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28.

세월호 선원은 과연 중형을 선고 받을까? 생각보다 허술한 선박 관련 법망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는 상황이 계속되어, 원고료 받고 쓰는 글이 늦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땡전 한 푼 안 나오는 포스팅을 자꾸 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사회선생 하는 게 너무 어렵다. 원래 사회과학은 descriptive인데 우리나라의 사회과는 워너비를 가르치는 교과가 되었다. 하긴 유신, 5공 시절에도 '한국적 민주주의' 를 가르쳐야 했던 선배들도 있었구나.

오해가 없기 바란다. 나는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을 옹호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은 직업윤리상 혹은 인륜상 도덕적 질타를 받을 일이지, 중형에 처할 범법 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직무수행의 의무의 존재를 확정함이 없이 직무유기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라는 판례를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천인공노할 행위를 했음에도 위법사항이 없다면, 법이 잘못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선원들을 최고 무기징역까지 구형할수 있는 혐의로 구속 기소한 검찰은 그 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리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국민들의 법감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혹은 대통령이 진노했다 하더라도 법은 마구 휘두르는 칼이 아니다. 이렇게 이 법 저 법 끌어다 엄벌에 처하는게 관행이 되면 정작 뜯어고쳐야 할 선박법, 선원법, 수난구호법은 구멍 숭숭난 채로 계속 유지될 것이며,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또 일어날 것이다.

PPSS에서 선박의 승무원은 항공기 승무원과 달리 승객의 안전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글(원문링크)을 보았을 때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참사때 선장과 해원들은 도덕적으로 비난은 받을지언정 범법행위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들을 구속하고 무기징역까지 운운하고 있는 것일까?

교사의 책무가 초중등교육법, 교육공무원법에 규정되어 있듯이, 선원의 책무는 선박법, 선원법, 수난구호법 등에 규정되어 있다. 우리는 흔히 비행기 승무원을 생각하면서 여객선 승무원에게 똑 같은 수준의 행동윤리를 요구하는데, 비행기 승무원은 행동윤리가 아니라 관련 법에 의해 그렇게 행동하도록 강제되는 측면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우선 선원의 정의부터 우리 상식과 다르다. 선원은 특별한 책무와 권한, 그리고 자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저 선박에 고용된 노동자다.

(선원법 2조:"선원"이란 이 법이 적용되는 선박에서 근로를 제공하기 위하여 고용된 사람을 말한다.)

계속 가 보자. 

선원은 선장과 해원으로 구별된다. 이때 해원은 선박의 운항과 관리를 담당하는 항해사ㆍ기관장ㆍ기관사ㆍ통신장ㆍ통신사ㆍ운항장 및 운항사등의 선박직, 그리고 각종 선박 노동자, 어로장, 사무장, 의사등의 부원으로 나뉜다(선원법 시행령 3조). 그런데 통상 선박직은 항해사, 운항사, 기관사, 통신사 국가 면허를 소지한 자만이 담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해기사'라는 용어로도 지칭된다.

이 중 가장 큰 권한과 책무를 가진 사람은 선장이다. 선장의 의무는 출항전 검사, 항해, 직접 지휘(휴식시간 제외), 재선(배를 떠나지 않을 의무), 선박 위험시 필요한 조치, 선박 충돌시 필요한 조치, 조난당한 다른 선박 구조 등이다(선원법 6조~13조). 이 중 선박 위험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거나(선원법 161조, 5년이하), 선박 충돌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거나(선원법 162조, 5년이하), 다른 조난 선박을 구조하지 않았을 경우(선원법 163조, 3년이하)는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세월호 조난 신고가 났을때 근처의 화물선, 유조선 등등이 구조하러 몰려온 까닭이 반드시 측은지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단 관제소에서 근처 선박에게 구조요청을 보냈기 때문에 응하지 않으면 처벌 받는다. 심지어 특가법 적용될 수도 있다.

