적으로 보이지 않기에 충분한 개혁을 선보여야 한다.

문이과 완전 통합이 어려우면 문이과 모두 과탐이나 사탐과목을 응시하도록 해야 하며, 이를 통해 늘어날 학습 부담은 국영수 교과의 간소화 평이화를 통해 감축해야 한다. 처음부터 사실상 달라질게 없는 1번안을 최우선 고려중이다 같은 말을 더 이상 흘리지 말아야 한다. 또한 온갖 편법의 온상이 되고 있는 특기전형을 실기전형에 감추어 두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폐지해야 하며, 본고사형 구술과 논술을 대학 자율로 지양하도록 맡길 것이 아니라 완전히 금지시켜야 한다. 이 정도쯤 되면 한국사 수능 필수교과화 정도는 대통령 지시사항도 일부 반영한 정도로 보일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육부로 돌아오고 나서 처음 발표된 큰 정책이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부디 이것이 100년지 대계를 생각한 결과이지, 대통령이나 특정 정당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교육부 스스로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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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8.

이석기 사건의 향배, 48시간 뒤에 다시 보고, 그 전에는 냉정하자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실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 세명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에 진보진영이 술렁이고 있다. 일부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일부는 비분강개하고 있다. 이들에게 영장이 발부된 이유는 1) 형법의 내란음모혐의와 2)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 혐의다. 사회교사로서 이건 그냥 넘어갈수 없는 일이다. 역사의 퇴행 어쩌구 그런 의미가 아니다. 경제나 법 관련 쟁점만 나오면 국민이 뭐 알겠어, 이러면서 분탕질 치는 것을 이제는 막아야 하겠다는 의미다. 알게 하자. 경제와 법을 알게 하자.

그러니 지금은 좀 더 차분하게 사태를 바라보면서 관련된 사실과 법만 검토해 보자. 일단 이들의 혐의가 두 가지임을 유념하자. 공안관련 사건에서 얘들의 수법이 원래 그렇다. 꼭 혐의를 두개 세개를 넣는다. 이 중  하나는 대외적으로 언론플레이 하기 위해서 걸고, 다른 하나는 공소유지를 위해, 즉 잡아 넣기 위해서 건다. 어느게 선전용이고 어느게 잡아넣는 용인지는 척 보면 답이 나온다. 1)이 페이크다. 왜 그럴까?

국정원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5월 서울 모처에서 당원 13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비밀회합을 했고 경기남부지역의 통신시설과 유류시설 파괴를 모의했다'고 한다. 지금 1)로 선전하고 있다. 찬양, 고무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두고 보라. 만약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면 찬양, 고무로 발부된다. 그러나 언론은 "1) 혐의는 기각 2)혐의로는 발부 이렇게 말하지 않고, 그냥 "구속영장 발부" 이렇게 말할 것이다. 

1)이 기각될 가능성이 큰 이유는 아직 더 큰 증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그렇다면 깨끗하게 인정하고 이석기 간첩 김정은 개새끼를 부르겠다. 아니라면 그냥 김정은 개새끼만 부르겠다), 이석기와 그 일당들이 내란을 도모할 실력이 없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국정원 주장에 따르면 이들이 모여서 통신시설, 유류시설 파괴를 모의했다고 하는데, 이들이 통신시설, 유류시설을 파괴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거니와,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내란음모라고 보기도 어렵다.

 형법에서 내란이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형법 87조)" 하는 것이며, 내란 예비, 음모란 이를 준비하거나 계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신시설 파괴, 유류시설 파괴 음모가 과연 국토 참절이나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하는 폭동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 되겠다. 우선 말이 더럽게 어렵기 때문에 용어부터 정리하자.

국토의 참절: 이건 사전적 의미로는 멋대로 국토의 일부에 대한민국 주권을 거부하는 행위, 그러니까 국토 일부를 땅까먹기 해서 "내 땅" 하는 행위다.
국헌의 문란: 이건 헌법이나 법률에 정한 절차가 아닌 방법으로 헌법이나 법률의 기능을 전복시키거나,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시키거나 기능을 중단시키는 행위, 한마디로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과 박근혜 대통령이 오빠라고 부르던 6억 독지가께서 하신 행위다.

