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30.

진짜 종북의 기준을 알려주마

요즘 하도 종북종북 그러다 보니 종북의 기준이 전혀 분석적 가치가 없어져 버렸다. 요즘 같아서는 이재오도 종북으로 몰릴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런데 좌파 혹은 진보 내에 정말 폐해를 많이 일으킨 종북적 가치를 가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이들에게 더 이상 온정주의로 일관하지 않고 냉정하게 비판해야 한다. 내가 여기에 종북을 가리는 진짜 기준을 제시하겠다. 우선 다음에 제시되는 것들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물어본다.


1.  국가나 민족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다.
2.  국가나 민족의 방침에 반대되는 학문이나 예술은 금지될수 있다.
3.  국가 지도자의 존엄성은 가장 중요한 가치이니 이를 훼손하는 것을 처벌해야 한다.
4.  북한의 핵실험은 이런 저런 사정이 있는 만큼 섵불리 비판할 수 없다.
5.  북한의 3대 세습은 이런 저런 사정이 있는 만큼 북한 입장에서 이해해야지 함부로 비판할 것이 못된다.
6.  정부나 지도자를 비방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수용소에 보내서 굴려야 한다.
7.  국가 지도자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특히 존경받아야 하며 숭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8.  한국 전쟁은 결과적으로는 북한이 쳐들어 온 것이지만, 전후 사정을 보면 쳐들어올수 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9.  북한의 단독정부 수립은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때문에 할 수 없이 한 것이다.
10.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것은 일종의 자위권 발동이다.
11. 북한이 지금 어려운 것은 지도자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미국놈들의 고립, 분열 책동 때문이다.
12. 국론이 통일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니 국가 지도자의 뜻과 다른 주장을 내세우거나 언쟁을 벌려서는 안된다.

이 12개 물음 중 절반 이상에 그렇다라고 대답한다면, 그 사람은 종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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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음반들의 참상. 그리고 정보화 시대!


나의 오래된 음반들. 월급받아 판 사서 나 까먹는다는 힐난을 무시하며 주억주억 사다보니 집이야 방이야 온통 CD와 DVD로 발 디딜 틈이 없고, 요즘에는 책까지 가세하여 아수라장.


제일 위에 있는 사진은 록음악, 재즈, 블루스 등의 음반들이 무더기 져 있는 모습. 사진에 보이지 않는 아래 부분에는 가로로 마구 포개어져 있어서 뭐 하나 찾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략 롤링스톤즈, 비틀즈, 레드제플린, 딥퍼플, 레인보우, 메탈리카는 모든 앨범을 구비하고 있는데, 요즘 통 꺼내 듣지 않다보니 먼지만 쌓이고 있다.

아래 왼쪽과 오른쪽은 분류없이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음반들.
대략 보니 중세, 르네상스 음악들과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계통없이 섞여 있는 모양새다. 프레스코발디 작품 전집이 눈에 띄고, 북스테후데 전집은 실종되어 집안에 어딘가 있긴 하겠지만 찾을 길이 없다.

 

오른쪽에 있는 사진은 오페라 관련 음반들과 브릴리안트에서 나온 베토벤, 모차르트 작품 전집(100장 이상의 CD를 작은 공간에 몰아 넣는 좋은 방법), 쇼팽 전집, 슈베르트 전집이 자리하고 있다. 하이든 작품 전집은 어딘가에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오페라는 CD가 아니라 DVD로 주로 사기 때문에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는 않아 다행이다.


아래의 사진들은 모차르트 컬렉션과 베토벤 컬렉션이다. 180장짜리 모차르트 전집이 있고, 100장짜리 베토벤 전집이 있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같은 곡을 여러 연주자별로 자꾸 모으다 보니 이 모양이 되었다. 왼쪽이 모차르트, 오른쪽이 베토벤, 가운데는 19세기 음악들을 분류없이 마구 꽂아 놓은 공간이다. 가운데 사진 아랫부분에 거대한 빈 공간은 독일 근현대 작곡가들의 CD가 있던 곳인데, 엠피3 파일로 바꾸기 위해 꺼냈다가 컴퓨터 방에 무더기로 방치되어 있다.