선장 이외의 해원들의 의무는 선장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해원은 선장에게 대들거나 쟁의를 조장한 경우(선원법 165조 3년이하), 선장의 허가 없이 배를 떠나거나 위기시 선장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경우(선원법 166조 1년 이하)  처벌이다.  해원들은 선장이 나가라 하면 나가고 있으라 하면 있을 뿐이다. 선박법, 선원법, 수난구호법을 아무리 뒤져봐도 선장이 아닌 해원들이 승객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만약 선장이 나가라 해서 나갔다고 한다면 적어도 선박, 선원법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 법이 잘못된 것이다. 법에 의무로 규정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 해서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자, 그래도 이들을 백주대로를 활보하게 했다가는 국민 여론에 불이 붙을테니 잡아 넣어야 한다. 어떻게든 죄를 한번 물어보자.

일단 선장은 그럭저럭 처벌할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선원법 161조인 선박 위험시 필요한 조치를 다 하지 않은 죄가 가능하다. 그런데 필요한 조치를 다 하지 않았다는 부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하다. 선장은 분명히 해경에 조난신고를 했고, 관제소에 연락했고, 해경과 교신했고, 선실 대기명령을 내렸다. 그게 더 안전할 거라고 믿어서 그랬다고 주장한다면 업무상 과실치사 정도인데, 치사라고 해서 살인죄 같이 느껴지겠지만 형량은 징역 2년 이하에 불과하다.

게다가 선장은 한사코 자기는 퇴선 명령을 했다 주장한다. 그럼 조난 신호를 했고, 퇴선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선원법상 선장이 할 일은 다 한 게 된다. 이탈리아에서 선장이 징역 2800년인가 받았던 사례를 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이탈리아법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선장이 제일 나중에 하선해야 한다고 명기되어 있는 몇 안되는 나라다.  수난구호법에서도 선장에게는 수난 발생시 신고할 의무(15조), 그리고 다른 선박의 수난을 도우러 갈 의무(18조)만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세월호 선장은 수난 발생시 신고를 분명히 했기 때문에 이 법을 위반한 적이 없다. 그러니 선원법을 적용하면 세월호 선장은 최고 5년까지밖에 구형할 수 없다. 

그럼 다른 선원들은? 선장이 퇴선명령을 했으면 혐의가 없고, 퇴선명령을 안했으면 선장말 안듣고 하선한 것이니 1년 이하 징역이다. 그럼 이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선장이 퇴선명령을 내렸다고 할 것이고, 선장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 결국 선장만 업무상과실치사로 징역 2년 구형하고, 선원들은 징역 1년 혹은 불기소 처분하게 되는데  이래서야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고 대갈일성한 대통령 눈치가 보여서 좌불안석이다. 그래서 검찰은 형량이 적은 '뱃사람 관련법'을 적용하지 않고 일반 형법상의 유기치사죄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도주선박의 선장과 선원 부분을 적용해서 영장을 쳤다. 이렇게 하면 구형을 최고 무기징역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기치사죄: 도움이 필요한 자를 보호할 법률 또는 계약상 의무가 있는자가 그 자를 유기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면 3년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형법 275조)

(도주선박의 선장과 선원 처벌규정: 선박의 교통으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케한 중과실 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이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아니하고 도주하고 그 겨로가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5조의 12).

승객들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것을 알고도 먼저 탈출했다면 유기치사가 적용될수 있다. 실제로 만취한 손님을 영하의 날씨에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 가게 밖으로 내보내서 결국 얼어죽게 만든 술집 주인에게 이 죄가 적용된 판례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선장이 아닌 다른 해원들까지 적용가능한지는 모호하다. 선장, 항해사, 객실 승무원이아닌 기관사, 조기사 등이 승객을 구호할 법적 계약상 의무가 있는지 모호하다. 또 선장의 경우에도 "이젠 살겠지?" 한 경우와 "승객들이 죽더라도 난 살아야지" 한 경우가 다르다. 또 배가 이상을 보이자 마자 기울자마자 선원들끼리 구명벌을 전개하여 도주했다면 유기치사가 완벽히 성립되지만 해경과 충분히 통화하고 해경 구조선과 헬리콥터 등이 도착한 것을 확인한 다음이라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유기치사는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에 3년보다 더 무거운 형벌을 적용하기 어렵다.