그렇다면 경기 남부에서 통신시설을 파괴하고 유류시설을 폭파하는 것이 이 국토의 참절과 국헌의 문란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경기남부의 통신시설을 파괴해서 독립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지역이 어딘지 참으로 궁금하다. 또 경기남부의 통신시설이나 유류시설을 파괴함으로써 전복되거나 기능이 마비될 헌법기관이 어딜지도 참으로 궁금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은 문란시키는데 필요한 물리력은 김정은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물며 김정은의 멀리 떨어진 추종자들이 가능할까?

물론 이런 시나리오는 가능하다. 김정은이 남침을 할 경우 평택 근방의 미군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통신, 유류 시설을 파괴한다. 그럼 이 경우에는 김정은이 내란의 수괴가 되고 이석기 등은 내란의 부화뇌동자나 종사자가 된다. 잠수함 타고 왔다갔다 한 정황 잡았다는 말이 솔솔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이쪽으로 시나리오가 맞춰질 가능성도 있다. 두고 보자. 김정은이 내린 지령과 김정은의 작전계획 같은 것 까지 들이 댈수 있는지. 그런데 지금까지 본 국정원의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김정은의 직접 지령이나 계획이 없는 한, 이석기 일당이 지들끼리 아무리 뭘 터뜨리고 부수자고 음모를 한다 하더라도 그건 자기들끼리 판타지이거나 아니면 테러 예비음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경우 적용할 수 있는 법은 " 제367조(공익건조물파괴) 공익에 공하는 건조물을 파괴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인데, 이 법은 예비, 음모에 대한 처벌은 없고, 다만 미수에 그쳤을 경우에만 처벌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정리하자. 김정은의 작게, 지령을 국정원이 확보했는가? 그래서 거기에 따라 소위 파괴 음모를 계획했다고 입증했는가? 그럼 내란이다. (외환이 아닌 이유는 헌법상 북한도 대한민국 영토이기 때문에 김정은이 현재 국토를 참절한 상황으로 보고 있음). 압수수색을 통해 건졌을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건졌다면 경기동부는 참 할 말없게 만드는 허술한 조직이니 일망타진되어 마땅하다. 그런데 설사 있다 해도 아마 몸싸움 하고 있는 동안 다 갈아버렸을 것이다.  

그럼 남는 건 뭘까? 압수수색을 통해 북한 관련 문건들 잔뜩 확보한 다음 이적표현물 소지, 잠수함 타고 왔다갔다 했으니 잠입, 그리고 고무찬양동조, 이 정도 남는다. 이것도 충분히 잡아 넣을 수 있는 건수들이지만, 국정원의 불법선거개입을 덮을 정도의 건은 되지 않는다. 내란 정도 되어야 건이 된다. 간첩 정도로도 안된다. 대규모 고정 간첩단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건 한 두어달 나팔 불다가 끝날 사건이다.

담당 검사와 미디어오늘의 인터뷰 내용을 곰곰히 따져 보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수원지방검찰청의 차경환 2차장검사는 28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내란음모 혐의 적용에 대해 "그런 내용으로 해서 국정원의 압수수색 영장이 신청된 것은 맞으며, (우리가) 청구 단계에서 검토할 때 (혐의가) 소명됐다고 판단하고, 법원에서도 같은 판단을 해서 발부까지 된 것 아니겠느냐"며 "그런 혐의를 적용한 것이 타당하다고 우리도 판단해 청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차경환 2차장검사는 그러나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유사시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고 말했다는 녹취록을 국정원이 확보했으며, 국가 주요시설에 대한 타격도 언급했다는 사실을 국정원이 파악했다는 설명에 대해 "그것은 우리가 확인한 내용이 전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검사분은 앞에서는 혐의가 소명 되었으니 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이 받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국정원이 파악했다는 총기소지 지령, 주요시설 타격 지령 등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한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미묘한 워딩은 형사소송법에서 체포영장이나 압수수색영장의 청구기준이 '사실'이 아니라 '의심' 이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검사는 판사가 아니다. 판사는 '사실'에 의해 판결하지만 검사는 '의심'에 의해 수사한다. 

