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4.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다다랐고, 슬슬 볼셰비키 혁명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라고 무의식중에 말하고 있는 셈이다."혁명의 기수를 제헌의회 소집으로"라고 외치던 그 구호처럼 말이다. 과거 CA전사들과의 차이라면 그들은 자신들이 볼셰비키 혁명을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알며 의식적으로 외쳤지만, 386 꼰대들은 무의식중에 그 논리에 스며들어 말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무의식중에 과거 학습했던 케케묵은 소비에트 교과서의 변종을 읊어대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정치란 원래 형식이며 절차다. 형식과 절차는 제도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며 본질적으로 평등을 지향한다. 그래서 민주정치가 가능한 것이다. 형식적 민주주의 이외에 또다른 민주주의는 없다. 다만 그 형식과 절차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집행되는가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5년마다 왕을 한번씩 교체한다는 게 과연 이렇게 조롱의 대상이 되고 민주화가 실패라고 단언할만큼 사소한 것일까? 지구상에는 5년마다 왕을 선거로 교체하는 것 조차 제대로 못하는 나라가 수두룩하다. 당장 2014년 홍콩을 노랗게 물들였던 우산혁명을 보라. 그들은 아직도 완전하 형태의 선거를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 본토는 그마저도 없다. 
물론 우리나라는 이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불완전하다. 하지만 지난 30년간의 민주화 과정을 송두리째 비웃고 부정할수 있는가? 군사독재에서 민주정치로 넘어간 나라들 중 단 숨에 군사독재의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는데 성공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는 세계적인 정치학 교과서에 곧잘 실리는 우수사례다.  칠레나 스페인은 군부에게 일정부분 지분을 양보해야 했고, 필리핀은 이후 혼미의 혼미를 거듭하고 있으며, 동성혼 합법화가 논의될 정도로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화 정도가 높은 나라인 대만조차 최근까지 중고등학교에 교관(예비역이 아니라 현역장교다!)이 남아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이던 시절에는 김진만, 김성곤이 남산에 끌려가서 불구가 될 정도로 고문을 당했지만, 김무성, 유승민은 당당히 국회의원이 되어 국회로 돌아왔다.30년 전에는 사람만 모이면 바로 최루탄이 터지고 백골단이 구타하며 연행했고, 가두 집회나 시위 10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지금은 꽤 시간이 지난 다음에 경고방송이라도 하고 나서 달려든다. 이 차이가 작은가? 이게 그냥 시간이 지나가서 저절로 이루어진걸로 보이는가? 지난 30년 동안 겨우 5년마다 왕을 교체하는 것 외에 그 속살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세계의 모범이라 할만한 지난 30년간의 민주화 과정을 송두리째 부정하지 말자. 원래 민주화는 정권의 교체과정보다 공고화 과정이 더 길고 어렵다. 이 공고화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독재잔당들의 권력 탈환 시도보다 민주화에 대한 냉소와 체념이다. 이 냉소와 체념은 지금까지 이루어왔던 것에 대한 부정에서 시작한다. 민주화 했다더니 뭐가 달라지는게 있어? 이런 식의. 그리고 그 부정은 뭔가 큰 거 한방을 기대하게 만든다. 혁명과 같은. 큰 거 한방은 당연히 카리스마있는 큰 지도자와 연관되고, 그게 바로 독재로 가는 지름길이다.

잘 읽으셨으면 아래 링크에서 제 책들도 살펴 봐 주세요

2016. 10. 6.

백남기씨 경찰폭력 희생 사건과 관련된 또 다른 쟁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백남기씨 사건과 관련해서 유족, 특히 딸을 비난하는 우익의 주장이 있었다. 아버지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치료 중단을 요구했다거나, 외국 여행을 갔다는 등의 비난이 그것이다.

나는 그게 하등의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나는 연명치료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시점, 즉 현 상태의 호흡과 맥박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환자 상태 개선을 기대할 수 없고, 장치를 제거할 경우 단 시간 내에 즉시 사망에 이를 것이 확실시 되는 상태라면 이미 사망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있어서,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할 경우 의사가 연명장치를 제거하고 사망에 이르게 하여도 이를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며, 환자 역시 자살 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즉 연명장치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순간 사실상 사망인 것이다. 나 역시 의식이 있는 동안에 연명치료를 중단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한 요구할 것이고, 의식이 없을 경우를 대비하여 주변의 친지들에게 그런 내 뜻을 남겨 놓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판례는 "환자 본인의 의사"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환자 본인이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지 않는한, 가족이 아무리 요구해도 병원은 숨넘어갈때까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우걱우걱 계속 할수밖에 없다. 이건 어쩔수 없는 상황이며, 가족측도 병원측도 서로를 비난할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만약 환자가 코마상태라면 어떻게 하느냐? 이 경우는 추론을 통해 환자의 의사를 판단해야 한다. 판례는 이렇다.

" 환자의 사전의료지시가 없는 상태에서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한 경우에는 환자에게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으므로 더 이상 환자 자신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진료행위의 내용 변경이나 중단을 요구하는 의사를 표시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인정되어 환자에게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연명치료의 중단을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사회상규에 부합된다."

환자가 코마상태라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힐수 없는 상태라면, 평소 환자의 삶에 대한 태도, 발언 등을 통해 이 사람의 가치관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연명치료를 거부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가족이 "연명장치 제거해 주세요" 이걸로 해결되지 않고, 이와 관련한 환자의 평소 발언이나 글 등을 모아서 "자 이 자료들을 보세요 환자가 의식이 있다면 필시 연명치료를 거부했을 것입니다." 라고 요구해야 하고, 그래도 안 들어주면 그것들을 증거로 병원측을 피고로 하는 연명장치 제거 청구소송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환자 가족과 병원측에서 빼도박도 못하는 지루한 상황이 계속될수 있다. 가족들은 더 이상 연명치료 해 봐야 몇달 드러누운 환자를 보는 것 외에는 결국 사망할 것임을 알고 있고, 의료진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가족들은 환자의 의사를 명확하게 입증하지 못하고, 의료진은 이 경우 연명장치를 제거하면 '살인'으로 처벌받을수도 있기 때문에 존엄성이 무너진 상황을 마냥 계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가족들은 마음 속에서 이미 고인을 보내 드릴수 있다. 법적인 문제 때문에 다만 기계에 의지하여 신체가 바이탈 사인을 만들어내고 있을뿐(즉 진동하는 고깃덩이에 불과할 뿐) 이미 존엄성을 가진 영적인 존재로서는 돌아가신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 속에서 고인을 하늘나라로 보낸 가족을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더군다나 자유주의자라면 이런 태도를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은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중요한 단계다. 이 마침표를 자신의 의사에 따라 찍을 수 있을 때 인간은 존엄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계에 의해 호흡과 맥박을 강요당하면서 바이탈 사인을 억지로 토해내는 상태까지 살아 있는 것으로 친다면, 그 죽음은 존엄성으로부터 너무 거리가 멀어진다. 나는 존엄성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인 상태에서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바이탈 사인을 강요받고 싶지 않으며, 억지 호흡을 토해내고싶지 않다.

따라서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할때 그 뜻이 존중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명치료 외에는 남은 것이 없을때 고인을 마음속에서 미리 보내드린다고 해서 그 유족을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물론 백남기씨 유가족이 그랬는지는 확인할수 없다. 다만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윤서인이 같은 논리로 비난할 수 없다는 말이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