유기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부조의무를 위반(해태)한다는 의식이 있음을 요한다."는 판례도 있다. 이게 참 어려운데, "내가 도망가면 안되는데"하며 하선했느냐, "내가 할 바는 다 했으니 이제 해경에게 맡기고 내려가자."라고 생각하며 하선했느냐에 따라 다른 것인데, 이는 정황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아직 배가 침몰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경이 출동했는데 세시간 동안 속수무책으로 배 껍질만 구경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렵지 않느냐, 해경이 왔길래 상황 다 된걸로 판단해서 하선했다라고 하면, 그렇게 중형을 때리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어쨌든 선장과 선원 모두 처벌이 가능은 하다.

하지만 이 정도, 기껏 3~5년(유기 치사로 그 이상의 판결이 나온 사례는 매우 드물다)으로는(신고의무를 충분히 했고, 해경이 출동한 다음에 나왔기 때문에 이 정도 형량 나오기도 과연 쉬울까?) 진노한 국민 혹은 대통령의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마침내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특가법)까지 동원된 것이다. 

특가법 5조의 12을 적용하면 일단 선장뿐 아니라 선원도 걸려들고 도주한 경우에도 해당되니 웬지 맞아들어갈 것 같고, 형량도 무기징역 혹은 5년이상의 징역이니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이 복잡한 법조문을 요약하면, 운항이나 통신 등의 과실로 인해 어떤 배를 아작냈으면 가해 선박의 선장과 승무원은 피해 선박의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그러지 않고 도주하면 선장과 선원을 무기징역까지 때리겠다는 뜻이다. 자, 이게 무엇에 관한 법이냐 하면 "해상 뺑소니"를 처벌하는 법이지, 조난 당한 선박의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세월호 선장과 선원이 괘씸하고 비난받아 마땅한 건 사실이지만, 법을 이렇게까지 적용할 수 있을까? 나는 법률가가 아니지만, 법률가의 가족으로서 또 중고생 수준이나마 법을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너무 넓게 법을 적용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나 형법은 아무나 때려잡는 눈먼 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넓게 적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분명히 배웠다.

심지어 형법상의 선박전복죄(187조)까지 적용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테러리스트에게 해당되는 법이다. 세월호 승무원들이 아무리 무책임해도 배를 뒤집어 엎은 범인은 아니지 않은까?

이번 참사에서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버스 운전기사에게 교통사고시 승객 구호 의무가 있는가? 물론 도의적 책무는 있다. 선박도 마찬가지다. 현행 선박관련법 어디에도 선박직 선원이 승객을 책임지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배의 항로를 잡고, 엔진을 관리하고, 통신을 하고 키를 조타할 뿐이다. 그리고 승객과 직접 접촉하는 객실승무원은 선원법상 '선박직원'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 객실승무원들은 최선을 다해 승객을 돕다 목숨을 잃었다.

나는 이번 참사때 비겁하게 행동한 선원들을 용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이 법 저 법 끼워맞춰 중형에 처하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다. 그 보다는, 승객을 버리고 도주한 선원을 "선원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법체계에 대한 국가적인 논의를 원한다. 이번에 이런식으로 보복성 형벌을 내리면 우리는 또 잊어버릴 것이며, 저 어이없는 구멍숭숭 선원법과 수난구조법 사이로 또 다시 참사가 터져나올 것이다.

물론 나는 법률가가 아니니, 나의 해석이 옳다고는 강변하지 않겠다. 하지만 대통령이 살인을 운운하고 검찰이 선장과 선원을 줄줄이 중형으로 다스리겠다고 나설때, 과연 적용된 혐의가 타당한지에 대해 짚어보는 목소리가 없었다는 점에 우리나라 법률가들에게 무척 실망한 상황이라 참지 못하고 몇 글자 적어 보았다.

2014. 4. 22.