따라서 검사가 혐의가 소명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범죄가 확인되었다'가 아니라 '범죄를 의심할 합리적 근거가 있다'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범죄를 의심할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으니 증거가 더 필요하기 때문에" 영장을 청구하는 것이다. 그럼 판사는 "의심할만한 정황"이 있고, "의심가는 사건에 관계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에 대해서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다(형사소송법 215조).

그렇다면 이 사건의 진짜배기는 언제 나올까? 그것은 48시간 뒤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신을 구속한 경우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석방해야 한다(형사소송법 200조의2). 따라서 48시간 뒤에 검찰이 이번에 체포한 경기동부 인사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가 안하는가, 그리고 청구할 경우 어떤 혐의를 집중적으로 범죄소명하는가가 관건이다. 만약 영장이 기각되거나 하면 큰 사단이 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소명하기 유리한 범죄를 병기하려고 할 것이다. 구속영장이 발부되기는 할 것이다. 이석기가 잠적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미 체포된 세사람의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높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범죄가 소명되고 + 증거인멸 혹은 도주우려"라야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는 것인데, 두고 보자. 어떤 혐의로 범죄가 소명되는지. 아마 국가보안법상의 고무찬양, 이적표현물 소지 정도일 것이다. 

자,그러니 그때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대응을 결정하자. 지금 미리 어떤 방향을 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만약 정말로 지령을 받았고, 내란을 음모했다면 먼지나게 두드리자. 그리고 그건 그거고 불법선거개입은 또 다른 것이다 라며 논점을 분명히 하자. 만약 내란에서 슬슬 꼬리 빼고 다른걸로 넘어간다면, 이래서 국정원 국내 파트가 없어져야 하는거다 라고 하면서 공세를 더 높이자. 지금은 다들 관련 법규도 좀 뒤져보고, 과거 사례도 뒤져보고 하면서 정보도 모으고 공부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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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3.

교육혁신, 멀지 않다. 교무실만 폐지해도 이미 절반은 혁신학교다.

학교를 바꾼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반대로 학교를 바꾼다는 것은 거창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학교를 바꾸는 열쇠는 뜻밖에 가까이에 있는 평범한 것들이다. 학교를 바꾸려면 그 동안 학교에서 너무도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을 달리보고 낯설게 보고문제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그 동안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왔던 학교 공간인 교무실, 엄밀히 말하면 혁신의 사각지대인 중학교 교무실이다.
초등학교의 경우는 교사들이 주로 교실에서 생활하고, 고등학교는 여러 사무실에 분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유독 중학교만큼은 수십년 전 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교무실 풍경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혁신학교나 진보성향의 공모교장이 있는 학교조차 교무실이라는 공간을 바꾸려는 시도나 문제의식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대도시 중학교 대부분의 교무실은 소속 교사들의 절반이 넘는 수십명의 교사들을 교감을 가운데 두고 교사들이 교육이 아니라 행정업무에 따라 편성된 부서의 말단 직원처럼 배치되어 있는 수십년전 모습 그대로다. 교사가 교실에서 제 아무리 세상을 바꾸는 열변을 토하는 고귀한 지식인이라도 일단 교무실에 돌아오면 시덥지 않은 행정업무의 한 조각을 담당하는 말단 공무원으로 전락하는 곳이 교무실이다.

