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30.

국민은 새정연의 무능을 심판할만큼 유능하지 않다. 이 나라는 교육 없이는 어떤 사회 변혁도 불가능하다.

나를 국개론자로 비난해도 상관없다. 솔직히 나는 국개론자 맞다. 사실 나는 대중을 믿으라, 대중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라, 대중이 무기력한 야권을 심판했다 따위의 말을 하는 운동가들을 혐오한다. 정치가들은 립서비스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명색이 운동가라면 그런 순진한 환상에 빠지면 안된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 수준은 매우 낮다. 타고난 지적능력이야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문해력이 매우 떨어지며, 토론을 통해 합의에 이른다거나 갈등을 관리하는 능력은 전무에 가깝다. 주어진 자료를 냉철하게 분석하여 진위를 가리는 일 따위는 아예 기대도 못한다.

당장 대중예술 수준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대중(!)' 드라마로 분류되는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한 지적수준이 요구되는 드라마로 둔갑된다. 영국에선 길거리 양아치도 보고이해할수 있는 닥터후의 서사구조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의 문해력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이다. 이른바 K팝은 또 어떤가? 세계에서 가장 저열한 수준의 가사를 자랑하는 노래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그 이상의 함축, 즉 시적 성격을 가진 가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 정도로 저열한 수준의 문해력을 자랑하는 국민들이 득실거리는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는 중국 정도가 있을 것이다. 

저열한 문해력을 가진 사람들은 교묘한 상징조작에 쉽게 넘어간다. 상징조작 중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괴벨스가 말한 "거짓말도 천번하면 진실이 된다."라는 수법이다. 새누리당, 그리고 종편은 이것을 너무 잘 알고 활용하고 있다. 뻔뻔하게 적반하장을 하더라도 한번이 아니라 세번 네번 계속하면 어느새 그들은 별 잘못을 하지 않은 자들로 둔갑해 있는 것이다.

이미 19세기에도 마르크스는 프랑스 2월혁명 이후 프랑스 민중이 루이 보나파르트의 선동정치에 민중들이 홀랑넘어가 도로 황제정이라는 코메디를 만들어낼때  "나폴레옹은 민중들의 주문이고, 군가는 그들의 행진곡이었다."라고 자조한 적이 있다.

못배운 사람들 만명이 모이면 현명해진다는 생각은 버리자. 어느정도 배운 사람들 만명이 모여야 현명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수천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으로서의 훌륭함과 시민으로서의 훌륭함은 별개의 것이라고 역설했던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훌륭함은 타락하지 않도록 본성을 잘 길러주면 될일이지만, 시민으로서의 훌륭함은 의식적으로 가르치고 훈련해야 갖출수 있는 자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그런 교육이 있었나?

우리는 항상 공교육이 망가졌다. 입시교육때문에 시민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럼 생각해보자. 이렇게 제대로 되지 못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나이가 스무살 서른살이 되면 갑자기 현명한 시민으로 둔갑이라도 한단 말인가?

결국 답은 야당이 유능해지건 더 투쟁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전반적으로 더 유능해지고 유식해지고 사려깊어지는 것이다. 이는 교육의 문제이다. 비단 초중등 교육이 아니라 평생교육의 문제다.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조금씩 조금씩 눈을 뜨게 만드는 끈질긴 브나르도 운동이 필요하단 뜻이다.  만약 이럴때 전교조가 여전히 "참교육의 상징"으로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하지만 진보진영은 전교조를 노동단체의 물주로, 그리고 민주노총의 한낱 집회동원기, 거수기로 소모시키고 말았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87년 6월항쟁은 그 무지한 국민들이 어떻게 일으켰느냐고? 명심하자. 4.19도 87년 6월도 실제 참가한 사람들은 국민의 1/10도 안된다. 87년 6월만 하더라도 대학생과 화이트칼라들이 주도했다. 다만 그 시절에는 대학생, 지식인, 화이트칼라에 대한 어느정도의 권위가 있었다. 즉 못배운 사람들이 배운 사람들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의 '신지식인' 담론과 더불어 수십년 학문을 연구한 학자는 한낱 심형래 나부랭이만도 못한 인물로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배움을 경멸하고 하찮게 여기는 풍토가 만연했으며, 여기에 "빡세게"만 강조하는 경기동부스러운 운동 풍조까지 단단히 안 몫했다. 그 결과 2015년 대한민국의 국민은 1987년의 국민보다 훨씬 더 저열하고 단순한 지적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당장 30년 전에 널리 읽힌 책, 널리 불리운 노래가사만 살펴봐도 답이 나온다.