참사, 그리고 재난에 필요한 지도자의 이미지

2008년에 중국을 강타한 쓰촨 대지진. 무려 7만명의 사망자를 낸 최악의 참사였다. 이런 최악의 참사가 발생하면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국가 시스템의 취약점들이 노출되기 마련이다. 엉터리로 지은 학교가 폭싹 내려 앉으면서 학생들이 몰살당하는 등의.

이럴때 최고지도자가 현장을 방문하는 목적은 구조, 복구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심의 수습과 위로를 위해서다. 대 참사를 겪은 사람들은 적어도 국가가 자신을 잊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자신이 국가의 품 안에 있다는 안도감을 원한다. 그리고 이러한 안도감은 최고지도자가 현장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를 통해 전파된다. 

당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이런 이미지를 훌륭하게 창출해 냄으로써 지도자 그릇을 넉넉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시종일관 따뜻한 미소와 공감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피해자와 생존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번 세월호 참사 현장을 방문한 박근혜에게 아쉬운것이 바로 이 밀착감이다. 물론 아래의 이미지들은 다 연출이다. 하지만 민심의 수습과 위로를 위해 연출도 필요하며, 이 연출에 맞춰 훌륭하게 연기하는 것 역시 정치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원자바오는 유교문화권 사람들에게 익숙한 '성군'의 이미지를 적절하게 연출해 냄으로써 수만명의 참사로 위기에 처한 정부 리더십을 훌륭하게 되살려내었다.

물론 이게 훌륭한 연기력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평소의 인품과 교양이 뒷받침이 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오바마 역시 참사지역에서 최고지도자 다운 이미지를 창출하는데는 귀재였다. 전임자 부시가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지역 방문시 폭동 직전 상황인 뉴올리언즈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조차 보여 차라리 아니 간 만 못할 정도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한것과 달리, 오바마는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던 시기에 들이닥친 대 참사의 위기를 오히려 이미지 메이킹의 기회로 돌렸다.
그는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한 뉴저지, 뉴욕 지역 한 가운데로 거침없이 들어갔으며, 진심으로 공감하는 모습, 그리고 정치적 라이벌이자 앙숙인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지지율을 크게 높였다. 오바마 최대의 정적이었던 크리스티 주지사가 오히려 오바마 지지 발언을 할 정도였던 것으로 보아, 그게 연출이 아니라 진심이었음은 물론이다.



진심과 공감, 그리고 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연출. 이 두가지가 겸비될때 최고지도자는 위기와 참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준다. 사실 최고지도자가 신이 아닌 이상 국민들은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지도자가 왔으니 뭔가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북한 말고는 없을 것이다.  다만 국민들은 자신들이 품안에 있음을, 자기 아픔을 국가 최고 지도자가 같이 느끼고 있으며 함께 지고가려 함을 보고 싶은 것이다. 

박근혜는 진도를 방문할때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진도까지 갈때는 기적적인 구조를 지휘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위로가 되는 이미지를 창출하러 가는 것이다. 

불행히도 박근혜는 쓸만한 위로와 공감의 이미지를 한컷도 만들지 못했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은 경호원에 둘러싸여 있거나 유족들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기껏 연출했다는 게 이거다. 마치 마지못해 만지는듯한 저 주저하는 접촉. 원자바오, 오바마와 비교하면 얼마나 어색한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거리감과 차가움, 혹은 상황을 잘 모르고 어리벙벙해 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전해진다. 그나마 친정부 언론에서 잘 잡아 준 이미지가 저거다. 게다가 저 어린이가 병원에서 멀리멀리 공수되어 왔다는 사실마저 알려져서 큰 곤욕을 치루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다음과 같은 최악의 이미지를 남기고 말았다. 무릎꿇은 국민과 여왕처럼 버티고 선 대통령. 만약 박근혜나 보좌진이 정치적 감각이 있었다면 이 상황을 재빨리 기회로 바꾸었을 것이다. 같이 무릎을 꿇는다거나 큰 절을 올리며 사죄한다거나, 아니면 급히 달려가서 깊이 포옹한다거나. 그러나 박근혜는 이 상황에서 그냥 뒤로 돌아 갔다.