게다가 이 교무실이란 공간은 수십명이 몰려 있고수십개의 사무기구들이 배치되어 있다보니 잠시도 조용한 순간이 없다. 여기에서는 수업을 위한 연구도 휴식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좌석배치도 전문직이라는사에게는 모욕적이다. 교감은 모든 교사들을 둘러볼수 있는데교사들은 자기 업무용 컴퓨터만 볼수 있다이 보다 감시에 더 좋은 구조는 없다이렇게 감시받는 공간에서는 생들의 민감한 사연이나 신상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생활지도나 상담이 불가능하다. 중학교 담임교사는 학생들과 상담할 공간이 절대적으로족하다. 교실에서는 다른 학생들이 지켜보고교무실에서는 교감과 부장들이 등뒤에서 지켜본다궁여지책으로 조종례시간에 복도에 내담자만 데리고 나와서 상담을 하거나학교밖 커피숍 등에서 자기돈을 써가며 상담을 해야한다.
교무실의 폐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교무실은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훼손한다. 이상적인 학교란 학생들이 교사를 리더로 하는 배움의 공동체를 이루는 학교지만, 교사가 교실에서 근무하는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에서는 이런 관계 형성이 매우 어렵다. 교사들이 학생과 함께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끼리 밀집하여 모여있는 교무실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사들은 수업시간에만 교실에 들렀다가 다시 교무실로 돌아온다. 공동체는 학생들끼리 형성되며, 교사는 수업시간에만 시간표 따라타났다가 다시 교무실로 돌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중학교 교사들의 일상적인 인간관계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교무실은 수업을 위한 연구도휴식도학생지도도 상담도 할수 없는 공간이다그런데 이율배반적으로 교무실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서는 가르치는 업무를  처리하는 방이다평가학생기록의 작성학생 상담과 생활지도수업 준비를 위한 연구 등의 일을 하는 방이란 뜻이다그런데 실제로 교무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불가능하거나아니면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겨우 할수 있다그래도 교사들은 수업연구를 해야하고 학생 상담과 지도를 해야하기에 교무실에서 억지로 이 일들을 한다그러니 교무실은 가르치는 업무를 위한 방이 아니라 가르치는 업무를 해야만 하는 방인 것이다. 실제로 교무실이라는 공간은 교육을 준비하는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일 보다는 집중력이나 심사숙고없이 처리해도 되는 각종 행정 잡무그리고 교감이나 부장에 의한 교사 동태 파악이다그러니 교무실이란 이름은 당치도 않으며, 잡무실 혹은 감시실이라 불러야 마땅한 그런 공간인 셈이다.
게다가 교무실에 해당되는 교무(가르칠 교)  라는 용어 자체도 법에 없는 말이다혹자는 학교의 업무가 교무/행정으로 2원화 되어 있으며 교무실 책임자 교감과 행정실장이 독립된 일을 하는 것이라 주장한다그러나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교무(학교 교)란 학교 업무 전체를 말하는 것이며 그 아래 교육과 행정이 있다학교의 업무를 교무/행정이라고 부르는 것과 교육/행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천지차이다전자의 경우 일반행정 업무가 아닌것은 모두 교무가 되며후자일 경우 교육이 잘 이루어지도록 각종 지원을 하는 것이 행정이 되기 때문이다결국 법에도 없는 교무실이란 용어가 관행적으로 사용되면서 행정이 교육을 휘두르는 학교 구조가 고착화 된 셈이다.
이렇게 교육에 방해가 되고 법적 근거도 없는 교무실은 당연히 폐지되거나 대폭 그 기능이 변경되어야 교감과 일부 보직교사와 교무지원사가 교육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교무실의 폐지야 말로 학교개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개혁은 새로운 무엇을 추가하는 것 보다 먼저 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잘 발휘하도록 하고 그 저해요소를 혁파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학교의 모든 체계가 교육즉 수업과 생활지도가 가장 잘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학교의 여러 체계가 작동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뜻의 교사 역시 어른이 아니라 학생과 주로 생활해야 한다. 이건 매우 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교사들의 업무 공간 역시 교감과 행정업무를 보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공부하는 교실에 설치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교사들간의 교육적 협의를 위한 공간인 학년교사실교과교사실을 따로 두는 것이 사리에 맞다모든 교사를 한 공간에 몰아 넣고교육이 아니라 행정잡무 위주의 부서에 따라 위계적으로 배치해 놓은 교무실이라는 공간은 교사의 주요 업무가 각종 행정잡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단적으로 생각해 보자수십명씩 몰아넣은 1층에 있는 교무실에서 행정잡무를 강요받고 있는 담임교사에게4층 귀퉁이에 있는 자기반 교실을 챙기라고 요구한다면 이게 말이 되는가? 교육개혁, 다른 것 필요없다. 교사들을 교실로 보내자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책무를 묻자교사들을 연구실로 보내자그리고 전문성에 대한 책무를 묻자교사들에게 행정잡무에 대한 책무를 묻지 않을 것이라면 교무실은 폐지하고 교과협의실과 학년협의실로 대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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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18.