그러니 관건은 교육이다. 지금 당장 재보선은 이럴지 몰라도 시간은 결코 새누리당 편이 아니다. 새누리당의 지지자는 해마다 30만명씩 자연감소하고 있다. 고령층에 의존하는 정당은 절대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금의 40대가 50대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보수화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저들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려고 하며, 교육예산을 감축하여 전반적인 초중등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려 하는 것이다.  즉 무식한 국민으로 키우려는 것이다. 

자, 그러니 야당에게 유능해져라 투쟁적이되라 요구하지 말자. 무식한 국민에게는 유능함을 입증할 수 없다. 다만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광고카피같은 속임수만이 통할 뿐이다. 무식한 국민에게는 투쟁적이 되어봐야 소용없다. 먹고사니즘에 빠지고 연예인에 빠져사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가 다 무엇이고, 국격이 다 무엇이고, 세월호가 다 무엇인가?

그러니 국민이, 사회가 전반적으로 유식해지고 탐구적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일은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반드시 교육을 거쳐야 하며, 10대라는 결정적인 시기를 놓치면 돌이키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니 이 나라에 희망을 찾아야 한다면 그 희망은 유식한 국민을 길러야 할 의롭고 진실한 교육자들, 그리고 또 다른 의미에서의 교육을 수행하는 예술가들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힘을 싣고 그들이 연대하게 하자.  그리고 그들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자.  만약 여기에 내 힘이 필요하다면, 나는 나의 미력한 힘이나마 기꺼이 보탤것이며, 전교조 위원장을 민주노총 사무실 지키는 호위병으로나 써먹는 그따위 사고방식과 결연히 투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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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24.

조희연 재판에서 왜 배심원은 만장일치로 유죄를 평결했을까?


조희연 서울 교육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유죄 평결이 나왔다. 국민참여재판임에도 불구하고 배심원 전원합의로 7:0 유죄 평결이 나왔다. 이것을 과연 사법부가 썪었다의 문제로 볼것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하겠다.
다만 7:0 평결이 이루어진 배경 논리라도 알고 싶다는 페친들의 요구가 있어서 사회교사로서 오랜만에 온라인 수업을 개시한다.  

우선 조희연 교육감이 고발당한 죄목은  공직선거법 제250조인 허위사실공표죄이다.  이는 두 가지  구성요건을 가지고 있다.

1) 특정 후보자의 선거의 당선 혹은 낙선을 목적으로 (이 경우에는 고승덕의 낙선이 목적)
2) 허위의 사실을 공표

여기에 대해 변호인들은 

1)에 대해 집중적으로 방어했다. 즉, 고승덕의 낙선이 목적이 아니라 시중에 유포된 루머에 대한 후보자의 해명을 요구한 것이다.
2)에 대해서는 설사 나중에 허위 사실임이 밝혀졌어도, 적어도 기자회견을 한 당시에는 이미 뉴스타파 기자의 트윗터에서 나돌고 있는 등 허위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충분히 믿을만한 상황이었다라고 방어했다. 

여기에 대해 배심원의 판단은 이렇다.