이 무더기들은 왼쪽부터 차례로, 헨델 컬렉션,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작곡가들 닥치는대로 꽂은 공간, 그리고 바하, 비발디 등 바로크 음악 닥치는 대로 꽂은 공간이다. 여기서 원하는 CD하나 찾으려면 전쟁을 치루어야 할 판이지만, 그래도 그냥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일전에 진보를 빙자한 어느 인사가 나를 고 클래식 따위에서 주워들은 말로 얄팍하게 말만하는 자로 비하하며 "너 따위가 무슨 애호가 축에나 드느냐?"라는 막말을 한 적이 있는데, 글쎄, 이 정도면 전문가는 아니라도 애호가는 충분한 것 같은데... 사실 일반인의 상식에는 살짝 정신 나간 정도일수도.

그런데, 저 CD 들이 저렇게 지저분하게 방치되어 있는 이유는? 저 많은 CD들이 여기에 다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러고도 공간이 넉넉하게 남는다. 이걸 몽땅 아이튠스에 목록화 하는 작업이 장난이 아니라 엄두를 못내고 있지만, 현재 64G분량의 음원은 목록화 했고, 이제 그만큼만 더 하면 된다.

누군가가 이 외장하드 꽂아서 복사하면 한 정신나간 애호가가 수십년 고르고 고르고 돈 퍼 지른 컬렉션을 하루만에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다. 아이폰에 음악 동기화 하다가 갑자기 그 동안 CD 사 무지느라 들인 시간과 돈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음원으로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CD가 물리적으로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수십장이라 이걸 찾느라 한바탕 집을 뒤집어 놓은 다음이라 더 허무하다.

이제 음악은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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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취임식 직전에 썼던글, 보존 차원에서 옮겨 옮

2010년 6월에 쓴 글입니다. 곽노현 교육감 취임 직전 태스크포스의 명단을 보고 나름 절규한 글입니다. 곽교육감은 이 글을 보지 못했으나 어쨌든 이 글에세 비판하는 사람들의 한계를 결국 간파하신것으로 판단됩니다만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전교조 등 소위 진보단체의 원로님! 들입니다. 제발 잘 합시다. 또 이러면 먼저 내부에서부터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아니 내부에서 먼저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하 퍼 온 글)

곽노현 교육감 당선자(곧 교육감이 되겠네요)의 태스크포스팀의 구성 가지고 조중동이 게거품을 물고 있습니다. 전교조 출신들이 너무 많이 포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교총에서는 파견하지 않겠다면서 성깔을 부립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통쾌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잠시 흥분과 설레임을 가라 앉히고 조금 생각해 봅시다. 전교조 출신들이 교육감 당선자의 태스크포스 팀에 참가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요? 정답은 "Never!"입니다. 전교조는 잘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태스크포스팀에 참가한 전교조 인사들을 모두 탈퇴시켜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아무리 곽노현 교육감이 진보진영 인사라 할지라도 교육감은 어디까지나 사용자입니다. 만약 노조가 사용자에게 좋은 건의를 할 것이 있으면 그것은 정식 교섭 절차를 통해서 하면 될 일입니다. 도대체 노동조합에서 사용자의 정책실에 인원을 파견한다는 것은 무슨 발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전교조와 곽노현은 서로 많은 부분 협조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교총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체 교섭이나 정책협의회라는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책팀이나 태스크포스팀에 개인자격, 현장교사 자격을 빙자한 전교조 간부들의 진출은 아무리 곱게 보아도 노조답지 못한 행동입니다.