교육판 4대강 디지털 교과서.. 문제는 종이냐 디지털이냐가 아니다.


당초 2014학년도부터 사용하기로 했던 디지털 교과서가 초중학교 중 450교를 선정하여 사회/과학 두 교과에 우선 적용하고, 전면화 여부는 그 성과에 따라 2015년 이후에 결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디지털 교과서란 기존의 종이책으로 된 교과서를 태블릿 PC에 장착하고, 인터넷 등과 연동하여 학습자료 검색, 형성평가 등도 가능하게 한 일종의 프로그램이다. 이와 가장 유사한 형태로는 종이책에서 태블릿 용 앱북으로 전환된 각종 여행 가이드북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디지털 교과서 전면화가 늦어지자 기본 예산만 2조 2천억원이 투입된 정책이 자칫 좌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이 정책이 모든 학생에게 태블릿을 보급하는 등 수조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교육판 4대강 사업으로 부르면서 시범 사업이 아니라 아예 전면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경향신문 사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152149325&code=990101).

반면 디지털 교과서의 장점을 들고, 또 스마트 교육이 시대의 화두라는 점을 들어 이 사업이 축소되거나 시행이 연기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무거운 교과서들을 전자화 하여 태블릿 하나에 모두 장착하면 학생들의 가방도 가벼워지고, 종이 소비도 줄일수 있으며, 교과서의 수시 개정도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교과서와 관련한 이들 주장들은 모두 교육 전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교육 사업은 함부로 진행되거나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교육 전체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과 논의 끝에 해서는 안된다고 결론이 나면 몇조가 이미 투입되었더라도 중단해야 하며, 계속 해야 한다고 결론이 나면 앞으로 몇조가 더 투이되어야 할지라도 그리고 반대여론이 높더라도 계속되어야 한다. 문제는 교육적 정당화지 여론이나 예산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디지털 교과서의 실용적인 효용 혹은 종이책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이 시대에 어떤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고, 어떤 새로운 학습과정이 필요하며, 여기에 어떤 새로운 도구가 필요한가를 면밀하게 검토한 뒤, 디지털 교과서가 과연 필요한가, 그리고 어떤 형태라야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즉, 교육목표와 교육과정 전체의 관점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논의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교육 개혁에 대한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그 동안 압축성장에 기여해 온 20세기 교육패러다임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논의 참가자가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고 동의하고 있다. 20세기 교육패러다임은 주어진 시간에 가능하면 많은 지식과 정부를 전수, 암기시키고, 이를 답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 시험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시험문제의 답을 알아 낸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는 것이다. 지식을 획득하고 답을 찾는 과정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오히려 답을 구하는 과정이 짧으면 짧을수록 그것은 효율적인 것이며 더욱 좋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디지털 교과서 사업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동안 검인정 교과서가 많은 비판을 받았던 까닭은 그것이 종이로 되었다거나 무거워서가 아니라 학습의 과정을 지나치게 세밀하게 통제하고, 이미 정해진 답을 기계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과서가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의 창의성과 문제의식을 억압하고 말살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교과서의 이런 중앙집중적인 권위를 분산시키고, 학생들이 다양한 배움의 원천 속에서 다양한 앎의 경로를 찾아가도록 하자는 것이 바로 핀란드 등에서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교과서 대신 각종 통신기기를 이용하여 곳곳에 산재된 배움의 원천에 접속하고 같은 배움에 참여하는 학생들끼리도 긴밀하게 연결하여 광범위한 학습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바로 스마트 교육이다. 스마트 교육이란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교육이 아니라 과거에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었던 학생들이 스마트하게 교육을 능동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는 의미다.

그런데 스마트 교육의 이름을 달고 그 동안 추진되어 온 디지털 교과서 사업은 종이 교과서의 내용을 전자화 하여 스마트 기기에 장착하고, 학습자료를 정리한 중앙집중식 서버에 저장하여 접속하도록 하고, 평가 문항을 풀고, 정답도 확인하고 점수도 매기는 등 학습의 전 과정을 포괄하고 있다. 이는 20세기의 낡은 교육 패러다임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으며, 스마트 교육과는 전혀 거리가 먼 퇴행적인 방향이다.

