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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백남기씨 경찰폭력 희생 사건과 관련된 또 다른 쟁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백남기씨 사건과 관련해서 유족, 특히 딸을 비난하는 우익의 주장이 있었다. 아버지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치료 중단을 요구했다거나, 외국 여행을 갔다는 등의 비난이 그것이다.

나는 그게 하등의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나는 연명치료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시점, 즉 현 상태의 호흡과 맥박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환자 상태 개선을 기대할 수 없고, 장치를 제거할 경우 단 시간 내에 즉시 사망에 이를 것이 확실시 되는 상태라면 이미 사망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있어서,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할 경우 의사가 연명장치를 제거하고 사망에 이르게 하여도 이를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며, 환자 역시 자살 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즉 연명장치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순간 사실상 사망인 것이다. 나 역시 의식이 있는 동안에 연명치료를 중단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한 요구할 것이고, 의식이 없을 경우를 대비하여 주변의 친지들에게 그런 내 뜻을 남겨 놓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판례는 "환자 본인의 의사"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환자 본인이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지 않는한, 가족이 아무리 요구해도 병원은 숨넘어갈때까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우걱우걱 계속 할수밖에 없다. 이건 어쩔수 없는 상황이며, 가족측도 병원측도 서로를 비난할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만약 환자가 코마상태라면 어떻게 하느냐? 이 경우는 추론을 통해 환자의 의사를 판단해야 한다. 판례는 이렇다.

" 환자의 사전의료지시가 없는 상태에서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한 경우에는 환자에게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으므로 더 이상 환자 자신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진료행위의 내용 변경이나 중단을 요구하는 의사를 표시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인정되어 환자에게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