둘째, 그나마 TFT에 들어간 전교조 인사들의 면면이 구태의연합니다. 물론 전교조 측에서는 각자 개인 자격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면면을 보면 전현직 전교조 고위 간부들입니다. 그리고 좀더 솔까말 하면 전교조의 주요 정파활동가들입니다. 공교롭게도 태스크포스팀에는 교찾사, 참실련 양대 정파의 핵심 활동가들이 고루고루 포진되어 있습니다. 또 이 활동가들 중에는 노조 간부 생활로 학교 현장을 너무도 오래 떠나 있어서 정작 학교에서의 무능함 때문에 원성을 들었던 분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이 분들 머리에서 현장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참신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기대하기란 대단히 어렵겠구나 하는 분들도 당당히 이름을 내밀고 있습니다. 물론 조중동도 이걸 놓치지 않고 계속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 선배님들은 얼른 그 자리에서 물러서거나, 6월 30일 이후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인맥을 통해 협조 연락이 왔을테지만 굳이 거기 응하고자 했다면, 평소 학교에서 눈여겨 보았던 젊은 선생님들을 많이 추천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덥썩 그 자리에 꿰차고 앉아서 낡은 라디오 소리같은 말씀을 하시고 있는 모습은 마치 내부형 교장 공모 시작되면 거기 어떻게 한 자리 꿰차려고 사욕을 부리는 모습으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첫삽이 중요합니다. 진보교육감의 첫걸음은 교장, 교감, 장학사의 격렬한 저항을 뚫으면서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며, 동시에 학교 현장에 뭔가 왕창 변하고 있구나 하는 임팩트를 줄수있는 아주 예리하고 통렬한 혁신안을 던져야 합니다.
이 두가지 모두 조합활동가로 학교 밖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신 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학교 내부에서 그 동안 교장, 교감들의 온갖 더러운 백태를 세밀하게 보아왔던 분들의 분노,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 온갖가지 실험적인 교육을 어려운 여건에서 피눈물나게 실현하려고 했던 분들의 꿈과 비전을 글어 모아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정녕 전교조가 진보교육을 꿈꾸고 진보교육감의 성공을 꿈꾼다면 당장 교육감 당선자 주위를 맴돌고 있는 원로 활동가분들에게 학교로 돌아가라고 설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 교육감에게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 그런 창의적이고 젊은 현장교사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합니다. 정히 정책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면 훌륭한 정책협의안과 단체교섭안을 준비하면 됩니다. 물론 그 안의 준비과정도 조합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창발적인 안을 모집해야 합니다.

제발 곽노현은 노무현 꼴 만들지 맙시다.

(글을 보고 난 소감)

쩝입니다. 왜냐하면 이 글을 쓴 당사자인 제가 결국 곽교육감의 정책 TF로 1년간 일했기 때문입니다.모순되는 행동이며 자가당착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런 비판이 있다면 당연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곽교육감이 언제 직을 상실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었고, 취임 무렵 거들먹거리며 주위를 맴돌던 진보인사(!)들이 그 곁을 하나 둘 떠나던 시기였기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변명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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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28.

인성교육 없어서 학생들이 이리 되었나? 인성교육법 같은 옥상옥 좀 그만 짓

여야의원 50명으로 이루어진 국회인성교육 포럼에서 초·중학교의 인성교육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인성교육법을 내년4월 중에 통과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법에는 인성교육 교과의 시수를 법으로 정하고, 각 시도 교육감은 인성교육 계획을 수립하고, 각급 학교는 인성교육에 예산의 일정 부분을 반드시 할당하도록 되어 있다.(기사원문보기).