디지털 교과서는 답을 구하는 과정을 최소화 시키거나 사실상 제거해 버렸다는 점에서 이런 왜곡된 공부관의 극치다. 디지털 교과서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답을 그것도 시대 변화에 따라 업데이트 해 가면서 학생들에게 주입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다. 하지만 클릭만 하면 답이 즉각 나오는 디지털 교과서, 지식을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과정을 모조리 컴퓨터에게 맡겨버리고 빨리빨리 답만 찾아가는 디지털 교과서가 향상시켰다는 학습효과가 학생의 정신적, 신체적 위해까지 감수하면서 얻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부란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공부는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 문제 해결력은 모니터를 주시하는 고독한 학습에서 얻어지지 않으며, 동료, 교사와의 협력, 토의, 상호비판의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이 과정 속에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것 까지가 문제 해결력이며 공부다. 모니터만 주시하고 가끔가다 메신저로나 생각을 주고받는 교실에서는 이런 경험을 기대할 수 없으며, 어떤 학부모도 이런 교실에 자녀를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러다이트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디지털 교과서에 대해 종이 교과서에 대한 고정관념에 입각해서 저항하는 것은 퇴행적이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이 모든 학습과 공부를 획일적으로 포괄하고 퇴행적 교육을 오히려 강화한다면 여기에 대해서는 반대해야 한다. 디지털 교과서 사업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반발 때문에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그것이 새로운 교육관에 입각해 있지 않기 때문에 표류하는 것이다. 마틴 셀리그만은 고대 그리스인이 우리보다 더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가졌다고 단언했다. 정보기술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이 기껏 석판이나 도자기에 글자를 새긴 고대인보다 더 지혜롭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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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4.

영화 마지막 4중주를 보며, 막장스런 인생에서 연꽃처럼 음악이 피어난다

우선 이 영화 제목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질부터 시작하자. "A late quartet" 이걸 정확히 번역하면 "후기 4중주곡"이다. A가 붙었기 때문에 그 중 한곡, 즉 이 영화에서 연주되는 베토벤의 op.131 이다. 그런데 이걸 마지막4중주라고 명명하니 마치 고별연주회 이런식으로 읽힌다. 물론 그렇게 읽히는게 흥행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 이 영화에는 마지막 연주회가 나오긴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가 완전히 왜곡된다. 이 영화는 마지막 공연을 앞둔 노음악가의 모습을 그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베토벤의 후기 사중주를 연주한다는 것의 의미를 그리고자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Late quartet, 즉 후기 4중주라고 하면 사전적으로는 어떤 작곡가의  4중주 작품들 중 인생의 후반기에 작곡한 것들이라는 뜻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게 그리 간단한 용어가 아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모두 후기4중주에서 자신만의 내밀한 이야기를 한다. 대중에게 친근한 음악을 주로 작곡한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조차 후기4중주곡들은 난해하며 대담하다. 영화에도 나오듯이 위대한 작곡가들은 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때 꼭 현악4중주로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 중 후기현악4중주에 가장 각별한 의미를 두어야 하는 작곡가는 베토벤이다. 작곡가의 인생 마지막 여정에서 차지하는 현악사중주의 비중이 그의 위대한 두 선배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이든이나 모차르트가 탁월한 후기4중주들을 남긴것은 사실이지만 베토벤처럼 오직 현악사중주에 올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죽음을 기다리던 말년의 베토벤은 오직 현악4중주만 줄기차게 작곡했다.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들 중  op,127,130, 131, 132, 133, 135(베토베의 마지막 작품)가 줄줄이 현악 4중주다. op.128, 129, 134가 빈다고? 128,129는 간단한 소품이며, 134는 133 사중주를 피아노로 편곡한 것이다. 그러니 베토벤은 말년에 문자 그대로 현악사중주에 몰빵 했다. 그러니 베토벤의 후기4중주가 차지하는 위상이 얼마나 큰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베토벤의 회고록이며 참회록이다. 아우구스티누스나 루소가 글로 할 것을 베토벤은 악보로 했다. 그래서 이 작품들에는 꿈, 아름다움, 추함, 고통, 회환, 희망, 관조 등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주의할 점은 관조적으로 "인생의 모든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베토벤의 인생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들은 전통적인 형식(4악장 구조), 화성 따위를 모두 무시하며, 대중의 이해따위는 구하지도 않는다. 베토벤은 자기 자신, 그리고 신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 곡들을 썼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음악은 모차르트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차르트는 이 세상을 살아간 사람이 아니라 잠시 세상을 거쳐간 손님과 같았다. 그는 세상살이에 매우 서툴렀으며, 음악을 제외하면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만사를 음악으로 환원했으며, 그냥 그 속에서 살다가 그 속으로 돌아갔다. 그가 남긴 여러 편지나 기록 중 음악이야기가 아닌 것은 찾기 어렵고,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은 음악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그의 삶의 흔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어루만져주는 위로이며 애무이지, 결코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에서는 베토벤의 후기4중주와 같은 삶의 편린과 흙냄새를 맡아보기 어렵다.

