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13의 게시물 표시

대자보에 일침을 놓은 "안녕하시냐고 묻지마라"라는 글, 미안하지만 꼰대짓 맞다.

요즘 "안녕하시냐?" 대자보가 대세다. 대학생에서 중고등학생, 주부, 성매매여성까지 곳곳에서 대자보가 등장하고 있다. 대자보 열풍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 모였다하면 숟가락 얹기 도사들인 기존 운동권, 기존 진보진영의 꼰대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진솔하게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고, 생산한다 하더라도 대중에게 호소할 수 없는 자기들만의 사투리로 이야기 하기 때문에(미국, 계급, 민중 등에 만사를 환원시키는), 스스로 손글씨로 장문의 글을 설득력 있게 써야 입장권이 주어지는 대자보 행렬에 끼여 들수도 없고, 끼여 들어본들 주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때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강변하면서 듣지 않는 청중들에게 '너희들이 잘 몰라서', '아직 어린 것들이라', '개념이 없어서' 등의 이유를 대며 혀를 찬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이를 일컬어 '꼰대질'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이 운동권, 진보진영에 모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꼰대질' 이다.


그런데 최근 또 다시 꼰대질 논란이 일어났다. '민중언론 참세상'에 실린 박병학의 '안녕하냐고 묻지마라'라는 칼럼 때문이다. 이 칼럼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서 내 소견을 밝혀보려고 한다. 원문에는 숫자가 없지만 편의상 내가 붙였다. 원문을 보고 싶은 분은 링크를 참조하기 바란다.(기사 원문 링크: 원래 나는 진신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 글을 조곤조곤 씹는 버릇은 없다. 그러나 교육자의 입장에서 젊은이들의 그나마의 항변에 가슴아파하기는 커녕 냉소와 지적질로 일관하면서 오히려 위선으로 몰아붙이는 글에 대해서는 일말의 동정도 없다. )


1. 20대라는 건 철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수학적 개념이다. 비슷한 나이 또래라고 해서 어떤 공통성을 가정할 수 없다. 젊은이들 한 떼거리를 20대라고 부르는 순간 성별, 인종, 성적지향, 무엇보다도 계급의 문제가 사라…

경찰의 민주노총 불법 수색 및 재물 손괴와 관련한 법규와 판례

내가 민주노총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고, 심지어 전교조가 민주노총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오늘 민주노총과 경향신문에 가해진 경찰의 테러는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땅을 치게 만드는 사건이었습니다. 사회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우선 오늘 사태의 법적 쟁점을 정리해 봅니다. 내가 자격있는 법률가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해설은 하지 않고 다만 참고가 될만한 조문과 판례만 급히 찾아 보겠습니다. 일단 오늘 있었던 희비극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경찰은 철도노조 지도부 9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 받는다. 체포영장을 가지고 있으면 이 9명을 보거나 혹은 이들의 소재가 분명하다고 판단이 드는 장소에서 이들을 체포할 수 있다. 2. 이를 근거로 경찰은 민주노총에 진입한다. 그런데 이미 9명은 그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을 뒤져서 9명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불법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게 경찰이 자기들 행위를 정당화 하는 근거인데,형사소송법 제216조(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강제처분) ①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제200조의2·제200조의3·제201조 또는 제212조의 규정에 의하여 피의자를 체포 또는 구속하는 경우에 필요한 때에는 영장없이 다음 처분을 할 수 있다. <개정 1995.12.29>
1. 타인의 주거나 타인이 간수하는 가옥, 건조물, 항공기, 선차 내에서의 피의자 수사
2. 체포현장에서의 압수, 수색, 검증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내 친구가 다이아몬드를 훔치고 도망가다 우리 집에 왔는데, 경찰이 내 친구의 체포 영장을 가지고 왔을때 압수수색 영장 없이 내 집을 뒤져서 이 친구가 있나 없나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건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인데, 미국 영화 보면 "FBI!"라고 외치면서 요원들이 와르르 들어왔는데 범인은 없는 그런 상황이죠. 그렇다면 오늘 경찰의 행위는 합법적인 공무 집행일까요? 글쎄요? "인권보호수사준칙(법무부훈령_제556호)"…

꼭 해 보고 싶었던 서울 교육 혁신 사업의 종합적 모델 수립을 위한 기초 연구

2012년, 곽노현 교육감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을때 재빨리 석 달 동안 이런 연구를 해서 마치려고 했었다. 내 능력으로는 서포트만 되면 석 달만에 충분히 결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곽 교육감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그 간의 성과를 정리하여 후세에 남기려고 한 것인데, 진보진영의 소위 활동가, 명망가들의 고질병인 시기심과 견제 때문에 시작도 하지 못했다. 경기도나 다른 지역의 사례들을 종합하여 누구라도 이런 작업 완수했으면 한다. 이미 파견이 끝나 학교에 복귀한 나는 여력이 없다. 그때 기획안 요약을 그대로 보존해 둔다.