이 법안을 입법예고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요즘 어린이나 청소년의 인성에서 많은 위험요인들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학교폭력만 해도 거의 30년간 큰 변화가 없다가 1997년에서 2000년까지 3년 만에 거의 10배 가까이 폭증했고,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도 거의 10배 이상 폭증했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인성교육 시간을 늘리거나 강화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만약 인성교육 부족이 문제였다면 교과수업 이외에 특별한 인성교육이나 수련 혹은 체험 프로그램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1980년대는 지금보다 훨씬 학생 인성이 황폐했어야 했다. 그러나 데이터는 정 반대의 사실을 보여준다. 인성교육 시간이 늘어난 2000년대 학생들의 각종 인성 지표가 인성교육이 전무했던 80년대 학생들보다 훨씬 황폐하다. 이는 학생들의 인성을 황폐화 시킨 원인은 인성교육의 부족이 아니라 다른 것이며, 인성교육이 여기에 따라 계속 강화되어왔지만 이를 막기에 역부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학생들의 인성을 이토록 빠르게 황폐화 시켰고, 인성교육을 언발의 오줌누기로 전락시킨 것일까? 사실 그 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며, 누구나 직관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갈수록 치열해진 입시경쟁교육,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불안해지는 진로다. 1980년대만 해도 입시지옥은 고등학생이나 되어야 경험하는 것이었다. 또 대학에 진학하면 삶의 경로가 비교적 튼튼해졌기 때문에 도전할만한 가치도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입시지옥은 중학교를 거쳐 초등학교, 심지어 미취학 시기까지 내려갔다. 게다가 선행학습으로 남보다 앞서 나가려는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을 배워야 할 정도로 강도가 높아졌다. 이는 높은 청년 실업률이 보여주듯 대학이 아니라 소수 명문대학에 진학해야만 할 정도로 경쟁 강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가정의 인성교육 기능도 무너졌다. 1980년대만 부모는 입시경쟁으로 지친 학생들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부모는 젖떼기가 무섭게 순간부터 아이를 입시경쟁의 아레나에 밀어 넣어 싸움을 독려하고 있다. 부모가 입시지옥의 완화제가 아니라 원인제공자가 되었고, 가정이 쉼터가 아니라 막사가 되었다.

이렇게 자신을 싸움터로 내모는 부모 아래에서 겨우 말이나 배웠을 나이부터 경쟁에 시달린 아이들이 사춘기 연령에 도달했을 때 어떤 인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상처받고 외로운 짐승들이 사나워지듯, 상처받고 외로운 청소년들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외로운 손을 잡아 줄 곳이 없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따뜻한 분위기와 안정된 포근함을 느낄 곳이 없다. 그런데 세상은 이들에게 인성이 글러먹었다며 인성교육을 받으라고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성교육 강화가 과연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오히려 학교에서 받아야 할 교육의 종류만 하나 더 생긴 아이들이 짜증이나 낼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교육 정책을 결정할 때는 신중해야 하고, 문제가 되는 현상만 보지 않고 교육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인성이 문제가 되면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역사관이 문제가 되면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식의 대증요법은 그 순간 순간 여론의 바람막이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은커녕 부작용만 불러올 수 있다.

인성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동어반복이며 옥상옥이다. 근대 교육학의 아버지 헤르바르트가 언명했듯, 교육학의 목표는 도덕의 인식과 실천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다. 지식교육은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함이며, 덕성교육은 일단 무엇이 옳은지 가려내었으면 실천하는 성향을 길러 주기 위함이며,체육교육은 그러한 실천의 바탕이 되는 건전한 신체를 가꾸기 위함이다. 모든 교과가 바로 인성교육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서로 조화를 이루며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공교육의 목표가 인성교육인 것이다. 인성이란 지성과 덕성과 건강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역대 교육과정 중 인성교육을 목표로 삼지 않았던 교육과정은 하나도 없다.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원인은 법이 없어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

우리 학생들의 인성이 황폐해지고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은 교육과정이 잘못 되었다거나 인성교육을 경시했다기 보다는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 교육과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교육과정을 파행으로 내몰았는지는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다. 교육과정이 무시되면서 파행적인 입시교육이 실시되었고, 교육과정을 교란하면서 각종 선행학습이 횡횡하였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교육과정을 엿가락처럼 이리저리 주무르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설사 총체적인 인성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교육과정이 갖춰져 있다 할지라도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요즘 아이들의 인성이 걱정되면 해법은 간단하다. 입시교육을 중단하고, 교육과정을 왜곡시키는 사교육을 규제하고, 불안에 들떠 아이들을 아레나로 몰아넣고 있는 학부모에게 쓴소리를 하라. 이 어려운 길이 두려워 외면하고서 내어 놓는 어떤 정책도 문제의 핵심에는 다가가지도 못할 것이며, 공연한 예산 낭비와 학교 업무의 증가라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데 학생들의 인성이 황폐해진 원인은 인성교육의 부족이 아니며, 청년 실업의 원인은 진로교육의 부족이 아니다. 이것이 하루가 멀다하고 학교에 인성교육,로교육 공문을 내려보내는 교육 당국이 깨달아야 할 불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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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8.