반면 베토벤의 후기 사중주에서는 인생의 말년에서 돌아보는 온갖 희로애락과 미와 추, 삶과 죽음 등에 대한 회고와 성찰이 두루두루 드러나고 있다. 점잖은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음악가들의 억눌린 욕망, 세속적인 욕구, 삶, 절망, 회한 이런 것들이 결국은 베토벤의 후기4중주 연주를 통해 승화된다. 거꾸로 이런 것들을 기꺼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충분히 고통받을 각오 없이는 베토벤의 후기4중주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충분히 세속적인 삶, 흙 속의 인간임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이 놀랍도록 진솔한 베토벤의 대화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다.

이 영화는 유명 현악4중주단인 '푸가'의 첼리스트이자 다른 세 멤버의 스승인 피터가 말로는 쉽게 했던 "자네들 보다 30살이나 많은 내가 어쩔수 없이 먼저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정말로 직면하면서 시작한다. 게다가 그는 10만명에 하나 걸린다는 희귀병 '파킨슨'병에 걸린다. 넉넉한 정신세계로 이건 극복하기 쉽지 않아서 그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크게 흔들린다. 

이 정신적 지주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다른 세 멤버들 역시 그 동안 "음악"이라는 종교를 빙자하여 억누르고 감추어왔던 욕망과 욕구가 폭발한다. 이들은 자신들 역시 흙냄새 풍기는 사람이며, 유한자인 사람이 겪어야 할 간난신고, 아픔, 슬픔, 회한 따위를 짧은기간동안 집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것이 바로 베토벤 후기4중주를 연주하기 위한 레슨이 된다. 

이를 상징하는 장면은 다니엘의 변화다. '푸가'의 제1바이얼리니스트인 다니엘은 베토벤의 후기4중주를 연주하려면 우선 "삶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제자에게 악보대신 베토벤의 전기를 읽고 그의 삶을 이해하라는 과제를 낸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자신은 삶 속에서 베토벤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악보를 통해 분석만 한다는 것이다. 악보에 깨알같이 적힌 메모 없이는 감히 연주하지도 못하는 완벽주의자이며 냉철한 연주자가 제자에게는 이율배반적인 요구를 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친구의 딸이기도 한 이 제자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막장도 이만저만한 막장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이 관계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자각조차 못한다. 동료이자 제자의 아버지인 친구의 주먹에 맞고도, 그리고 존경하는 스승의 "부끄러운 줄 알아라."하는 꾸지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실상 진실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오직 악보와 악기의 편협한 세계에서만 살아온 중년의 음악가가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를 맞이한 것이며, 사랑에 눈이 뒤집히는 경험을 한 것이다. 소위 눈깍지가 씌는 경험.