심지어 이명박조차 이런 장면을 연출할 줄 아는데 말이다. (혐짤 죄송)



(잘 읽었으면,  이 블로그 필자가 쓴 책이라도 뭐가 있는지 알아봄이 어떨지요?: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




2014. 4. 20.

교사, 도덕적 압박감, 그리고 순직. 진보여 제발 교사를 그냥 두라

세월호에서 순직한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전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살아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솔교사 14명 중 2명이 구조되었다고 한다. 필시 10개반 담임 교사들은 모두 순직했을 것이다. 그 분들이 특별히 의로운 교사, 소명감이 투철한 교사라서가 아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고, 내 옆자리 선생님도 그랬을 것이고, 두 시간 전에 같이 세미나하고 뒷풀이했던 선생님들도 다 그랬을 것이다. 그게 그 자리가 주는 압박감의 위력이다.

이른바 진보적 관점에서 보면 간섭으로 보이고 통제로 보일지 몰라도 교사가 특히 담임이 학급 학생에 대해 가지는 도덕적 압박감과 정서적 애착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심지어 같은 교사라도 비담임 1년만 하면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많은 교사들이 담임반 학생에 대해 혈육과 같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매우 드물고, 대개의 경우는 정도 차이다. 혈육과 같은 애착이 없으면 그 고달픈 담임 업무를 도저히 해내지 못한다. 내 새끼다 생각하니까 날마다 쏟아지는 잡무와 아이들로부터 받는 마음의 상처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219일 사고만 치던 녀석이라도 종업식날 하루만 대견한 모습을 보이면 그걸로 모든 걸 다 퉁칠수 있는게 담임의 마음이다. 이건 학생도 마찬가지다. 싸이코패쓰가 아닌 다음에야 사고치는 녀석들은 단지 걸렸다, 재수없다는 생각 뿐 아니라 담임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 심지어 자기 부모보다 담임에게 더 미안해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자기 부모보다 담임에게 더 애착을 느끼는 녀석들 젖 떼고 졸업시키는 것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억지로 젖 떼는 과정에서 교사도 정서적으로 많이 다친다. 

문제상황이나 위급한 상황에선 그 압박이 더 커진다.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60개의 눈이 일제히 담임만 쳐다본다. 그 압박은 정말 무섭다. 60개의 눈이 뭔가 해결책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쳐다보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다면 더 무섭다. 그 문제 상황이 배가 가라앉는다거나 기차가 뒤집어졌다거나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무섭다. 그 무서움을 견디느니 차라리 죽는게 나을 정도다. 설사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빈자리가 숭숭난 그런 교실을 한 두번 보면 거의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10개 학급을 인솔해서 출발했는데 겨우 두 개 반 정도의 아이들만 남아있는 모습을 본 단원고 교감의 죽음은 거의 예고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를 격리하지 않고 풀어둔 관계당국은 사실상 살인을 저지른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이 교감의 격리에 신경쓰지 않은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교사의 도덕적 압박감, 학생에 대한 애착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소위 선진국에서는 이런 떼죽음이 아니라 학생 한 두명이 목숨을 잃어도 즉시 교사들에게 심리치료가 들어간다.

그러니 사회에 호소한다. 교사를 가볍게 보지 말라. 보수쪽에서는 교사들을 잠재적 좌빨로 몰아 국정교과서로 통제하려 든다. 반면에 진보쪽에서는 교사들이 생각없는 로보트나 기르는 체제의 도구, 인권이나 유린하는 변태로 몰아붙인다. 보수쪽에서 흔드는 건 그냥 웃어버리면 그만이다. 너는 짖어라, 우린 우리식으로 가르친다 하면서. 하지만 진보쪽에서 흔드는 건 참으로 아프고,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데 "교육 불가능성의 시대"를 선언하는가 하면, 매일 교실에서 삶의 힘을 얻어가지고 내려오는데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고 한다.