국정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국격을 북한, 캄보디아 격으로 떨어뜨리자는 소리

한때 완전히 사라진 단어였던 국정교과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수준 이하의 한국사 교과서 하나(교학사)를 지키고자 교육부가 8종 교과서 전체에 수정 보완을 지시하며 시작된 물타기가 이제는 8종 교과서가 모두 오류가 있는 것은 검인정 제도 자체의 문제라는 식으로 덤터기로 발전하더니, 아예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하자는 종점에 도달했다. 보수 교육 단체, 새누리 당은 물론 이제는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이런 여론을 조장하고 있다. 얼마나 더 시대를 역행해야 이들의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이 멈출 것인지 걱정될 지경이다. 어쩌면 국민소득이 1000달러 수준으로 내려 앉아야 멈출지도 모를 일이다.

국정교과서가 낯선 세대들을 위해 용어 설명을 하자. 현재 교과서는 소정의 검인정만 통과하면 여러 출판사가 자유로이 발행할 수 있으며, 학교에서 이들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국정교과서 제도가 도입되면 국가가 지정하는 하나만 교과서가 된다. 즉, 학교에서는 국가가 지정하는 단 하나의 교과서만 가르치라는 것이다. 대입이 절대적인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교과서 발행을 관장한다는 것은 국가가 지식을 관장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이는 파시즘의 전형적인 정책이다. 예컨대 북한은 현재 모든 교과서가 국정이며, 우리나라도 5공화국 까지는 영어를 제외한 모든 교과서가 국정이었다. 현재도 북한, 필리핀, 캄보디아 등 독재국가나 저개발 국가에서나 국정교과서 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민주화 이후 국정교과서 제도가 폐지되었으며, 과목명도 일본 제국주의가 붙인이름인 국사에서 한국사로 바뀌었다. 국정교과서의 폐지는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는 헌법 정신에도 부합한다. 국가가 교과서를 직접 관장하는 것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주성을 그 밑둥에서부터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제도조차 헌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다. 어떤 책이 교과서로서의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자주적이고 전문적으로 결정할 일이지, 국가가 나서서 교과서로서의 자격 여부를 결정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검인정 과정의 문제를 트집삼아 국정교과서로 회귀해야 한다는 일부 보수단체와 정부의 주장은 시대를 거스를 뿐 아니라 해괴하기까지 하다. 설사 검인정 과정이 허술하여 수준 이하 교과서가 통과된다 하더라도(예컨대 이번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그것이다), 여러 종의 교과서가 발행되는 체제에서라면 일선학교 교사들이 그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식민통치와 제국주의를 미화해서 물의를 일으킨 일본 후쇼사 역사교과서가 일선 학교에서 철저하게 외면받은 것이(채택률 0.4%) 그 좋은 사례다. 만약 국정교과서 체제였다면 단 하나뿐인 교과서가 수준 이하의 교과서일 경우 다른 대안이 없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입게 된다. 그러니 무엇을 가르칠지, 그리고 어떤 교과서가 가르칠만한 것인지 여부는 헌법에 따라 교육 전문가인 교사들에게 맡길 일이지,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