놀랍게도 그들의 관계가 부적절하며, 다니엘은 '푸가' 사중주단을 지켜야 할 소명이 있다는 것을 자각한것은 훨씬 어린 제자였다. 그리고 결국 제자의 결단에 의해 관계가 청산되면서 다니엘은 40대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실패한 사랑의 쓰라림을 경험하게 된다. 베토벤의 후기 사중주를 연주하기 전에 먼저 삶을 이해해야 한다는 그 과제는 제자가 아니라 평생 책과 악보를 통해서만 음악을 이해해 온 다니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니엘은 공연에서 악보를 덮고 자신의 느낌에 따라 용감하게 연주할 수 있는 경지로 한발 더 나아간다.

2바이올리니스트인 로버트는 그 동안 꾹꾹 감춰왔던 다니엘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아내가 자신보다 다니엘을 더 존중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일거에 폭발한다. 그리하여 다니엘에게 1바이올린 자리를 요구하면서 분쟁을 일으키고, 아내가 다니엘을 옹호하자 분노가 폭발한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는 대신 음악의 대가로 우러러보는듯 보이는 젊은 댄서에게 빠져드는 등 막장 상황을 경험한다.

비올라 연주자인 쥴리엣은 세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왔다. 언제나 신뢰할 수 있고 예술적인 유대감을 공유하는 다니엘, 자신에게 헌신적이고 다정한 남편 로버트, 그리고 아버지처럼 존경하며 정신적 지주로 든든히 버티고 선 스승 피터. 그런데 이 기둥 피터가 흔들리면서 줄리엣의 작은 세계가 균열을 일으킨다. 남편은 자신과 다니엘 사이를 의심하고, 다니엘은 엉뚱하게도 자기 딸과 사랑에 빠지며, 자기 딸은 어머니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당돌하게 비난을 퍼붓는다.

결국 공교롭게도 이 '푸가' 4중주단의 네 멤버는 공연을 얼마 앞두고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라고 생각했던 갖가지 고난과 시련에 시달리며, 그동안 감춰왔던 아프고 추한 면들을 드러낼수 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다. 그리고 이 모든 시련이 끝난 뒤에 이들은 베토벤의 후기 4중주를 연주한다. 그들 모두 고통스럽지만 견뎌내어야 하는 인생이라는 레슨을 받은 것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느닷없이 엄습한 심지어 막장 드라마 같은 갖가지 시련들은 베토벤의 귀신이 이들에게 베풀어준 소중한 레슨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알반베르크 현악4중주단을 떠올렸다. 이들은 베토벤의 후기 사중주를 훌륭하게 연주한 4중주단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팀이다. 한치의 오차없이 정확한 부다페스트4중주단, 다소 가벼운 감은 있지만 따스한 음색을 만들어냈던 아마데우스 사중주단, 풍부한 감성과 폭넓은 표현력을 자랑하는 하겐 사중주단, 그리고 한때 베토벤 후기4중주의 정통처럼 군림했던 라살 사중주단 등 여러 연주를 들어봤지만, 알반베르크 4중주단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는 연주는 많지 않았다. 이들의 연주는 무수히 많은 토론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한 잘 짜여진 소리를 만들었으며, 대담하고 강력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인생을 아는 연주인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푸가'4중주단과 느낌이 비슷하다. 이들이 명성을 얻은 1981년부터 25년간 활동하다가 고령의 카쿠스카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제자인 여성 연주자로 멤버가 교체된 점도 그렇고, 베토벤의 후기4중주 연주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마치고 해체된 점도 비슷한 여운을 남긴다. 물론 이 영화에서 실제 연주를 담당했던 브렌타노 사중주단의 연주도 빠지지 않는 연주다. 단, 브렌타노 사중주단은 베토벤 보다는 슈베르트 4중주가 독보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에서는 베토벤의 OP.131 사중주를 슈베르트가 가장 좋아했던 작품이자 그가 임종할때 들었던 작품으로 소개한다. 미리 슈베르트스러울 연주에 대해 복선이라도 깔아 두려는 양. 미소가 나오는 설정이다.

잡설이 길었다. 베토벤의 OP. 131 현악4중주의 마지막 두 악장을 알반베르크 4중주단의 연주로 들어보자. 단 35세 이하의 경우는 베토벤 후기4중주가 잘 와 닿지도 않으며, 이 영화도 역시 잘 와 닿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알려드린다. 

베토벤 4중주 op.131  6악장    7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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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