1)의 경우는, SNS에서 나도는 의혹의 해명을 요구한 것이라면 후보자의 트윗 계정으로 "의혹을 해명하시오"라고 멘션만 해도 될 일인데, 이것을 구태여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한 점은 명백히 선거의 유불리를 의식한 행동이었다. 더구나 캠프 대변인 정도가 해도 될 이야기를 후보자가 직접 나서서 대규모의 기자회견까지 한 것은 이것을 명백히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했다고 볼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의 경우에는 허위사실이라도 이게 사실이라고 믿었을 가능성이다. 일단 고승덕의 미국 영주권 문제가 뉴스타파 기자의 SNS에서 불거진 것이고, 이럴 경우 다른 언론사나 기자를 통한 더블 체크(미국에서는 트리플 체크를 권장)를 하고 난 다음에 똑 같은 보도를 확인했다면 사실로 믿었다고 볼수 있다. 그런데 배심원이 보기에 조희연 후보는 SNS에서 취득한 정보를 사후검증없이 바로 기자회견까지 이어갔다. 이 점에서 이것이 사실이라고 확신했다기 보다는 사실이 아닐수도 있었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애초에 변호인이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이 아니라 다만 후보자 검증 차원에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라고 방어논리를 편 것이 오히려 "허위일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라고 읽히면서 나쁜 결과가 되었다. 차라리 "그 때는 정말 미국 영주권자인줄 알았다."라고 방어하는 편이 깔끔했다.

그 경우 바로 무죄가 되는 건 아니다.  "사실"을 공표했다 할지라도 그 목적이 상대 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할 경우에는 공직선거법 제251조(후보자비방죄)에 걸리기 때문이다. 후보자 비방죄는 허위가 아니라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후보자의 낙선을 도모하는 경우도 처벌하게 되어있다. 다만 형량은 5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가볍다. 따라서 "사실로 믿고 기자회견했다."라고 하면서 후보자 비방죄 쪽에 적용되는 편이 오히려 쉽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그 "사실"이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즉 고승덕이 미국영주권자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으며, 그 사실을 밝히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해서 공표했다라고 주장해야 방어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방어가 쉽지 않은 것이 고승덕이 미국영주권자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과연 공공의 이익과 관련이 되는가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무이다. 우리나라는 이중국적자조차도 특별한 보안이 필요한 영역이 아닌한 공직을 맡을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교육감이 국정원장이나 국방부장관 같은 것도 아닌데, 더더군다나 미국 이중국적자도 아니고 다만 미국 영주권을 가진 한국 단일국적자라는 사실이 무슨 공공의 이익과 부합되는가 물어보면 대답할 말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을 사법부의 부패, 정치판결로 몰아가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애초에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서 이기려는 플레이(일종의 더티 플레이)에(사실 선거에 이게 필요하긴 하다.), 굴러나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후보자가 직접 나서게 만든 것이 문제다.  만약 선거에서 이기고자 했다면 선대본 대변인이나 기타 사소한 직책(위원장, 회계책임자가 아닌)을 가진 사람들이 벌금 각오하고 마구 비방하고 허위사실 던지고 할수도 있다. 하지만 후보자는 나와서 좋은 말만 해야 한다. 

곽노현 사건때도 그랬다. 선거는 정치이며 이런저런 뒷거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걸 문제 삼으면 살아남을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거래가 틀어지고 난 다음 다들 나몰라라 하고 도망가 버리고 그 뒷 마무리를 당선된 교육감이 직접 나서게 만든게 문제다. 다들 좋은 일만 하고 궂은 일은 하지 않으려다 보니 오히려 가장 보호해야 할 사람이 궂은일에 유탄을 맞게 만드는 구조가 반복되는 것이다.

진보교육감 선대본 발족할때마다 사진을 가득 채우던 그 많던 진보인사들은 대체 다들 어디로 갔단 말이며,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후보자는 그저 자기 정견만 밝히고 포지티브만 하도록 하고 더러운 일을 처리해야 할 수많은 캠프 관계자들은 과연 어디 있었단 말인가? 다들 눈도장 머릿수 채우기에만 혈안이되고 실무에 무능한 진보진영의 총체적 문제가 이렇게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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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