그러자 일부 보수단체들은 현재 검인정 교과서 체제에서는 전교조 교사들이 집필한 교과서를 일선학교 전교조 교사들이 채택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도 다르지만 설사 사실이라 할지라도 소위 보수 교육자들의 실력부족을 고백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전교조 교사는 전체 교사의 1/4에 불과하다. 반면 자기들 자랑대로 보수단체인 교총은 1/2 의 교사들이 가입해 있다. 그러니 전교조성향의 교과서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소위 보수 교육자들도 모여서 자기들의 교과서를 만들면 그만이다. 산술적으로는 보수성향 교과서가 진보성향 교과서보다 훨씬 더 많이 발행되는 것이 정상이다.그러니 검인정 제도는 특별히 보수에게 불리하지 않다. 만약 보수성향 교과서보다 소위 전교조 성향의 교과서가 더 많다면 이는 전교조 교사가 교총 교사보다 더 실력이 있다는 증거일 뿐 국정교과서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전교조가 학교의 교과서 채택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주장도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총 교사가 전교조 교사보다 그 수가 훨씬 더 많다. 그러니 전교조가 좌파 성향의 교과서가 채택되도록 학교에서 압력을 행사한다는 주장은 교총 교사들이 전교조 교사들보다 게으르다는 것을 증명할 뿐,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마지막으로 국무총리와 보수세력에게 역사의 교훈 하나를 알려주겠다. 우리나라에서 민주화 운동, 혹은 지금 정부의 눈으로 볼 때 소위 좌경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대는 1980년대다. 그럼 그때 그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소위 좌경사상을 배웠을까? 그 시절은 초, 중, 고등학교까지 모든 교과서가 국정이었다.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국정 국어, 국사 교과서로 배웠고, 교련수업까지 받았다. 그때는 전교조도 없었다. 좌파적인 내용의 수업은커녕 토론식 수업을 했다거나 협력학습을 했다거나 학생들에게 풍물을 가르쳤다는 이유만으로 교사가 해직되던 시절이다. 정흥원 총리나 지금 정부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이상적인 학교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국정으로 배우고 전교조 없는 학교를 다닌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격렬한 반정부투쟁을 했고, 아직도 가장 진보적인 세대로 남아있다는 것은 역설적이지 않은가? 누가 그들에게 좌경 사상을 가르쳤는가? 바로 전두환이다. 그들은 어떤 책으로 좌경사상을 배웠는가? 군부독재에 허덕이던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즉, 특정한 교직단체나 교과서가 아니라 억압과 착취가 만연하는 사회 현실이 바로 젊은이들을 좌파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억압과 착취가 온존하는 한, 심지어 점점 늘어나는 한 교과서가 국정이다 아니다는 논란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시민적의 자유가 계속 위축되고 삶이 점점 고단해 진다면 교과서가 아무리 국정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시험 때 외우고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거짓말들에 불과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보수단체와 정부는 이 교훈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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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2.

온 국민을 하층민으로 전락시킨 중산층 괴담. 중산층의 정확한 의미는?

이른바 중산층의 기준이라는 것이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다.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이것을 보며 많은 직장인들은 "아, 나는 감히 중산층에 끼지도 못하는구나"하고 자괴감을 느끼고, 일부 진보지식인들은 "봐라. 유럽인들의 중산층 기준은 얼마나 우리와 다른가?" 하며 또다른 버전의 국개론을 펼쳤다.
중산층.PNG
중산층의 기준?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개소리다. 여기에 나와 있는 한국, 영국, 프랑스의 중산층의 기준은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중산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사회과학에서 중산층은(말 부터 틀렸다), 엄밀히 말하면 중간계급(middle class)이라고 말해야 정확한 용어다.

간단히 말하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에 낀 계급이란 뜻인데, 18세기에는 주로 부르주아를 일컫는 말이었고(영국이나 독일에서는 20세기 초반까지도 부르주아를 중간계급이라는 말로 불렀다), 20세기에는 주로 관리, 전문직 종사자, 노동계급 상층(일명 노동귀족), 혹은 자영업자(쁘띠 부르주아) 들을 일컫는 말이었다(자영업자를 구 중간계급, 전문직을 신 중간계급이라고 부름). 물론 관리, 전문직 종사자들이 일반적인 노동계급보다 더 부유할 가능성이 크지만 반드시 소득 수준이나 소유하고 있는 자산을 가지고 분류하지는 않았다.

물론 사회학자마다 이 중간계급이 무엇이냐에 대해 논란이 분분했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다음과 같은 지표에 합의하고 있다.

1) 고등교육 이수
2) 아카데믹(학위, 교원자격), 법조, 전문기술, 의료, 정치, 행정 등의 자격 보유(놀고 있거나 가난하더라도)
3) 주택 보유, 안정적인 직장과 같은 부르주아 가치에 대한 믿음
4) 사용하는 언어습관, 교육받은 장소, 가족이나 지인들의 수준, 직업 등 사회적 요인
5) 문화 생활의 종류

여기에 경제적인 지표가 없는데, 굳이 집어 넣는다면 OECD기준인 중위소득의 50%~150% 범위 안에 있는 가구가 중산층이다. 우리나라의 가구 중위소득은 2011년 기준으로 월 350만원 정도다. 따라서  월 가구 소득 175만원~ 475만원, 2년동안 경제가 성장했다고 치고 넉넉 잡아 200만원~500만원의 월소득을 올리는 가구가 경제적으로는 중간계급이다.