솔직히 우리나라 교사들이 탐구열이 넘치고 자기계발에 열성적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학생들을 잘 이해하고 늘 그들 편에 서려고 애쓴다고도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교사집단이 밖에서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허술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은 해야 하겠다. 그들은 소신이 있고 자존심이 있고 강한 도덕적 책무감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보수보다 진보가 집권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보수는 단지 그들을 귀찮게 하지만 진보는 그들의 소신을 틀렸다고 하고, 그들의 자존심을 버리라 하고, 그들은 도덕적으로 잘못이라고 낙인찍기 때문이다.   

물론 무사안일에 나태하고 무책임한 교사가 없는 건 아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20년 전, 끔찍했던 수학여행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막 서른에 들어선 젊은 선생이었다. 그때 우리학교 3학년은 19반 까지 있었고, 한 반에 40명이 넘었다. 40*19= 760명! 이들이 열차 10량을 통째로 세내어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교의 1,2,3학년 전체보다 더 많다).  당시 내가 '가르치던' 학교는 지금은 재개발로 중산층 지역이 되었지만, 당시만해도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중 하나였다. '아이들'의 가정형편상 여행비용 절감이 거의 최우선되는 분위기라 열차 한 량에 두 반씩, 그러니까 80명씩 탑승 시켰다. 그때가 IMF 무렵이라 학교도 출장비를 아끼느라 그랬는지, 담임교사 외에는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다.

760명의 학생이 두줄로 경주 시내를 걸어가는 모습은 일대 장관이었다. 19반이 이제 첨성대를 지나갈때 1반은 이미 안압지에 도착했고, 그 사이는 우리 학생들로 인간 사슬을 이루고 있었다. 1반 담임과 19반 담임도 서로 무전기로나 의사소통이 가능했다.(휴대전화가 아니라 삐삐 시절) 방심할 수 없는 긴장의 연속.

그런데 힘겨운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면 그때부터 진정한 헬게이트가 열렸다. . 40명을 네 조로 나누어 각 객실에 밀어 넣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19개 반, 무려 72개 객실을 4개층에 걸쳐 채워 넣어야 했다. 당시 3학년 담임교사 19명 중 나를 포함하여 9명이 남자, 10명이 여자였다. 남교사 한 명이 남학생 객실 4개씩 나누어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이드도 도우미도 없이 이 모든 일을 담임교사들이 다 해야 했다. 방을 왜 관리하고 통제하려 하느냐 따위의 인권빙자 발언 따위는 하지도 말라.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방털이' 사건까지 나왔다.

일단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는 당연히 다른 교사들도 나와서 돌아 볼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나와보니 나 혼자였다. 다들 어디 갔느냐 하면 고스톱 판, 술 판을 벌리고 있었다. 나한테도 끼라고 했지만 거부하고 학생들의 숙소가 있는 복도에 의자 하나를 가져가서 당번을 섰다. 여교사 방에서는 이미 순번을 정해 놓고 두시간 간격으로 두 명씩 교대로 나왔지만, 화투소리, 술자리 소리가 요란한 남교사 방에서는 끝내, 그 밤이 다 새도록 아무도 나와서 교대해 주지 않았다. 그 무책임한 선생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그들의 공통점은 40대 이상, 남자였다.

이제는 내가 그들 나이가 되었다. 다행히 나는 그들처럼 늙지는 않았다. 도리어 젊은 선생님더러 들어가 쉬라고 하고 내가 한 시간이라도 더 하는 그런 노땅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담임을 맡는 교사들 세대에서 그때 그 늙은 남교사들같은 나태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느 진보 문필가가 "그냥 있어라"란 글을 써서 무비판적이고 권위에 순응하는 학생을 기른 학교를 질타한 모양이다. 그 말을 진보 명망가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제발 "그냥 있어라." 물론 교육에 비판이 필요하고 진보가 필요한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일을 해낼 교사들은 결코 모자라지 않다.

(잘 읽었으면,  이 블로그 필자가 쓴 책이라도 뭐가 있는지 알아봄이 어떨지요?: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

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