서울 교육 혁신 사업의 종합적 모델 수립을 위한 기초 연구 1. 취지 -현재 서울 교육 혁신 사업들이 서로 간에 연관성 없이 파편적으로 각자 운영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 -혁신학교, 문예체 진흥, 복지학교, 민주시민교육 등 서울교육혁신의 핵심 사업들간에 일관하는 공통의 철학적, 교육학적 배경이 직관적으로는 공유되고 있으나 이것이 하나의 체계적인 이론 수준으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음 -이러한 상황은 서울교육 혁신의 방향을 잡는 데 어려움을 주며,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교육혁신 방향에 역행하는 활동들마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폐단을 가져옴 -따라서 현재까지 진행된 각종 교육 혁신 사업들에 참여한 주체들의 생각과 실천의 결과물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일관성 있는 교육이론과 모델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함 2. 연구 목적 - 시대의 변화와 교육 본연의 가치들을 충실히 반영하여, 서울교육혁신 사업들에 일관되는 방향을 부여할 수 있는 철학적 기반을 마련한다. - 이러한 철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서울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는 서울교육 혁신의 목표를 수립한다. - 이러한 서울교육 혁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교육과정, 교수-학습, 학교운영, 학생활동의 모델 혹은 이념형을 구성한다. 3. 연구내역 -실태조사: 서울교육 혁신 각 영역들의 이름으로 어떤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선행사례 분석: 교육혁신을 주창했던 국내외의 교육운동들은 어떤 공통된 기반에서…

만델라의 서거 소식에 기쁨의 변증법으로 추모한다

이미지
넬슨 만델라가 세상을 떠났다. 내 평생 나침반으로 삼아온 세명의 M이 있다. 모차르트, 마르크스, 그리고 만델라다. 그 중 유일한 생존 인물이었던 그가 이제 역사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니, 그는 이미 역사 속에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구태여 추모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그는 살아 생전에 이미 만신전에 모셔져 있었기 때문이다.

만델라가 나에게 지표가 되었던 까닭은 그의 불굴의 투쟁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굴할 줄 아는 투쟁을 했던 인물이다. 그에게는 인류의 최소한의 보편적 가치 이외에는 어떤 도그마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장소, 어떤 시간에서든 그 장소와 시간에 맞는 인간 존중의 길을 찾아서 실천했다. 그의 삶은 한 마디로 부정변증법적이었다. 그것은 바로 기쁨의 변증법이고 긍정의 변증법이다.

부정변증법과 기쁨이라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아도르노는 좌파 지식인들 중 가장 염세적이고 우울한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아도르노는  "결국 문제는 문화라는 것" 을 밝혀낸 큰 업적을 남겼다. 문제는 문화예술이 자본에 의해 문화산업으로 포섭되었다는 것이며, 몇 안 남은 문화의 만다린들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벤야민에게는 이것이 아우라가 사라지는 긍정적인 현상이었겠으나, 아도르노에게 이는 몰개성한 대중의 전체주의적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절망적인 현상이었다. 이 세상 곳곳이 체제와 자본에 의해 장악당해 버렸으니 아직 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할 수있는 일은 소스라치며 절규(이디오신크라시)하고 어렴풋한 희망을 모방하는 것(미메시스) 뿐이다.

그의 제자 하버마스는 그 절규를 의사소통행위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절망의 벽을 넘으려 했다. 그런데 의사소통행위로 절망의 벽을 넘으려면 사람들의 소통적 합리성을 전제해야 한다. 문제는 그것을 전제하는  순간 체제, 자본에 의해 왜곡된 문화를 비판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가장 중요한 의의가 흔들리고 말았다. 결국 그 역시 소통적 합리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체제에 의한 의사소통구조의 왜곡…

PISA보고서에서 등수만 보지말고 분석을 보자. (신문이 보도하지 않는 것들)

이미지
PISA 2012 결과가 나왔다. 피사 보고서는 모두 네권이나 되는 매우 두툼한 보고서로, 피사 점수(performance) 뿐 아니라 여러가지 변수들을 종합하여 교육정책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효과가 있거나 없는지 판단하기 위한 연구결과로서 꼼꼼하게 읽어볼 가치가 있다.게다가 2003년에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지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일종의 종단연구로서의 가치도 있다. 따라서 이 보고서를 읽을때는 여러 변수들간의 관계, 그리고 10년간의 시계열 자료 등을 따져봐야 그 묘미를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역시나 이 보고서의 첫 페이지에 나와 있는 등수에만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면서 진보들이 칭찬하던 핀란드의 등수가 하락한 것을 보고 "얼씨구나"하는 반응이다. 여기에 대해 진보교육계에서는  피사라는 평가에 교육이 종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원론적 반발로 대응하고 있다. 두 입장 모두 너무 피상적이거나 너무 추상적이다. 피사 보고서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나 역시 네권짜리를 다 읽을 여유가 없어서 '수학' 영역에 대해 분석한 1권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1. 동아시아 부국들이 절대적인 강세를 보이는 점수


먼저 한국인들이 가장 관심있어하는, 그리고 이것만 보면 그 뒤는 안보고 제끼는 등수. 일단 순위가 높다. 샹하이-차이나는 빼자(상하이에 살고 있는 농민공들의 자녀까지 포함한다면 절대 이 퍼포먼스 나오지 않는다. 이런식이면 우리나라도 강남3구만 따로 시험치게 할 수 있다). 그럼 1. 싱가폴, 2. 홍콩, 3. 대만, 4. 한국, 5. 마카오, 6. 일본 순으로 상위권이 매겨진다.






이 순위를 보면 한 마디로 아시아 부국들이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그 다음은 서유럽과 북유럽, 그 다음은 동유럽과 남유럽, 이런 식으로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높은 순위는 우리나라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동아시아의 특징이다. 생뚱맞게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베트남을 보라. 저 역시 동아시아 문화권의 효과다. 베트남이 말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