그런데 연봉정보 사이트에서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뭐라고 대답했나? 월 급여 500만원이상이라고 한다. 가구 소득도 아니라 월 급여 500만원 이상이니 가구 소득은 700만원 이상을 바라보는 모양인데, 이건 중산층의 기준이 아니라 상층의 기준이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잘 살지 는 않는 나라다. 월급여 500만원에 부채없는 30평대 아파트에 현금 1억 이상 보유하고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상위 10% 이내에 훌쩍 들어간다. 통계자료를 100번을 뒤져도 틀림없다.

그런데 이 따위 기준을 중산층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으니, 진짜 중산층들은 기가 죽고 맥이 풀리며, 자괴감에 빠지고 마침내 분노를 느끼며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성화를 퍼부어 댄다. 아무리 생각해더 저따위 기준은 중산층들에게 노동력을 더 쥐어짜기 위한 공작에 불과하다. "너 아직 멀었으니 더 일 해라, 더 많이 일해라. 그리고 너의 자녀들은 더 많이 공부시켜서 중산층 한 번 시켜 봐라. " 이런 음험한 목소리가 마치 들리는 듯 하다. 아니면 현대 그룹에서 사주했나? 집 사고, 차 사라고? 그럼 전화기는?

강조하는데, 중산층의 기준은 소득 보다는 직업, 학력, 문화다. 설사 소득기준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저 위의 한국 중산층의 기준은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눈이 높고, 경제적으로 욕심이 많은 한국인들의 특성, 일제시대때 부터 왜인들의 조롱의 대상이 된 "조선인은 눈은 높아 욕심은 많으나 막상 성공할 재주를 갖추려고는 하지 않아 사기 쳐먹기 매우 쉬운 족속"이라는 기질의 증거는 될 수 있을지언정 중산층의 기준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영국과 프랑스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건 사회적, 문화적 기준의 중산층을 조금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저 내용 그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저 내용들은 결국 영국과 프랑스의 고등교육이 중요시 하는 가치들이다. 영국은 합리적 비판적 논리적 교육을 강조하고, 프랑스는 예술적, 정의적 교육을 강조하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니 저 기준이 보여주는 것은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중산층의 기준을 주로 고등교육 이수와 중산층 문화에서 보고 있고, 저 위의 기준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기대하는 행동양식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써 놓은 것이다.

자, 이제 우리나라 중산층을 제대로 정의내리자. 저 연봉사이트의 얼토당토 않는 기준, 영국과 프랑스의 과장된 기준도 버리자. 그렇다면 대충 다음과 같은 소박한 기준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1) 경제적 기준: 가구 월 소득 300-500만원
2) 학력 기준: 4년제 대학 졸업
3) 자기 집 보유하고 있거나 이를 마련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과 예금이 가능함
4) 안정적인 직장을 보유하고 있거나 이를 얻을 수 있는 전망과 계획이 있음
5) 생업과 무관한 취미를 위해 시간을 사용하고 기능을 익히고 있거나 그럴 여력이 있음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뭔가 멋진 문화적인 내용도 넣고 싶지만, 중산층은 상대적 개념이다. 그 나라의 중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화 수준이 저 두 나라와는 비교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웃어 넘기고, 이 정도만 남겨 두자. 자, 당신은 어떤가? 이만하면 충분히 중산층인가? 사실 한국에서 이 정도로 살기도 무지무지하게 어렵다. 그러니 제발 30평 아파트, 자산 10억 따위 헛소리는 중산층 기준에서 모두 지우자.

참고로, 미국에서는 미래를 계획하고 이를 위해 당장의 지출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매우 중요시 한다. 이는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소득 수준, 그리고 자신의 자산을 계획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문화, 교육 수준을 모두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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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